김백녕 개인전을 보면서 느낀 감회
글씨21 기획 창작지원프로젝트선정작가 김백녕 작가 초대전 전시장 전경김백녕 개인전을 보면서 느낀 감회김 수 천(원광대학교 서예문화연구소 소장)20년 만에 붓을 새로 잡았다고 들었다. 시흔의 나이를 넘어 갑자기 첫 개인전을 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김백녕(金白寧)은 최근 개명을 했다. 그가 대학을 다닐 때 이름은 김범수(金範洙)였다. 김백녕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나온 삶을 알아야 한다. 그의 인생역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는 20대에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동아미술대전 입선, 한국서예청년작가전 등 다수의 공모전에 출품할 정도로 앞날이 촉망되는 젊은 서예가였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던 그가 홀연히 모습을 감춘다. 그는 대학원에서 서예학으로 석사를 한 뒤, 학교를 옮겨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 후 철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철학 강의를 한다고 들었다. 지금은 서예가가 아닌 동양철학 전공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는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서예인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난[歲寒] 속에서도 균형을 잡아야 한다 · 50×77cm×2저 시냇물[北溪]도 바다로 흘러 가겠지 · 51x125cm그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을 무렵 서울에서 초대전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되어 사람만나는 것조차 두려운데 김백녕의 전시는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서울을 향했다. 그가 전시를 하는 북촌 아트센터 일백헌은 개관 전 수리공사를 할 때 우연히 들린 적이 있다.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아트센터는 한국적 정서를 느끼게 하는 편안한 곳으로 휴식할 수 있는 마당도 있고, 전시장이 몇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를 더해준다.작가는 전시를 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한다. 더욱이 첫 개인전을 하는 작가는 더욱 더 고뇌가 컸으리라 본다. 관전자들은 작가가 들인 시간과 노력과는 달리 작품에 머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그러나 관람의 시간이 빠르다고 하여 성의 없이 보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스쳐지나가도 작품에 대한 인상은 머리 속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것은 인간이 구유하고 있는 직관(直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시장에서 김백녕의 작품을 보는 순간 찰나적으로 작가의 세계가 느껴졌다.시냇물[溪] · 60×70cm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첫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물>, <10>, <영문자 알파벳>이었다. 똑같은 글씨를 일 이 십자씩 썼는데도 표정은 제각각이다. 옆방으로 가니 큰 글씨로 쓴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서론에 나오는 짧은 문구로 쓴 대작(大作)이었다. 꾸밈없이 구애받지 않고 쓴 글씨가 마치 선승(禪僧)의 글씨처럼 느껴졌다. 큰 공간을 지배한다는 것은 내공을 필요로 한다. 오랫동안 글씨를 쓰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작품이 단조롭거나 허전하지 않은 것은 그가 학창시절 열심히 갈고 닦은 서예실력이 바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 위에서 다져진 철학공부와 큰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큰 거실로 발길을 옮기니 기암절벽에 새긴 암각화와 같은 작품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시선을 당기는 작품이 <태박(太樸)>이었다. 원초적 카오스를 뜻하는 <태박>은 응축된 필획으로 표현되어 원초적인 에너지로 다가왔다. 이 작품을 보면서 작가와 한참동안 우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정신의 작용[風神] · 50×103cm정신의 작용은 허공을 가르듯 융통자재해야 한다[行神如空]1 · 135×138cm인간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세계를 살기도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현존하고 있는 큰 세계를 동시에 산다. 인간에게 불어닥치는 힘겨운 일들, 괴로움, 좌절감에도 마음의 평형을 유지하고 웃음을 잃지 않고 산다.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마다 마음속에 존재하는 원형적인 에너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양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우주의 가장 큰 별 방패자리(UY)는 태양의 50억 배, 지구의 6,500조 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것은 허블망원경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한 어마 어마한 크기를 지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별들이 우리 인간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별과 우리는 하나가 되어 함께 호흡하며 살고 있다. 홀로 옳은 신념을 즐거이 지켜 나가야 할 때도 있지[獨樂] · 189x95cm김 작가의 작품 <태박>이 우주와 공명을 일으켰나보다. 그 앞에서 우주에 대한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말이다. 아티스트가 존경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세속의 삶을 살면서도 우주와 같은 큰 정신이 존재한다. 서예와 예술을 한낱 시각적인 조형예술로만 보는 것은 한없이 작가의 모습을 초라하게 만든다.언젠가 「독서신문」에 실린 서예가 김충현(1921~2006)의 서예론을 보면서, 깊은 감회에 빠진 적이 있다. “재주나 소질만 갖고는 안 되는 거야. 천상(天象) 지지(地誌)를 알아야 한학의 진면목을 알 수 있듯이 시를 쓰고 글씨를 하려면 그것이 우러나올 샘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 아닌가. 인간의 신체구조나 정신세계는 그것이 하나의 소우주(小宇宙)야. 대자연과 소우주가 합치될 때 창출되는 것 그건 고도의 선경(仙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테면 그 경지까지는 못 가더라도 이러한 호흡과 맥을 알아야 진정한 서도를 할 수 있다 이 말이야.”생각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一散] · 94×124cm이 글을 보면서, 큰 예술은 소질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합일하는 큰 정신세계를 향한 도야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방마다 작품의 분위기가 달랐다. 서로 다른 성질을 한 작품이 걸려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관된 특성이 있다. 작품 전체의 모습은 그의 개성적인 삶만큼이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글씨는 한군데 머물러 있지 않다. 한글이든 한문이든, 숫자이든, 영문자 알파벳이든, 쓸 때마다 달라지는 구조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의 예술세계를 느낀다.늘 상 하던 일을 반복하는 것을 관행(慣行)이라고 한다. 관행은 반복이고 습관이며 행동의 패턴화다. 김 작가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습기(習氣)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의 삶과 일치된다. 