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를 기반으로 다양한 창의적 노력과 미술적 실험을 해온 이정 작가의 초대전이 서울 종로구 가회동 갤러리 일백헌에서 2023년 4월 21일(금)부터 27일(목)까지 일주일 동안 열린다. 글씨21에서 기획하고 갤러리 일백헌에서 초대한이번 전시에는 이정 작가가 2019년부터 이어온 ‘Oh,five,五’ 시리즈 20여 점과 신작 12점 등 총 32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Oh,five,五’ 시리즈는 오행(五行) 이야기를 주제로 한지와 먹을 사용해 작업한 작품들이다. 화면에 나타나는 육각형 도형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했다. 화수목금토(五行)을 꼭지점에 놓고 반복되는 교차를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형상화 했다. 우연처럼 만나지만 필연처럼 보이는 도형은 육각형이라기 보다 일획의 붓질이 만든 오행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이정 작가는 “이십대에서 주돈이가 지은 《태극도설》을 읽고 깊이 깨달은 바가 있어 작품의 주제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열 번의 개인전 이후 이 주제를 다시 끄집어 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신작들 역시 ‘Oh,five,五’의 연장선에 있지만 작가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이 작가는 “작업 중에 겹쳐지는 화면에서 《태극도설》에서 말하는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지는 우주 같은 공간을 발견했다”며, “10년 전 생각했던 것이 현실화 되고 있는데 처음 선보이게 됐다.”고 소개했다.
작품은 ‘수 천 년 내려온 서예의 배접을 꼭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화면에 한지를 세 겹 씩 겹 작업을 해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음양오행을 나타냈다. 덕분에 한복 실루엣처럼 형태가 은은하게 비치는 효과를 얻었다. 작가는 겹과 겹 사이에 공기와 틈을 넣어 간극을 떨어뜨리고 싶었다고 한다. 형식적으로는 패치워크처럼 자른 한지를 이어 붙여 화면을 구성했다. 한지가 겹쳐진 부분은 밤에 한옥 창호지에 달빛이 비쳐 그리드가 보이는 것과 같다. 작가는 “서예는 오랜 수련 끝에 한 획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라 한지의 낭비가 심하다”며 “한지를 어떻게 다시 활용할 수 있을지, 어떻게 조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이정 작가는 이번 전시 기간 중 전시장에 머물며 직접 작품을 설명할 계획이다. “더러 작가들이 작품에 예술 철학을 담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화면을 단조롭게 하고 깊이를 더하면 대중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서예를 바탕으로 미술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많이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정 작가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예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사상문화와 금석문을 연구해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대 초반부터 서예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해 1998년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관 청년작가와 2010년 대구문화예술회관 올해의 청년작가에 선정됐고, 2015년 서병오서예상 청년석재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서예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십 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10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정부미술은행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정 작가는 서예를 기반으로 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예술을 추구한다. 고전 미술이 아닌 동시대 미술로서 서예를 선보이려는 실험이다. 이 작가는 “현대에 살지만 복고를 작업하는 것이 서예”라며, “서예계를 개척한다는 사명감으로 한국 정서를 가미해 고전적이지만 현대적인 것, 평범하지만 비범하게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2023년 내실을 다지는 시간으로 삼아 큰 작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오는 6월 갤러리 일백헌에서 자수 작가와 함께 하는 콜라보 전시도 계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