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는 기억이나 기록을 담아낸다. 문자의 쓰임이 기억을 대체한다는 의미에서 문자는‘시언지詩言志’로서의 시의 효용과 일치한다. ‘시언지’는 “시는 뜻을 말한 것이고, 노래는 말을 길게 늘여 읊조린 것이며, 소리는 가락에 따라야 하고, 음률은 소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여기에서‘지志’는 사람의 내면에 담겨있는 정감을 의미하며, 개인의 사상과 감정이 언어를 써서 표현될 때 시라는 장르가 생겨난다. 이 말은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말한 것이다. 상호텍스트성이란 하나의 대상에 내용과 형식면에서 비슷하거나 혹은 다르게 쓰인 두 개 이상의 글이 관련성을 갖고 있음을 말한다. 동일한 화제나 글감을 다루더라도 필자의 관점에 따라 내용을 달리하여 서술할 수 있다.
暗香浮動(암향부동) · 31×31cm
<암향부동>은 필선에서 드러나는 절주節奏감이 맑은 바람을 일으키는 듯하다. 문자의 의미와 선의 운동감에서 상호작용을 느낄 수 있다. 텍스트는 추상적인 선의 율동에서 보여주는 운동감에서 의미를 통해 맑은 매화향이 은은히 펴져 가는듯한 상상을 하며 감상하게 된다.
21세기 서예는 문자를 이용하여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로써 단순히 전통의 문자를 기록하고 재현하는데 머물지 않고, 서와 예에서 서의 예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순수예술로 확장하고 있다.
수중守中 이종훈李鍾勳은 문자로 정감warmth을 담아 대중과 소통하는 서예가다. 그는 2016년 일중서예우수작가상을 받았고, 2017년 백악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2017년 디지털 타임즈는 「서예가 수중 이종훈, 일중선생기념사업회 우수작가 선정」에서 “대구예술대학교 서예과, 계명대학교 일반대학원 한문학과를 졸업한 수중 이종훈 작가는 전, 예, 초, 해, 행을 비롯하여 한글서예까지 폭넓은 작품세계를 보여준다.”라고 밝히고 있다.
인영선은 2017년 「일중우수작가 초대전」의 글에서 “지금 우리 시대 서예 하는 이들을 엄밀히 따지면 서예가는 없고 붓글씨 쓰는 기능인 일 수 밖에 없다.……첫째, 선비 정신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둘째,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할 것이다.……수중의 행·초가 여타 서체의 운용보다 압권이라는 생각이다.……지역 특유의 특징이 여실하니 수중만의 독창적인 행·초를 써 보시게. 천자天資가 갖추어졌으니 그 그릇을 넓히기만 하면 된다.”라고 했다.
이호우 시 달밤 · 24×31cm
卽事(즉사) · 31×31cm
수중은 “서예란? 나의 모든 것이다. 삶의 희로애락 속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힘의 원천이다. 이전에는 나의 작품을 하는데서 즐거움을 찾았지만, 지금은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또 다른 서예의 묘妙를 찾아가고 있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고전을 지금의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서법書法 속에서 서書의 법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예에서 중요한 요소는 개념을 담아내는 것이다. 서예는 문자를 단순히 전달하는 매체가 아닌 필선이나 먹의 흔적을 통해 작가의 철학을 담아낸다. 수중의 서예관은 ‘뜻이 필에 앞선다(意在筆先)’라는 미학적 경지를 추구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5번의 개인전과 수십 차례의 그룹, 기획초대전을 통해 전통적인 필의 흔적을 절제를 통해 작가의 개념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번 전시는 또 다른 변화를 위한 단초端初를 여는 시간이 될 것이다.
다산선생 시 · 21×31cm
讀山海經(독산해경) · 135×135cm
평담진취平淡眞趣의 미학
전통서예는 붓, 먹, 종이, 벼루를 이용하여 이루어내는 ‘획劃’ 중심의 문자예술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생활의 수단, 양식이 바뀌고, 미의식이 다변화됨에 따라 문자예술은 꾸준한 변화해 왔고, 앞으로는 그 변화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법이 기반이 되어야 된다. 수중의 작품은 전, 예, 초, 해, 행서와 한글 서체를 두루 익혀 평담진취한 흐트러짐 없는 서書의 법法을 찾아가고 있다.