그의 삶은 일반적으로 보아온 모습이 아니다. 글씨 또한 습관적인 반복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Chicago Bulls(시카고 불스) · 21x34cmSacramento kings · 55x70cm서론에 보면 늘 상 변하는 글꼴이 명필의 조건이다. 왕희지의 <난정서(蘭亭敍)>가 명필임을 설명할 때 ‘지(之)’자 20자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도 마찬가지다. <세한도(歲寒圖)>도 같은 자를 동형반복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다름의 글꼴이 강조되는 것은 역대 서예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중히 여기는 조형세계다. 작품을 할 때 같은 자가 반복되면 어떻게 해서라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자전에서 이체자(異體字)를 찾는다. 이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글씨가 늘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서예의 보편적 가치라 할 수 있다.동형반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美)를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이다. 이것을 규명하는 것은 김백녕의 작품이 주는 가장 큰 가치이자 의미라고 생각한다. 김작가는 철학전공자로서 현재 대학에서 동양철학 강의를 한다고 들었다. 동양철학에서는 우주변화의 원리를 중요하게 다룬다. 따라서 작가는 글씨의 글꼴이 왜 항변(恒變)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김백녕의 작품제작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기대된다. 현재 한국의 서예는 작가와 작품은 많은데, 그에 대한 이야기가 빈곤하다. 작품전은 많지만, 품평이나 비평이 거의 부재된 상태로 전시회만 무성하다. 전시에 들인 공력(功力)만큼 작가의 작품에 대해 담론하는 분위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동안 서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백녕을 시작으로 서예작품과 작가에 대한 풍성한 담론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이완 7회 개인전 <리얼리즘 서예, 익숙함의 낯선>
전시장 전경리얼리즘 서예, 익숙함의 낯선 20세기 현대미술에서 평면의 회화형식을 뛰어넘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형식과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일상의 오브제를 작가의 해석에 의해 예술로 재탄생시킨다. 사유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개념 미술은 언어를 재료로 한다. 그래서 아이디어와 과정이 중요하다. 하이하다다 · 158x197cm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 70x70cm이완의 일곱 번째 개인전 「쓸모없는 아름다움」 展은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는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그는 <개 조심>, <주차금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일방통행>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가진다. <뒤집어진 양말>은 지나치게 일상적인 나머지 왜곡 없는 일상 그 자체를 반영한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일상적인 언어일수록 작품을 이해하는 시간을 단축하고, 일상과 예술의 거리를 좁힌다. 또한, 유머가 있는 일상의 언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개념 미술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동시에 소통의 길로 안내한다. 쓸모없는 아름다움 · 70x70cm뒤집어진 양말 · 70x70cm이완은 문장을 구성하는 어절을 엉뚱하게 끊고 행간과 자간의 자유로운 구성을 통해 익숙함 속에 낯섦을 의도한다. 통상적으로 글을 읽을 때는 띄어쓰기를 단위로 하는데 그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한글과 일상의 언어에 변주를 시도하는 것이다. ‘테두리 없∨는 고요 쓸∨모없는 아∨름다움’ 15글자 짧은 문구를 읽는 것도 호흡이 어색하기만 하다. 언어를 문법에서 벗어나게 하는 순간 익숙함과 낯섦이 동반되면서 작품은 생명력을 얻는다. 그의 조형 감각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흥미를 느끼게 한다. <하이하다다>는 언어의 일차원적인 의미 전달에 그치지 않고 낱글자를 자유롭게 배치하여 문자가 문자로만 존재하도록 한다. 그의 작품에서 대중성과 신선함을 찾게 되는 이유이다. ㅋㅋㅋ ㅋㅋ · 146x203cm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리얼리즘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포함한다. 물질을 우선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 소외 현상은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이다. 화려함 속에 가려진 쓸모없는 존재의 물음에 답을 내린다. 권정생 작가의 어린이 동화「강아지 똥」이 있다. 시골길 돌담 구석에 홀로 남겨진 강아지 똥은 조그만 흙덩이와 병아리 가족에게 외면받지만 결국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 꽃을 피워준다. 쓸모없음은 사물이 내재하는 속성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에게나 쓸모 있는 것이 아닌 아무도 찾지 않는 쓸모없음의 가치를 알려주고자 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아름답다. 무제01 · 70x70cm이러한 이완의 작품세계는 서예작품의 명제로 고전을 차용하거나 필법을 중요시하는 전통 한문 서예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다. 그는 한자(漢字)를 써도 <外部人出入禁止(외부인출입금지)>와 같이 쉽고 재미있는 일상의 언어를 선택한다.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며 작가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조선 후기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은 “만약 ‘옛사람, 옛사람’하고 소리 지르며 아득히 먼 것에만 힘써서 현실성이 적게 되면, 후세 사람들에게 그 글을 읽게 하더라도 그 사람과 그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지금의 시대에 일상의 언어를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완 作예술 작품이 ‘그냥’ 탄생한 것은 없다. 이완의 작품 역시 하나의 글자를 화면 가득 크게 쓰는 일자서(一字書) 형식이 있고, 필법과 장법에 얽매이지 않는 시도는 다른 많은 작가에게도 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창조는 기존의 것을 비틀면서 이뤄진다. 이완은 있는 것을 진실의 눈으로 발견하고, 그것을 익숙한 일상의 언어로 소통하고, 여기에 조형을 재구성한다. 특히 그는 남들이 찾지 않는 일상의 언어를 작품으로 선보이기까지 많이 고민하고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리얼리즘 서예는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 그 자체가 예술이 된다. 울림을 주는 작품은 가볍지 않다. 쓸모없는 것들이 사실은 쓸모없지 않다는 존재론적 사유와 익숙함을 낯설게 비트는 창의성은 작품의 가치를 달리하며, <뒤집어진 양말>을 당당히 예술작품으로 완성한다. 2020. 8. 26더아트21(글씨21) 큐레이터 최다은
石甫 李吉遠의 大巧若拙과 寜醜毋媚의 실현
