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Review]

2021-07-09
一中, 시대의 중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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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68일부터 76일까지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일중 김충현 탄생 100주년 기념전 <一中, 시대의 중심에서>가 열렸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열린 단비와도 같은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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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가(買書歌) 복제본 · 31×139.2cm · 1939년


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 국필로서 지금도 칭송받는 일중 김충현(1921~2006)은 한국의 사회적·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글씨에만 매진해 일가를 이룬 서예가이다. 이번 전시회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김충현의 작품을 통해 한국 근현대서예 100년을 돌아보기 위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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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井邑詞) · 63.5×136cm · 1962년


김충현은 훈민정음, 용비어천가등의 옛 판본체에서 전서와 예서 필법을 가미해 고안한 고체(古體)’를 선보였으며, 궁중에서 쓰던 궁체(宮體)를 연구해 한글 서예 보급에 노력했다. 1974년에 쓴 유관순 기념비는 해방 후 쓰여진 최초의 한글 비문으로, 이후 한글 비문 제작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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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현 서, 오옥진 각,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 (책)24.5×30.5cm · 1980년


<一中, 시대의 중심에서>는 총 5부로 구성돼 김충현의 작품을 시대별·주제별로 만나볼 수 있었다. 1<서예에 눈뜨다>는 해방 이전까지의 초기 작품들이 전시됐다. 김충현은 구한말 한일합병에 항거하여 자결한 오천 김석진의 증손으로, 김충현의 집안 어른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외부와 단절하고 자손들에게 직접 경학과 한학을 가르침으로써 김석진의 뜻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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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후 『백련초해(百聯抄解)구』 · 34×139cm(2) · 1983년


서예가 일상이었던 가풍 속에서 집안에 대대로 전해 내려온 한글 서첩과 한문 서한은 그의 교본이 되었고 가학을 익히며 키운 항일 의식은 민족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일조한 궁체 연구로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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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 화갑시(素軒華甲詩) · 42×30cm · 1969년


2<일중의 한글 서예, 변화의 중심에 서다>에서는 해방 후 변화해가는 시대에서 김충현이 어떤 서예를 펼쳐보였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해방 후 한국은 일제로부터 억압돼있던 우리 고유의 문화를 재건하고자 고군분투했던 시기로, 민족의식을 드높이기 위해 한글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의 문화가 재편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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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무양(菊花無恙) · 43×66cm · 1970년


김충현은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한글 고체를 통해 후대 서예가들에게 고판본 연구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한글 문화의 계보를 되짚어가는 그의 작품은 우리 문화가 풍성하게 꽃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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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산첩(洞深山疊) · 34×122cm(2) · 1972년


3<서체의 혼융, 일중체를 이루다>에서는 김충현의 한문 서예가 전시됐다. 그는 한문과 한글 서예를 융합함으로써 자신만의 개성을 발현한 동시에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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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풍연 『청사수필』 (표지화 박래현) · 13×18.5cm · 1959년


4<제호와 비문>에서는 일상에 녹아든 김충현의 글씨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는 서예 작품뿐만 아니라 다수의 제호와 비문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0년대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의 유니폼 상의에 적힌 고풍스러운 제호 三星(삼성)’은 위풍당당한 이미지로 당시 삼성 왕국을 구축한 구단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예서체로 쓰인 이 한자는 김충현이 남긴 것으로 한국 최대 재벌의 과거를 상징하는 역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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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강조동식선생전기 · 5×28cm / 17×23.5cm · 1979년


그 외에도 현대, 럭키, 선경 등 당대 재벌 그룹의 제호를 비롯해 옛 서울대 캠퍼스 정문에 붙어있던 서울대학교’, 여의도 수정아파트’, 천마콘크리트공업주식회사등의 제명과 상호들이 김충현의 붓끝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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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씨쓰는법』 · 15×23cm · 1948년


마지막으로 5<일중과 사람들>에서는 8김충현의 교류 및 교육 활동에서 드러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로, 김충현이 출판한 서예 교재들과 지인들과 주고받은 글씨, 편지를 통해 본분을 지키되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던 그의 선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시대가 천번 바뀌어도 항상 형형한 먹빛처럼 변치 않는 그의 정신과 시대를 관통하는 그의 작품은 다음 세대까지도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다.

 

 

2021. 7. 9
객원기자 신혜영

 

 

<전시정보>

일중 김충현 탄생 100주년 기념전

一中, 시대의 중심에서

전시기간 : 2021. 6. 8() ~ 7. 6()

전시장소 : 백악미술관 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