수중은 “내 작품은 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담백淡白한 그 맛을 찾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수중의 서예는‘평담진취平淡眞趣’한 미학적 특징을 보여준다. 평담平淡이란 단순히 예술창작에서의 평이함을 말한 것이 아니라, 구양수의 『육일시화』에서 말한“감람橄欖을 씹는 것처럼 참된 맛이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사공도는 “담담한 것은 갈수록 깊어진다.”라고 했고, 유희재는 “담담한 가운데 의취意趣가 있다.”라고 했다. 이는 바로 천천히 찝으면 달콤한 즙이 나오는 것과 같이 풍부하고 심오한 사상과 내용을 작품으로 드러내야 한다
청구영언 시조3수 · 33×33cm
묵매墨梅, 조매早梅 · 120×175cm
<청구영언3수>는 한글과 한문의 혼서다. 한글서체는 궁체의 조형 형식을 지키면서도 한문서체와 어울려 궁체의 조형에 변화를 가져가고 있다. 수중은 궁체의 중성의 종획을 일정하게 하는 조형 방식을 일정 지키면서도 한문서체와의 조형을 일체화시켜 자연스럽게 운용하고 있다. 이번 수중의 작품은 다양한 문학작품을 소재로 화면에 펼쳐내고 있다.
<묵매墨梅‧조매早梅>는 매화시 2수를 행초로 썼다. 묵매의 시는 그림의 여백에 쓴 제화시題畵詩다. 곽희는 산수화론에서 화가는 마땅히 관조觀照가 중요하다고 누차 강조 한 바 있다. “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형태 있는 시이다.”라고 했다. 또한 소식도 당대 왕유의 그림을 보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라고 했다. 이 시를 보면 그림이 보인다.‘벼루 씻는 연못(洗硯池)’은 후한後漢의 장지張芝와 그를 본보기로 삼아 공부했던 동진東晉 왕희지王羲之를 뜻한다. 장지와 왕희지는 서예 공부에 열중했던지 그들이 연못가에서 글씨 연습을 할 때면 먹 갈고 붓 씻느라 연못물이 온통 새까맣게 변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각고의 노력으로 서예를 연마한다는 뜻으로 수중은 장지와 왕희지의 수련을 평가하고 그 의미를 담아 썼다.
洪武丁巳奉使日本(홍무정사봉사일본) · 122×200cm
백낙천의 권학문 · 31×27cm
문자는 축적된 문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심미적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서예는 문자의 이미지를 통해 감정의 형식을 보여준다. 서예에서 정체되어 있다는 것은 생기가 없다는 것이다. 수중은 자연과 문학작품의 대상에 대한 정감을 감정이입하여 생기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렇듯 수중의 작품은 감상하면 할수록 평담平淡하면서도 깊은 운미韻味를 느낄 수 있다. 필자가 수중에 주목하는 이유다. 타는 목마름으로 끊임없이 새로움을 향한 그의 예술 여정을 응원한다.
和子由澠池懷舊(화자유민지회구) · 90×150cm
秋朝覽鏡(추조람경) · 36×28cm
손로원선생의 시 봄날은 간다 · 43×33cm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기대하며
아직 가지 않은 미지의 길을 간다는 것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호기심에 무심코 낯선 미지의 길로 들어선다. 그 미지의 길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기다리고 있다. 그 길에서 문득 익숙한 것을 발견하고 안도할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심취할 수도 있다.
몸과 함께 붙어있고 숨과 함께 터져 나오는 말의 표상이 문자요, 문자화된 언어를 화면에 펼쳐내는 것이 서예다. 문자는 살아남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과연 지금의 서예가 텍스트를 뛰어넘을 수 있는가? 문자를 들리게 하고, 움직임을 통해 느껴지게 할 수는 없는가? 지금의 서예는 정신이 신체를 옥죄고, 논리가 감성을 눌러오고 있다. 서예 문화 전체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시대전환이 필요하다.
문자의 이미지를 통해 쾌감과 시각적 만족을 얻으려는 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의 어느 시기에나 존재해 왔다. 한자, 이집트 상형문자, 이슬람 문화권의 문자가 대표적이다. 문자는 상징체계 외에도 시각적, 장식적 요소를 함께 구비하고 있다. 문자들을 시각적 구성을 구축하는 법칙은 때때로 필기구 즉 붓, 송곳, 종이, 점토판 등 서사 도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2022년 수중 이종훈 개인전 ‘평담진취平淡眞趣의 미학’에서 형상 너머의 심상心象을 찾아가고 있으며 그의 새로움을 향한 심미탐구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