글씨21 기획 창작지원프로젝트선정작가 이길원 작가 초대전 전시장 전경石甫 李吉遠의大巧若拙과 寜醜毋媚의 실현이 영 철(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총장)1. 들어가기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러나 만남의 인연은 쉽지 않아 일찍부터 헤아릴 수조차 없는 길고 긴 시간인 ‘겁(劫)’으로 표현하였다. 흰두교에서는 ‘한 겁’을 43억2천만년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가로×세로×높이가 각 100m인 바위를 100년에 한 번씩 스치고 지나는 천사의 옷자락에 그 바위가 다 달아 없어지는 시간을 1겁이라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옷깃을 스칠 수 있는 인연은 500겁을, 사람과 사람이 하루 동안 동행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데는 2천겁의 세월이 지나야 하며, 이웃으로 태어나 살아가려면 5천겁의 인연이 되어야 하고, 하룻밤을 같이 지낼 수 있으려면 6천겁이 넘는 인연이 있어야 하여, 억겁의 세월을 넘어서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인연이라고 한다.이렇듯 긴 시간 인연의 ‘겁’을 지내야 만날 수 있다는데, 석보 이길원 동학(同學)과 필자와는 근 20여 년 전에 만나 지금껏 교유(交遊)하고 있으니 과연 전생에 몇 천만겁 이상의 인연은 쌓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인연의 과정에서 천학비재인 나에게 전시회 후일담(後日談)을 요청하니 어떻게 사양할 수 있겠는가? 그저 어리석고 부족함을 뒤로한 채, 우리의 인연에 답하고자 한다. 寧麤毋媚 추할지언정 꾸미지 마라 · 105x35cm氣壯山河 높은 산, 큰 강처럼 기세가 웅장하다 · 135x34cm2. 대교약졸(大巧若拙)의 실천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4장에서 “아주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아주 교묘한 것은 서투른 것 같고, 아주 말 잘하는 것은 말더듬는 것 같다(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고 말하였다. 이렇듯 우리의 주된 관심사인 ‘대교약졸’은 기교와 서투름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음악, 미술, 공예, 건축 등의 예술분야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노자사상의 적자라고 할 수 있는 장자(莊子) 또한 이런 관점에서 ‘대교약졸’을 바라보았다.즉 『장자(莊子)』 거협(胠篋)편에서 모든 인위적인 기교를 완전히 부정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갔을 때 “천하 사람들은 비로소 진정한 기교를 지닐 수 있으니 큰 교묘함은 마치 서투르게 보인다(而天下始人有其巧矣 故曰大巧若拙)”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고대 음악의 달인인 사광(師矌)의 귀를 막아야 비로소 사람들의 귀가 밝아질 것이고, 눈이 지극히 밝은 이주(離朱)의 눈을 붙여놓아야 비로소 천하의 사람들이 밝음을 지니게 될 것이며, 최고의 장인인 공수(工倕)의 손가락을 비틀어 버려야만 천하에는 비로소 사람들이 교묘함을 지니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이 말은 모든 인위적인 기교를 완전히 부정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진정한 기교를 알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 22x34cm이렇듯 ‘대교약졸’의 해석은 대체로 인위적인 ‘교’와 무위자연의 ‘졸’을 서로 대립적으로 상정하고, 인위적인 기교미(技巧美)보다는 자연스러운 졸박미(拙樸美)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 이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또 다른 해석으로 ‘대교약졸’에서의 ‘졸’이 단순히 ‘교’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교’를 무조건 배척하고 부정하는 ‘졸’이 아니라, ‘교’를 포괄하는 ‘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의 ‘졸’은 그냥 단순히 서툰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서툰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기교의 최고 경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졸’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선생 『청음집』 38권의 「용졸당기(用拙堂記)」라는 글에 보인다. 여기에 보면 민성휘(閔聖徽, 1582-1647)라는 분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충청도 가림(嘉林)에 터를 잡아 집을 지었고, ‘용졸(用拙)’이라는 자신의 호를 따서 ‘용졸당(用拙堂)’이라고 당호를 붙인 뒤, 청음선생에게 기문(記文)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청음선생은 “졸이란 것은 덕이다.(拙者 德也)”라고 해석하고 있다.우리는 보통 ‘졸’은 ‘어리석다’ ‘서툴다’ 등의 뜻을 갖는 글자로, 뛰어나지 않고 별 볼일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서툴고 어리석기 때문에 꾸민 데 없이 수수하며 자랑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재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은 그 재능을 쉽게 드러내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으므로 언뜻 보기에는 도리어 서툰 사람 같아 보인다는 뜻이다.그렇다. 석보는 분명 ‘졸’을 추구하며 실천하는 사람이다. 일찍이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나 어느 곳이나 누구에게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심지어 긴 시간을 은둔(隱遁)하며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한 서예가이다. 오늘 그의 편린(片鱗) 역시 ‘사랑하게 되면 닮아간다’는 말과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성어가 대변해 주고 있다. 더욱 갈수록 시끄럽고 혼란스러워지는 서예계에 묵묵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성실하게 ‘대교약졸’을 실천하는 예술인이다.검은새 · 45x53cm象 · 117x91cm3. 석보예술의 정체성요즘 우리 서예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한국서예’라는 말로 중국이나 일본과 차별화된 한국적인 서예미의 특성을 찾으려는 노력과 고민의 흔적이 숨어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는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형성된 민족적 정체성과 자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서예는 중국이라는 틀을 완전히 벗어나서 생각할 수는 없겠다. 역사 문화 종교 학문 등 거의 전 영역에서 우리나라에 끼친 중국의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자문화를 공통분모로 하면서도 우리나라는 우리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해 오고 발전시켜 나왔음도 사실이다.우리는 한국서예를 탐구할 때,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서예미를 제시하려고 애써왔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이 우리의 탐구를 지체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서예가 중국서예와 흡사하더라도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면 우리의 서예가 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우리 서예의 독특함만을 부각시키면서 중국의 영향을 애써 배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중국의 지대한 영향에서 탄생되었다 해도 우리의 선택에 의해 취한 것이라면 우리의 서예가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같은 문화권이라고 해도 중국과 일본인이 바라보는 아름다움과 한국인이 바라보는 아름다움이 다름은 틀림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자연재앙 · 96x100cm또한 한국서예의 미를 전통적인 기법에서에서만 찾는다면, 한국적인 서예미는 생명력을 잃어 박제화 될 수도 있다. 