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Preview]

2022-05-03
섬돌 신정범 작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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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포스터


석정 선생님의 다시 쓴 글씨를 보고

성인근 (경기대학교 교수)

 

이야기는 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학 시절, 아마도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서점에 들른 저는 오쇼 라즈니쉬라는 인도 철학자의 책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와 읽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훌쩍 흘러버려 그 책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었는지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예술가가 되려는 사람은 그 분야가 무엇이든 10년간은 다른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것만 하라. 그리고 그다음 10년은 그곳에서 떠나 완전히 잊어버려라.” 제가 기억하는 분명한 내용은 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책에 쓰여 있었는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렇게 20년이면 그전의 자신과도, 그리고 그전의 다른 예술가와도 다른 무엇인가 될 것이라는 취지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대학에 다니던 저는 친구의 스승인 석정 신정범 선생님을 뵐 겸 거창에 놀러 간 적이 잦았고, 선생님의 인품을 존경하며 지금껏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당시 30대의 선생님은 한글서예에 이미 출중하셨고, 구당(丘堂) 선생께 한문 서예를 배우러 일주일이 멀다하고 서울을 오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의 선생님은 옛사람들이 남긴 서론의 정수를 내면화하고 계셨고, 동양화를 전공한 탓에 시지각적 사고에 의해 고전을 분석적으로 바라보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남다른 탁견으로 저희를 놀라게하고 서예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기도 하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과 그 주변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내는 시간 동안 선생님은 붓을 놓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지금은 건축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선생님의 재능과 서예에 대한 애정에 비추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마음 아파한 일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몇 해 전 개인전을 준비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성취의 높낮이를 떠나 다시 붓을 잡았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뻐했습니다. 선생님의 개인전을 눈앞에 두고 작품들을 대하니 여러 감회가 뒤섞입니다. 다락방에서 케케묵은 것 같은 종이 위,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래 위 발자국처럼 선명합니다.

 

서예가 다른 예술과 다른 점은 아마도 문자, 혹은 문장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일 겁니다. 그래서 서예와 문학성이 서로 시너지를 만들 때 다른 장르에서 맛보지 못한 감동을 느끼는 것이며, 이것이 시각예술로서 서예의 존재 이유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쓴 글씨에 문장이 녹아들지 않고, 각각의 영역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작가의 마음속에 언어가 내면화되지 않은 서예의 형식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저는 이번 선생님의 작품을 보며 우리 한글이 갖는 언어의 매력과 서예가 하나로 녹아드는 과정을 보는 듯했습니다.

 

오쇼 라즈니쉬는 어떤 방면에 치열하게 노력한 시간과 그것을 철저히 떠난 시간이 예술가에게는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서예를 떠난 시간 동안 무엇이 자리 잡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눈에는 이런 것들이 보였습니다. 형식 위에 내용이, 기교 위에 기운이, 숙련 위에 겸허가, 서법 위에 정감이, 채움 위에 비움이, 직조 위에 흐름이, 윤택 위에 고담이, 그리고 진솔(眞率)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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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지브란의 배가오다 중에서 · 55×3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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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미소 · 45×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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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텅구리 · 56×3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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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님의 귀천 · 31.5×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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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륜님의 연심 · 40×3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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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友 · 43×3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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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의 말 · 60×3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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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님 시 입만 다물면야에서 · 35×30cm



신정범 (愼釘範)

<아호>

석정(石靜), 성혜당(成蹊堂), 섬돌, 먹통

<학력>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나 거창초등학교, 거창중학교, 대성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후 부산으로 전학.

브니엘 고등학교 졸업 후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동대학원에서 한국화 전공 졸업.

<수상>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역임

경상남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역임

경상남도 미술대전 추천 작가상

유당 미술상 수상

매일서예대전 대상, 초대작가

<출강>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강사 역임

대구예술대학교 동양화과 강사 역임

<논문>

학위논문: 안평대군 이용의 서 예술에 대한 연구

연구논문: 서 예술 조형의 수법 (착시현상을 중심으로)

 


<전시정보>

섬돌 신정범 작품전

<몽당붓>

전시기간 2022. 5. 5() ~ 5. 11()

전시장소 : 백악미술관 제1

초대일시 2022. 5. 5() 오후 5

전시문의 : 010-8663-9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