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전경
청보리밭의 비밀 보리는 늦가을에 씨를 뿌린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초봄에 어김없이 파란 싹이 땅을 뚫 고 나온다. 보리는 밟을수록 단단해지고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혹독한 겨울 을 이겨낸 보리가 오월 바람에 흔들린다. 흔들리는 바람을 타고 보리피리 소리 들려온다. 소년의 보리피리 소리가 평지 청보리밭에 울려 퍼진다. 평인(平人)은 “내 작품 속 청록(靑綠) 은 어머니가 50여 년 전 손가락에 끼던 ‘옥반지’와, 고향 들판을 채운 ‘청보리밭’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 각인된 옥반지와 청보리밭은 나의 내면에 오롯이 새겨진 색채다.”라고 말했다. 색채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감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색채라는 상징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흰색의 빈 화면은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해 줄 선과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흰 화폭에 청보리밭이 펼쳐진다. 그림은 공간예술이자 시간예술이다. 추상적인 선(線)이 바람의 흔들림에 드러나고 사라진다. 충만함은 부족한 가운데 있다. 이번 평인의 <무심결>에는 선이 드러나고, 면이 드러나 고, 색의 변화가 드러난다. 아침에 해가 뜨면 하늘, 산, 들판이 보이고 꽃과 풀이 가득하다. 고요하기만 하면 정체되고, 정체되면 생기가 없고, 생기가 없으면 맛이 없다. 작가는 고요 한 가운데 약동하는 리듬을 추구하고 있으며 결을 찾아가고 있다. 吉祥樹 · 200×120
평인은 형상을 만들고, 쓰고, 또 지우기를 반복한다. 생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바람에 날려 물방울이 땅에 떨어진다. 떨어진 물방울이 튀어 흩어진다. 모이고 흩어지고, 보이 지만 보이지 않는 비밀을 추적해 들어간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아낌없이 땅을 적시고 생명을 낳는다. 평인은“물방울을 좋아한 이유는 흙을 좋아해서다. 생명은 물방울에서 시작한다. 바람 속에 묻혀있는 것 이다.”라고 말한다. 물방울과 <수월관음상>이 겹쳐 드러난다. 이번 전시 평인의 작품에는 ‘결’이 나타난다. 그 결은 바람결, 물결, 숨결 등으로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음 사이에서 틈이 만들어지고 그 틈이 결이 되어 나타나고 사라진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눈과 모래 흔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드러난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낀 자연의 결을 화 면에 옮기고 있다. 무심결 · 200×55
<생명>은 칼질과 접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형이 만들어진다. 색을 넣지 않고 종이 본연의 것으로 변화를 주었다. 이번 전시에서 평 인은 단순성·반복성·재료의 고유성을 최대한 살려 담아내고 있다. 서술적 요소를 배제하고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물성을 찾아가고 있다. 기호·상징을 작품으로 끌어 들여 절제된 형식으로 미니멀(minimal) 하게 작가의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生命 · 80×157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무를 살리는 것은 작은 물방울에서 시작된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이슬이 되고 비가 된다. 비가 내리면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만물은 생성한다. 평인은 “물과 나무를 좋아한다. 떡잎에 있을 때는 약과 음식을, 자라면 땔감과 그늘을 주고, 재목(材木)이 되어준다. 재목이 재로 남아 따뜻함을 준다. 물은 시작이자 끝이다. 물방울은 드러남과 숨김의 사이에 있다. 안개에서 시작되지만 바다를 이룬다. <나무>도 선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평인의 구의동 3층 작업실 이름이 유운산방(留雲山房), 금대심서루(琴垈心書樓)다. 유운산방 앞 푸른이끼와 20년 동안 한결같이 작업해 왔던 <얼굴>이 환한 미소로 맞이한다. 유운산 방에는 구름이 머물고, 바람이 머물고, 사람이 머물다 떠난다. 작업실 앞에 먼지가 낀 것 같은 작은 돌이 놓여있다. 작은 돌에 물을 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이끼(靑苔)가 드러났다. 푸른이끼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며, 드러날 것 같으면서도 숨는다. 푸른이끼는 현재의 신선함을 보여주고, 또 과거의 심원함을 감추고 있다. 평인은 “취미 가 이끼 키우는 것이다. 이끼도 꽃을 피운다. 가늘고 연약하고 눈썹보다 가는 꽃대가 올라 온다. 평상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끼는 물만 주면 푸른이끼로 살아있음을 알린다. 이끼를 좋아하는 이유다.”라고 말한다. 吉祥樹 · 133×65
평인의 내면에 흐르는 청보리밭·옥반지·푸른이끼는 그의 작품에서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음 사이의 결을 만들어가고 있다. 평인은「작가노트」에서 “나는 너 너는 나 각자의 표정 은 겹겹이 쌓인 세월, 희로애락이 맺히고 풀리는 시간 속에서 우린 하나가 된다.”라고 말했다. 희로애락이 있는 삶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된다.