어설픈 옛것 흉내 내기는 서예가의 활력을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서예가 자신이 한국적인 서예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한국적인 미라고 말하는 ‘무작위의 작위’나 ‘자연의 미’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탐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만이 다양함과 함께 활력과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아래는 석보의 작품을 살펴 그 특징을 찾아보겠다.서예작품으로 <기장산하(氣壯山河)>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용묵(用墨)과 율동감이 돋보인 운필(運筆)의 작품이다. 또한 <고시일구(古詩一句)>는 본인의 작품 중 <령추무미(寜醜毋媚)>의 실현인 듯하다. 전각의 작품으로 <설조산방(雪爪山房)>은 균형 잡힌 구성과 여백이 돋보이고, 그리고 초형인의 <됴룡뇽>과 <물고기와 새>는 도필로 서화동원(書畫同源)을 이해하게끔 한다. 이들 모두는 정연한 균제(symmetry)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주도면밀한 장법과 오랜 시간의 정신 수양의 결과물일 것이다.아울러 그림 <상(象)>, <거울아이>,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길 찾기>, , <자연재앙>, <슬픈 크리스마스> 등에서 보듯이 극단적인 사실성보다는 ‘무계획적’ 또는 ‘자연 그대로의’ 소박성이 돋보인다. 더욱 ‘새(鳥)’를 주제로 하는 작품 <흘겨보다>, <검은 새> 등은 채움과 비움의 미학이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결과적으로 오늘 보여준 석보의 작품들은 ‘대교약졸’의 아름다움으로 정련된 소박미와 심오한 단순미, 그리고 숙련된 평담미(平淡美)에 분산된 통일미, 또한 배경과의 조화미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대중이 선호하는 서예미와 석보 자신만의 주체성, 그리고 현재성이 작품에 녹아 들어 있다. 단지 일부 예술가나 서예가가 서예를 추상예술이나 선(線)의 예술에 구속시키고 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문자 자체가 추상적인 부분이 없지 않고, 선을 ‘긋는다’는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일리가 전혀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자의 가독성(可讀性)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서예가 문자의 점획(點劃)이 어울려 조화로운 자형을 표현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적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점 계속적인 화두로 삼았으면 한다.알베로 · 25x20cm이길원 作4. 나가기이길원은 인품의 절개와 지식의 함양을 중시하는 서예가요 전각가이며 화가이고 다도인(茶道人)이다. 다시 말해서 서화각다(書畵刻茶)의 사절(四絶)로 불리는 문화와 예술의 모든 부문에서 뛰어난 ‘퓨전 아티스트’이다. 어릴 적부터 타고난 천성(天性)을 바탕으로 박학다식(博學多識)함을 더해 그의 예술에 승화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의 편린(片鱗)들을 어떻게 일일이 나열할 수 있겠는가.필자의 아둔함을 탓하며 장석주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구절로 글을 맺고자 한다.“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중략)” 東方文化大學院大學校 總長 李永徹 두손모음2020년 8월
一葉輕舟의 생명여정
<청곡 김춘자展> 전시장 전경一葉輕舟의 생명여정 김응학 (성균관대 교수,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예술은 도(道)에 형상과 생명을 부여하고,도(道)는 예술에 깊이와 영혼을 심어준다.” 들녘에는 저마다 피는 꽃이 있듯, 서예가도 나름대로 예술의 생명을 여백 속에 틔운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들은 개인전을 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단풍시절을 맞이하여 낯선 경치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전시장을 찾는 것도 답답함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청곡 김춘자 박사(이하: 청곡)는 삶의 목표가 또렷하여 3년마다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다섯 번째의 개인전이 된다. 작품은 주로 초서이고 몇 점의 전서도 있다. 청곡은 작품의 문구부터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청곡은 오체를 잘 구사하는 작가이다. 특히, 초서는 장욱, 소동파, 미불, 황산곡, 왕탁, 우우임 등의 서체를 즐겨 공부하였다. 또한, 청곡은 성균관대학교 유학과에서 동양미학을 전공하면서 박사학위(논문:「員橋 李匡師 書藝美學의 陽明心學的 硏究」, 2011년)를 획득한 바 있다. 그 동안 필자가 느낀 청곡의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소박한 생명의 은유적 표현들이다. 그것은 형식적 화해가 아니라 생명의 조화이다. 작가는 자신의 느낌을 전서와 초서의 생명선으로 표현하면서, 모든 생명의 소중함과 움직임을 상징하여, 감상자들로 하여금 행복을 전하고자 한다.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청곡의 예술관과 인생관을 읽을 수 있다. 청곡 김춘자 · 陋室銘 一則 · 64x70cm자연의 부호ㆍ초서의 생명 처음 인류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토템부호가 문자로 전환되고, 문자는 다시 서예로 탄생되었다. 한자의 탄생에는 결승설(結繩說), 팔괘설(八卦說), 서계설(書契說) 등이 있지만, 전시작품 중에는 흥미롭게 나씨족의 동파(東巴)문자도 보인다. 동파문은 그림문자에서 상형문자로 넘어가는 독특한 문자이다. 그것은 사물의 형태나 특징을 부각시켰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색채를 사용한 문자이다. 이러한 문자들은 예술적으로 표현할 때, 반복되지 않는 생명의 한 획에 지나지 않는다. 문자는 자연을 모사하여 부호로써 창조한 것이고, 서예는 그 문자에 생명의 옷을 입혀 표현된 것이다. 예술은 정신의 문제를 떠나서 그 가치를 논할 수 없다. 예술은 마음의 표현이므로, 어떠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서예를 서구회화와 비교하면, ‘생명의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 ‘물질의 생명화’와 ‘생명의 물질화’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따라서 동ㆍ서양의 우주관ㆍ인생관ㆍ미학관이 서로 다르게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서의 필획은 어느 서체보다도 풍부한 생명감을 잘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종백화가 말한, “예술은 도(道)에 형상과 생명을 부여하였지만, 도(道)는 예술에 깊이와 영혼을 심어주었다.”는 점과 통한다. 그러므로 안목 있는 감상자들은 작품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함께 보는데, 청곡의 이번 개인전에서 잘 감상할 수 있다고 본다. 청곡 김춘자 · 杜牧 詩 2首 · 70x135cm대자연의 역동적 생명들... 청곡의 초서는 필묵의 흔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자연의 생의(生意)를 투영해낸 것이다. 역대 명가들은 한결같이 대자연의 역동적인 생명의 모습을 스승으로 삼았다. 예를 들면, 왕희지는 물 위에서 거위가 목을 돌리고 노니는 모습을 보고 사전법(使轉法)을 깨달았고, 장욱은 공주와 짐꾼, 북소리, 공손대낭이 칼춤을 추는 것을 보고 그 정신을 얻었다고 한다. 회소는 기이한 많은 산봉우리에 여름날의 구름이 지나는 것을 보고 이를 스승으로 삼으면서, 그 통쾌함은 마치 나는 새가 숲을 벗어나고 놀란 뱀이 풀숲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회상하였다. 특히, 그는 여름날 구름이 바람 따라 변하는 모습에서 초서의 장법을 깨달았다고 한다. 황산곡은 노젓는 것을 관찰하면서 조화로운 리듬감을 포착하여 필법을 얻었다고 한다. 청곡 김춘자 · 漁歌子 · 35x120cm 이 밖에, 문여가는 길에서 뱀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그 묘를 얻었고, 뇌태간(雷太简)은 강물소리를 들으며 깨달았다고 한다. 선우추(鮮于樞)는 진흙길에서 수레 끄는 모습을 보고 필법을 얻었다고 전하는데, 이러한 은유적 표현들은 모두 대자연의 생명과 서예의 관계를 묘사한 것이다. 여백 속에 전개된 묵적들은 때로는 정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생동하는 의취(意趣)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옹방강은 ‘세상에는 초서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심미적 관점은 만상의 생동적인 모습과 작가 스스로의 체득이 함께 있어야 한다. 자연만물의 형태미와 동태미의 묘태(妙態)는 초서가 아닌 것이 없으므로, 서예가들에게는 법첩이 되었고, 무언종사(無言宗師)가 되었으며, 운필의 자양분이 되었다. 청곡 김춘자 · 福 · 35x70cm초서의 생명화 과정 청곡의 작품은 간결하면서 생동하고, 담담한 가운데 마음과 글씨, 그리고 만상이 먹빛으로 출렁인다. 먹빛은 사람의 마음을 소란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깊이와 모든 움직임을 가슴에 품은 고요함이다. 이러한 점은 청곡의 종교적 갈망이기도 하다. 청곡의 운필은 사물에 비춰진 생명을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청곡은 어떻게 여백이라는 공간을 생명감으로 전환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초서이다. 청곡은 초서로써 문자의 공간적 규범을 풀어헤치고, 필획을 긋는 시간적 순서로 생명화 하였다. 초서의 생명화 과정은 필순이나 먹물을 묻히는 간격을 통해 변화를 주었고, 연속적인 움직임과 변화를 통하여 생명감을 강화시켰다. 필획들은 고요함에서 움직임으로, 단절에서 연속으로, 넓어졌다가 다시 협소해지고, 성글었다가 다시 조밀해져, 앞뒤 글자의 생명을 서로 연결시키면서 자연스럽게 표출하였다. 본래, 초서의 변천사는 예서의 특징을 지닌 장초(章草)에서, 해서에 가까운 금초(今草)로 변하였다가, 다시 앞뒤 글자들의 생명력이 서로 자유분방하게 연결되면서 광초(狂草)로 변모하였다. 청곡 김춘자 · 震默大師 頌 · 70x70cm 양(梁) 소연(蕭衍)은 『초서상(草書狀)』에서, 초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빠르기는 뱀에 놀라 길을 잃은 것 같고, 더디기는 강에서 이리저리 헤매는 것 같다. 느긋하기는 까치걸음이요, 후려치기는 꿩이 부리로 쪼는 듯하다. 점은 토끼가 뛰어오르는 것 같으면서, 홀연히 머무르다 갑자기 당기고 마음가는대로 행동한다. 굵기도 하고 가늘기도 하며, 자태는 자유롭고 움직임은 기발하다. 구름은 모였다가 비는 흩어지며 바람이 휘몰아치고 번개가 내달린다. 그 이루어짐은 거칠면서 근육이 있는 듯,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나 칡덩굴이 얽혀진 듯, 연못의 교룡이 서로 칭칭 감은 듯, 산에 사는 곰들이 서로 다투는 듯하다. 마치 날개를 펼치면서 날지 않고, 달리려 하면서도 도리어 멈추는 듯하여, 그 형상은 구름 덮인 산속의 옥과 같고, 은하수의 무수한 별과 같다.(疾若驚蛇之失道, 遲若淥水之徘徊. 緩則鴉行, 急則鵲厲, 抽如雉啄, 點如兔擲. 乍駐乍引, 任意所爲. 或粗或細, 隨態運奇, 雲集水散, 風回電馳. 及其成也, 粗而有筋, 似蒲葡之蔓延, 女蘿之繁縈, 澤蛟之相絞, 山熊之對爭. 若舉翅而不飛, 欲走而還停, 狀雲山之有玄玉, 河漢之有列星)” 이러한 표정들은 자연 속에서 변화하는 생명을 초서의 생명감으로 비유한 것이다. 청곡의 초서 역시 공간적 특징이 약화되면서 생명의 특징이 강화되어 있다. 필획의 수평선은 때로는 안정감이 있고, 변화하는 곡선은 조화로움이 있다. 하지만 불규칙적적으로 방향이 전환되고 꺾이는 획에서는 긴장감이 감돈다. 이러한 점획들은 모두 변화하는 생명의 느낌을 준다. 청곡의 초서에서 느끼는 점은 순환왕복하면서 변화하는 생명감이다. 그 생명감은 그저 일차원적으로 쭉 뻗어나가는 시간관념보다 훨씬 자유롭다. 따라서 청곡은 생명의 시선으로 만물을 바라본 듯, 만물의 형상들을 생명의 리듬으로 표현하고 있다. 청곡 김춘자 · 飛 · 34x39cm 전시작품은 40점으로 초서가 대부분이다. 일견(一見)하면, <日光照四方>, <新年>, <同舟>와 부채에 쓴 <月色明大地>는 흥미롭게도 동파문을 생명화 하였다. <飛>는 먹빛이 맑고 담백하여 작품내용과 잘 어울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하다. 금문의 <程顥 詩>와 갑골문의 <福>은 회화적 느낌을 주고 있지만, 회화에서 느끼지 못하는 필력이 돋보인다. <和>는 필획이 튼튼하면서도 여백과 잘 어울리고, <張維 詩>는 초서로서 유일하게 횡폭으로 완성되었다. 본래, 초서는 물 흐르듯 아래로 써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작품의 경우에는 횡폭으로 구성하였음에도 그 느낌이 좋다. <柳夢寅 詩>는 광초의 붓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古柏行>은 5폭을 연결한 대작으로, 점획들은 넓게 느껴지는 여백이지만 서로 조화롭게 출렁이고 있다. 청곡 김춘자 · 謝靈運 詩句 · 35x127cm생명의 이상ㆍ미의 이상 서예가들은 모두 자신의 이상이 있다. 그것은 청곡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서예는 하나의 기교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풍부한 예술경계, 인생경계, 도덕경계를 투사할 수 있다. 담장 밑의 풀이나 작은 꽃 한 송이, 자연의 모든 동작들은 끝없는 생의(生意)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서예도 무한한 생의(生意), 생취(生趣)를 표현하여야 이상적인 작품이 된다. 초서의 핵심은 생명정신에서 기원한다. 초서는 모든 서체 중 가장 자유분방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생명의 이상, 미의 이상과 관련하여 새롭게 사고하여야, 개성 있는 생명의 흔적이 드러날 수 있다. 청곡의 초서는 그저 아침에 피어나는 화려한 꽃이 아닌, 비바람이 몰아친 뒤의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결국, 예술의 경지는 담백한 작품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규범 속의 자유요, 가지런함 속의 변화이며, 법고 이후의 창신 속에서 나온다. 따라서 공자가 말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이다. 이러한 점은 청곡작가가 지향하고자하는 서예의 묘처이다. 모든 서체 중에서, 초서는 곡선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지만, 광초는 생명정신을 가장 잘 체현할 수 있다. 초서는 점획으로 생명을 전하므로 점획은 초서의 정수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손과정은 말하길, “해서는 점획으로 형질을 삼고 사전(使轉)으로 성정을 삼으며, 초서는 점획으로 성정을 삼고 사전(使轉)으로 형질을 삼는다.(眞以點畫爲形質 使轉爲情性, 草以點畫爲情性 使轉爲形質.)”고 하였다. 여기서 초서의 생명성은 점획이 형질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간략함을 특징으로 하는 초서는 노장미학의 근본정신인 덜어냄을 상징한 것이다. 초서는 점획의 리듬과 묵색의 변화 속에서 정감을 적화(迹化)하고 여백을 생명화 한다. 초서는 사의성(寫意性)이 활발하여 일기(一氣)로 완성될 때, 그 변화는 풍부하고 자유분방하다. 하지만, 소식은 “글씨란, 본래 아름다움에 뜻이 없어야 아름답다.(書初無意於佳乃佳耳)”고 말한다. 그것은 붓질을 제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청곡 김춘자 · 日光照四方 · 50x160cm 서예행위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수양적 의미도 있지만, 유한을 무한화 시키고자하는 이상도 있다. 서예를 즐긴다는 것은 인생의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예술행위이다. 따라서 동양미학에서 예술은 도(道)와 통하기 때문에, 눈으로 봄에 도(道)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청곡의 예술정신이 여백 속에 깃들어가는 비밀이기도하다. 『논어』에서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글이 나온다. 이러한 즐거움은 청곡작가에게 꼭 어울리는 말이다. 필자는 서예를 즐기는 청곡의 삶을 보면서, 하나의 별이 지상에 내려와서 여백을 즐기는 행복한 서예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찌 보면, 일엽경주(一葉輕舟)를 타고 무릉도원으로 향하는 생명의 여정일지 모른다. 개인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경자년 가을날자심루(自心樓)에서 쓰다.