壽福 · 210×70
평인에게 그림의 뿌리는 서예이고, 서예의 뿌리는 그림이다. 그의 작품에는 그림과 글씨의 경계는 없다. 그림이 글씨이고, 글씨가 곧 그림인 것이다. 평인은 먹물 냄새가 나기보다는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발로 딛고, 손으로 뭉개고, 죽어 묻힐 향토의 흙을 사랑하고, 구리가 산화되어 발 산하는 에메랄드그린을 비롯한 찬란한 오방색 물감과 아교 같은 응고액까지도 생명화시켜 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우산(友山)은 평인의 예술 여정에서 황토, 에메랄드그린, 생명성을 읽어내고 있다. 그의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숨결 1 · 160×130
1979년에 대학 4학년 때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때 작품이 종요의 <천계직표>, 동양화 등이다. 두 번째 전시부터 지금까지 작품 속에는 청록이 들어있다. 내가 두려 워했던 것이 글씨 자체보다 획에 있었다. 결구는 문제가 안 된다. 획이 중요하다. 이번에 가장 힘을 빼려고 한 작품이 내공의 선이다. 산돌은 강하지만 정을 맞고, 강돌은 부드럽고 내공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한 획의 글씨, 한 획의 그림은 한 획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필획은 끊어졌지만 깊은 흐름이 면면히 흐르고, 잠재된 기운이 그 속에 있다. 인간에게는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이 있고, 달은 어둠과 밝음, 차고 이지러짐이 있다. 이지러진 곳이 바로 차는 곳이다. 가득 차기를 바란다면 먼저 이지러진 것을 거쳐야 하며, 살길에 이르고자 한다면 먼저 끊어진 곳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왕희지는“텅 빈 곳에 정신을 감춘다(虛處藏神)”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빈 공간은 여백이다. 여백은 다른 물상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공간이다. 결 · 100×80
흔들림 사이로 예술의 창작은 역사·기억·경험들이 반영되어 나온다. 21세기 현대미술은 다양하다. 다시 말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이는 왜 그것을 선택 했느냐의 문제다. 평인은 끊임없이 자연과 소통하며 새로움을 발견하고 경험한다. 평인은 바람에 흔들리는 청보리, 숨김과 드러남, 밝음과 어둠 속 자연의 흐름을 관찰한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 시인은 언어를 조탁(彫琢)해 시에 생명을 불어넣고, 화가는 자연의 본질을 찾아 작가의 시선으로 화면에 옮긴다. 이사도라 덩컨(1878~1927)이 맨발로 춤춘 것은 더는 인위(artificial)적인 춤을 추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기표현과 욕망에 충실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평인은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새로움으로 나아가고 있다. 청보리밭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결 사이로 선이 드러났다 사라진다. 소년의 보리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평인의 앞으로의 예술 여정에도 자연의 소리는 계속 공명(共鳴)될 것이다. 2022. 7. 6 김찬호 미술평론가 <전시정보> 송동옥 개인전 <결> 전시기간 : 2022. 6. 29(수) ~ 7. 5(화) 전시장소 : 서울 인사아트센터 6층 JAM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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