신 문자도展
<신 문자도展> 전시장 전경문자와 이미지의 만남 더아트21 큐레이터 최다은 최근 패션, 캐릭터, 게임, 테크 등 여러 분야에서 서로의 강점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과 작품을 생산해내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주로 오래된 브랜드들이 젊은 Z세대에게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기획되는 경우가 많은데, 취향만 존중된다면 오래된 브랜드도 큰 인기를 얻는다. 무분별한 컬래버레이션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브랜드의 협업은 색다른 이미지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강병인 & 박연옥 · 큰 솔 호표 문자도 · 94×60cm 이번 「신 문자도」 展 역시 서예와 민화라는 각 분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하고 전통예술의 이미지를 재고해보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작가마다 제 역량을 발휘하면서 서로의 작업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는 시도는 단순한 협업을 넘어서는 융합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아트 컬래버레이션의 역사는 재능있는 예술가를 전적으로 지원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家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술은 감정을 감화하는 힘이 있어서 유명작가의 예술작품을 활용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었고, 이후 예술 전반으로 확대된 것이다. 김소영 & 김연우 · 나랏말싸미 · 110×100cm 문자도는 문자의 의미를 중시하는 개념예술로서의 문자와 자유분방한 생활 미감이 반영된 민중예술로서의 그림이 조화를 이루는 예술과 예술의 컬래버레이션이다. 18, 19세기 문자도에는 크게 길상(吉祥)과 부귀(富貴), 효제(孝弟)를 뜻하는 문자가 쓰였기 때문에 문자의 의미를 나타내는 용과 호랑이, 수복강녕(壽福康寧), 유학 사상이 담긴 고사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문자 안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무늬로 장식했고, 그림이 문자의 부분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교훈적인 내용보다는 저잣거리의 삶을 담아내며 장식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예술적으로 문자도의 독자적인 양식을 세우는 배경이 되었다. 20세기에도 문자도의 생산은 있었지만, 정형화된 도안을 제작하는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민화는 오늘날 가죽 끝에 무지개색을 묻혀 이름을 쓰는 혁필화로 마주하고 있다. 문자도 이면의 공통된 가치는 행복을 염원하는 정신에 있다. 임선유 & 김지숙 · 화려한 외출 · 90×60cm 「신 문자도」는 서예 작가와 민화 작가의 개성적인 글씨, 색채, 디자인이 어우러져 오늘날의 언어와 미감을 반영한 2021년 문자도이다. 문인 사대부의 예술로 보급된 서예의 태생적 이미지를 전환하고, 장식화로 머무는 민화의 문자의미 부재를 상호보완한다. <솔 호표 문자도>는 전통적인 호랑이 민화를, <숲> 작품은 기물에 일부 문자를 새겨 넣은 <백수백복도>를 모티브로 삼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조선이라는 시대적 특성에 따라 주체적인 여성을 상징하는 문자도를 찾기가 쉽지 않지만, 조선 중기 이후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이 쓰던 기물을 표현한 책가도가 있다. <여인의 꿈>은 민화가 진정한 민중예술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게 한다. <以患爲利>는 자유분방한 표현 형식으로 현 코로나 시국을 극복하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외에도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문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형상화하는 다채로운 형식미를 보여준다. 이 완 & 박선영 · 숲 · 90×60cm 컬래버레이션은 이제 전(全) 과정에서 나타나는 익숙한 현상이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구분도 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비주류로 취급받는 B급 예술이 다수가 선호하면 주류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분야가 상생의 과정을 거쳐 신선한 콘텐츠를 창조할 때 사람들은 관심을 둔다. 오늘날의 언어와 상징물로 현대판 문자도를 완성한다면 문자도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물론 사회적 효용성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신 문자도」 展이 가져올 긍정적인 기대 속에 서예와 민화 두 분야의 행보가 주목된다.2021. 7. 6글씨21
한글書의 미래展 2부
<한글書의 미래展 2부> 전시장 전경현대 한글서예의 예술적 위상 정립을 위한 탐색박정숙(경기대학교 Fine Arts학부 서예전공 초빙교수)서예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였다. 1910년대 후반 몇몇 전문서예가가 등장하여 그들이 운영하는 서숙(書塾)에서 교육이 이루어졌고, 습자 과목이 초·중등학교 정규 교과에 편입되어 실기 위주의 서예교육이 실시되기도 하였다. 서예 전문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실기 위주의 도제식 교육이 1980년대까지 주된 서예 교육방식으로 이어져 오면서 공모전 입상을 위한 과도한 경쟁, 스승의 체본 위주의 실기 편중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이 무렵 서예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실기는 물론 서예이론 전반에 대한 학문적 탐구, 나아가 조형예술 일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 등을 통한 전문 서예가 양성을 목적으로 원광대, 계명대, 대구 예술대, 대전대, 경기대 등에 서예과가 창설되었다. 그러나 대학 입학 연령층 인구의 급격한 감소, 졸업생의 진로 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다른 대학의 서예과는 폐과되고 경기대학교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서예과 출신 서예인들이 이루어 놓은 예술적 성취는 괄목할 만하다. 예컨대 필묵정신을 디자인과 결합시켜 캘리그라피라는 손글씨 장르를 개척한 점, 전통서예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필묵을 새롭게 해석한 서체 추상을 시도하여 조형예술로서 서예의 영역 확장에 기여한 점 등이 그것이다.김대연공든 탑 · 130×60㎝ · 한지에 먹과 아교우리가 추구해 나아가야 할 이상적 서예상은 전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시대정신에 부합하고 나아가 시대정신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선도할 수 있는 조형예술로서의 서예일 것이다.이러한 시점에서 21세기 한글서예가 당면한 과제는 ‘지켜 가야 할 전통은 무엇이며, 추구해야 할 새로운 한글 서예상은 어떠한 것인가?’로 요약된다. 즉, 전통과 창조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에 접근하는 시각 정립에 관한 문제이다. 지강 김승민용비어천가 제2장 · 111×60㎝ · 화선지(상수지)에 먹(어락)글씨21에서 기획한 “한글서의 미래” 1부 전시회에서는 전통의 맥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2부 전시회의 핵심적 과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 서예상의 한 범주로서 한글서예가 추구해야 할 조형질서 창출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궁체 판본체 등 전통적인 한글서예를 익힌 서예 전공(학부, 석·박사포함)자들의 작품을 전시하여 한글서예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을 찾기 위한 장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기존의 한글서예 조형에서 벗어나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통하여 작가의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작품들(김대연, 김대일, 김도임, 이신영, 이완, 최일섭)도 볼 수 있다. 표현 재료에서도 지·필·묵이라는 전통재료에서 벗어나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함으로써 이 시대인들이 요구하는 예술적 감성에 부응하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들(경현실, 김성태, 김소진, 김정민)도 주목된다. 청람 이신영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 124×54㎝ · 화선지에 고먹필자는 평소 한문서예를 주로 익힌 작가들에게 그 필력과 필획을 한글 서예에 응용하여 ‘고졸한 필획’, ‘웅장한 필세’를 구현하도록 권유하곤 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한문서예를 전공하여 그 필력과 필획의 장점을 잘 구현해낸 작품(김승민, 성인근, 이도영, 이광호)이 있는가 하면 한글서예를 주로 하는 서예인의 작품은 전통의 틀을 유지하며 장법의 묘를 살리는데 주안점을 둔 작품(권지민, 김남훈, 김선경, 김이중, 조용연, 이연주, 장루비)도 눈에 띈다. 강솔 이 완동이와 나와 76×47㎝, 모변지에 먹이 시대는 다양한 조형질서 창출을 위한 서예인들의 예술적 고뇌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와 호흡을 함께하는 시대인들의 예술적 감성을 감지하고 그 흐름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참신한 작가의 개성을 서예를 통해 형상화하여야 할 것이다. 전시 작품 가운데는 종전의 전시회에서 보아오던 작품과는 현저히 다른 새로운 한글 작품(장지훈, 최재석, 이정화)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은 전통 한글 서법에서 지나치게 벗어났다는 점에서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이들의 실험이 지향하는 바가 긍정적 요소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장보 최일섭건너 · 79×55㎝ · 모조지에 먹마지막으로 작품을 창작할 때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겠다는 작가의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학에서의 전공은 본인이 평생 안고 가야 할 무거운 책임을 부여한다. 따라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작업을 수행할 때 분명한 작가의식이 형성되고 자신의 전공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 향상될 것이다. 우리민족 고유의 문자인 한글을 소재로 하여 시대정신을 내함한 창작활동에 열중하는 서예과 출신 작가들에게 뜨거운 가슴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2021. 8. 30글씨21
洪啓祐의 『四難譜題』
洪啓祐의 『四難譜題』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석사 졸업 김원경 『四難譜題』는 1761년 洪啓祐(1710∼?)가 金孝大(1721∼1781)의 印譜 『四難譜』에 써준 것이다. 『사난보』는 현재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난보제』는 『사난보』 뒤에 붙여진 것이 아니라 인보가 성책된 이후 별도의 단행본 형태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효대의 인장은 현재 발견된 실물과 인영이 없는 실정이고 『槿域印藪』에도 실려 있지 않다. 『사난보제』에서 홍계우가 칭하는 四留軒 金公이 바로 김효대이다. 김효대의 본관은 慶州, 字는 汝原이고, 조부는 金柱臣(1661∼1721)이며, 肅宗의 繼妃 仁顯王后(1667∼1701)의 조카이다. 글을 쓴 홍계우는 본관은 南陽, 字는 季應, 號는 月南이며, 洪儀泳(1750∼1815)의 아버지이다. 표지 앞, 뒷면김효대는 자신이 인장을 새기면서 느꼈던 어려움 네 가지를 ‘治石’, ‘寫篆’, ‘刻字’, ‘印紙’ 라고 규정하고, 인보의 이름을 ‘四難譜’라고 하였다. 인보 『사난보』는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글의 내용으로 보아 김효대가 직접 새긴 인장이 실려 있을 것이고, 다양한 전서체를 활용한 것으로 보이며,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만난 柳約(생몰년미상)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약은 17∼18세기 저명한 전각가인데 季良 李最之(1696∼1774)와 함께 인장을 새겼으며, 중국의 전각가 保硯齋 林本裕(1652∼1753)와도 교유한 바 있다. 내지 첫 장글에서 홍계우는 김효대가 인장을 대하는 태도, 인장 자체에 대한 효험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信標로서의 기능과 印材, 印文에서 취할 만 한 점이 있다며 효험을 강조하였고, 이러한 효험에도 인장을 벽으로 여기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였다. 글의 마지막에서는 김효대의 인장은 사람들의 평가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정도로 이미 매우 높은 수준이라 극찬을 하였고, 漣水의 시골에 머무르게 된다면 말채찍을 잡고서라도 따르고 싶다고 말하였다. 연수에 대해서는 중국 문인전각가의 시초 米芾(1051∼1107)과 관련된 일화 하나가 있다. 연수는 미불이 知事로 근무했던 지역인데 壽石의 産地로 유명하였다. 수석 수집이 취미였던 미불은 이 돌에 정신이 팔려 관청의 일을 게을리 하였고 결국 미불의 벗 楊傑이 시찰사로서 미불을 감독하러 갔으나 오히려 양걸마저도 수석에 마음을 뺏겨 미불이 자랑하는 수석 하나를 가로채 돌아왔다고 한다. 홍계우는 이 일화에 빗대어 김효대를 따르겠다고 한 듯 보인다. 또한 玩物喪志에 빠졌던 미불을 언급하면서 정사도 잘 돌보며 자신의 취미를 발전시킨 김효대를 넌지시 강조하였다. 이로 보아 홍계우 역시 인장에 대한 애호가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내지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장* 이미지 파일 내 印章月南晩樵 : 홍계우의 號 ‘月南’ + 晩樵洪啓祐印 : 홍계우 이름季應 : 홍계우 字『四難譜題』는 조선시대 인장문화와 인장비평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김효대가 문인 신분으로 自刻을 하고 印譜를 제작할 정도로 많은 양의 인장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문인들의 인장에 대한 강한 愛好를 볼 수 있으며, 凌壺觀 李麟祥(1710∼1760) 전각 유파의 인물 중 한명인 \'유약\'을 언급한 부분에서 당시 인장 관련 교유 역시 왕왕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문인들이 인장 유파를 형성하고 인보를 제작하면서 발전했던 17·18세기 조선 인장문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내지 마지막 장* 이미지 파일 내 印章與爾同消萬古愁 : 李白의 詩 「將進酒」 마지막 구절그리고 기존 문인들의 인장 소재 글에서 인장에 대한 애호, 완물상지의 경계, 전문적인 식견을 드러낸데 이어 이 글에서는 인장에서 배울만한 점을 찾고 그 효험을 강조하였는데, 이를 통해 조선시대 문인들의 인장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의 변화도 함께 엿볼 수 있다. 『四難譜題』는 본래 “김양동, 「추사와 그 시대의 전각」, 『남정 최정균 교수 고희기념 서예술논문집』, 원광대학교 출판국, 1994.” 에서 처음으로 일부 공개되었고, 본래 故 고재식 선생님의 소장본이다. 필자가 석사논문 작성과정에서 김양동 선생님께 자료를 제공받아 원문 전체를 공개, 번역하였다.2021. 12. 14글씨21
<천발신참비> 서체의 내재적 논리 및 표현 특징
김홍대 (하남이공대 교수) \'천발신참비 (276)\'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서예사에서 가장 개성 있는 작품 중 하나다. 동오 황제 손호가 \'영험한 덕을 찬양하고 길상에 답하기 위해\' 세운 이 비는 당시 최고 수준의 비이며 그 영향이 매우 크다. 이 논문은 주로 독특한 서체의 원인, 서체적 영향 관계 및 현대서예에의 시사성 세 가지 측면을 다루고 있다. 이 세 부분은 다른 학자들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이 논문을 통해 \'천발신참비\'의 창작 원리나 배경 그리고 왜 대부분 학자들이 이 비의 서체를 보고 괴이하다 느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먼저 독특한 서체의 원인에 대해 살펴보자. \'천발신참비\'는 동오 마지막 황제 손호가 정치적 안정을 위해 하늘이 내려준 권위와 정통을 선전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이 비를 세우는 입장에서 보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첫째, 글자를 통해 하늘의 영험과 신비가 전해져야 한다. 둘째 비석을 통해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첫 번째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설립자는 여섯 가지 장치를 만들었다.1. 하늘에서 내려온 문자이므로 기존 글자와 다른 낯설게 함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전서와 예서를 혼합해 한 글자로 조합한 것도 있고(도 1.1), 과감하게 변형한 것도 많다.(도1.2) 이런 글자가 모두 143개로 83.1%를 차지한다. 전형적 전서는11개(도 1.3),6.4%이고 예서18개(도1.4),10.5%다. 통계 숫자가 말해 주듯 이 비엔 낯선 글자가 월등히 많아 생소한 느낌을 성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도1) 《천발신참비》 자형(字形) 2. 이 비의 글씨 형태가 상당히 복잡하다. 도 2와 같이 풍부한 자형은 관객들에게 완전하고 통일된 느낌을 주기 어렵다. 따라서 글씨 쓴 사람의 글쓰기 의도나 법칙을 발견하기 어렵고, 상당히 무질서해 보인다. 자형에 대한 통계는 이러한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비석의 직사각형 자형은 94개로 54.6%를 차지하며, 그중 세로 직사각형 86, 납작한 모양 8이다. 정사각형 40개, 23.3%를 차지한다. 사다리꼴 28개, 16.3%이며, 원형 10개로 5.8%이다. 그 중 세로 타원형 5개이며 가로 타원형도 5개다. 이렇게 풍부한 글자 모양이 비면에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생동감 있고 신비로운 색을 더하고 있다.도2) 《천발신참비》 字形비율3. 의도적으로 특정 자형과 획을 통일적으로 변형 처리했다. 비에 신비스러운 색채를 더하기 위해 비석을 세운 사람들은 계획적으로 일부 글자 형태와 획을 동일하게 변형 처리했다. 도 3은 상단 10행 5번째 글자 \'字\'로 전체 모양은 사다리꼴이다(도 3.1), 글자는 전체적으로 윗부분이 치밀하게 잘 짜여 있고 아랫부분은 느슨하다 (도 3.2), 좌우의 짧은 세로 두 획은 의도적으로 길게 해 아치형(도 3.3)으로 되었다. 글자 윗부분은 필획이 굵고 아래는 뽀족하다.(도 3.4) 이러한 처리는 글자 아래에서 들어간 공기가 글자를 공중으로 상승시키는 것같이 보이게 한다. 이 비의 갓머리 부분은 대체로 위와 같이 일괄적으로 처리하였다. 또한 세로획, 삐침 등은 대부분이 기필하는 부분이 굵고 둔하며 수필 하는 부분을 뾰족하게 처리하여 글자가 하늘에 떠 있거나 공중으로 표류하는 듯한 시각적 느낌을 내고있다. 이러한 효과는 하늘의 신비로운 징후를 시각적으로 돋보이게 한다.도3) 《천발신참비》 “字”자 분석4. 이 비 문자의 중심축은 극히 미묘하게 처리되거나 불안정하게 구현되었다. 예를 들어, 도 4.1은 상단 14행의 두 번째 글자 \'部\'이며 좌우 A, B, C, D, E의 5개의 짧은 선은 글자 각 부분 중심축의 복잡 다 변함을 보여준다. 그림 4.2 상단 18행 3번째 글자 고(故)도 마찬가지다. 왼쪽 고(古)와 오른쪽 등글월문(攵)의 기울기와 글자 중심 높이가 달라 미묘한 역동성을 주며 글자가 공중에 떠 움직이는 듯한 불안함을 전한다. 도4) 글자의 중심축선 분석5. 글씨의 기필 부분과 수필 부분, 두 획의 연결 부분, 획의 전환 부분, 서로 다른 획의 교차 부분 처리 방식이 풍부하고 다양하다. 가로획과 세로획으로 시작하는 기필과 수필 모양이 좋은 예이다(그림 5), 사각형, 뾰족한 모양, 긴 호, 원형 등 여러 가지 기필 형태가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획의 굵기가 동일하고 시작과 끝의 모양이 둥근 전서와 차이가 큰 점이다. 그리고 예서의 잠두연미 및 비교적 고정된 획 처리 방법과도 상당히 다르다. 천발신참비\'의 이러한 필획의 특성은 매우 혼란스럽게 나타나는데 이 부분은 성공적으로 낯선 느낌을 조성하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도5) 《천발신참비》 가로세로획의 기필 수필 형태6. 이 비석과 관련해 하늘이 내려준 징조인 \'석문리성자(石文理成字)\'의 느낌을 강화하기 위해 이 비의 획처리는 굵고 거친 한나라의 마애석각(摩崖石刻) 효과를 기본적으로 적용하였다.(도 7) 예를 들면 상단 11행 첫 번째 글자 \'삼(三)\', 상단 17행 첫 번째 글자 \'대(大)\'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디테일은 비가 세워지는 배경 속\'석문리성자(石文理成字)\'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해준다. 요컨대 천발신참비 서체가 아주 독특한 이유는 비를 세운 목적이 다른 비석과 다르다. 역사상 대부분 비는 대체로 주어가 인간이다. 즉 대개 비석은 인간의 다채로운 욕구를 시각화하는 수단으로 세웠졌다. 그러나 <천발신참비>는 비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하늘이 내린 신성한 징조를 감사해 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비석을 세운 사람들은 위 여섯 가지 장치를 통해 하늘의 신성함과 신비로움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역사상 대부분 학자들이 이 비를 기궤하다 평한 것은 이를 반증한다. 달리 말해 이 비는 설립자의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디자인 된 것이다. 두 번째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세 가지를 중시했다. 1. 서체의 선택. 설립자 권위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 전 시대 공식 서체인 전서와 예서를 바탕으로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다. 의도적으로 적국인 서진 공식 서체인 해서에 가까운 서체는 배제했다. 2. 장법. 비록 계선 없고 글자 크기도 다소 다르나 행과 열 배열에 있어 황제 위세를 느낄 수 있게 했다. 3. 문자 크기. 비문 모든 글씨가 대략 10cm 정도로 크다. 하늘의 명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체험하기에 더욱 적합하다. 도6) 《천발신참비》 연결부분 및 전절부분의 각종 처리 형태둘째, 서체적 영향 관계. 이 부분의 주요한 내용은 천발신참비에 현재와 다른 글쓰기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즉 한 획을 여러 번 나누어 완성하는 ‘다필’적 글쓰기 방법이 당시에는 자주 쓰였다. 논문에선 천발신참비에 보이는 다양한 다필적 글쓰기 방법뿐 아니라 한대와 육조시대 때 다른 실물을 예로 들어 구체적이고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도 8) 셋째, 현대서예에 주는 시사성. 천발신참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세 가지다. 첫째, 문자의 기능에 관한 내용이다. 문자는 인간이 의사소통의 편의를 위해 창조한 도구일 뿐이다. 문자를 자유롭고 다양하게 사용하여 일정한 목적을 만족시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문자의 기본 기능 중 하나다. 따라서 문자가 명확하게 의도한 뜻을 전달했다면 그것으로 문자는 임무와 사명을 다한 것이다. 공예품의 글자와 붓으로 쓴 글자는 모두 정보를 전달하는 문자이다. 경우에 따라 다른 효과를 발휘한다. 그들 사이에는 가치상의 높낮이가 없다. 다만 용도와 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신분과 지위를 이용해 모종의 도구로 쓴 글자를 어떤 이익집단의 전유물로 보고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글을 쓰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문자를 사용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정보의 이상적이고 효과적인 전달이며,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셋째, 서예 이론에 관한 내용이다. \"천발신참비\", 서진의 \"벽옹비\", 심지어 왕희지의 \"난정서\"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필순, 용자팔법, 시간성 등의 요구에 어긋난 글자가 많다. 따라서 이 부분은 각종 서예 이론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생각을 요구하고 있다. 점점 더 개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대, \'천발신참비\'는 우리에게 어떻게 글을 써야 개성이 뚜렷하고 의도가 명확한 서예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시사하고 있다. 이는 \'천발신참비\'가 후대 서예가에게 남긴 소리 없는 선물이다. 도7) 한대 마애 석각 효과특정 시대, 특정 사회의 영향으로 탄생한 천발신참비는 다른 서예 작품과는 매우 다른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비문은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고 특수 효과를 거두고자 할 때 목적에 맞는 혁신적인 서예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둘째, 비문은 개성이 뚜렷한 서예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글자의 구조와 쓰는 방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실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셋째, 이 비는 관성적 사고의 틀 속에서 모든 서예를 이해할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환경과 시대에 따라 서예 이론은 변한다. 천발신참비는 진나라와 한나라 그리고 육조 시대 서예는 현재와 다른 패러다임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도8) 《천발신참비》에 보이는 다필 효과와 그 효과의 역사성 및 시대성이 논문은 2024년 7월 호<중국서법>에 실린 《天发神谶碑》书风内在逻辑及表现特征研究를 번역 요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