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 대표 석태진 구경훈, 조준형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21, 3층
[Critique]
김홍대 (하남이공대 교수)
'천발신참비 (276)'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서예사에서 가장 개성 있는 작품 중 하나다. 동오 황제 손호가 '영험한 덕을 찬양하고 길상에 답하기 위해' 세운 이 비는 당시 최고 수준의 비이며 그 영향이 매우 크다. 이 논문은 주로 독특한 서체의 원인, 서체적 영향 관계 및 현대서예에의 시사성 세 가지 측면을 다루고 있다. 이 세 부분은 다른 학자들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이 논문을 통해 '천발신참비'의 창작 원리나 배경 그리고 왜 대부분 학자들이 이 비의 서체를 보고 괴이하다 느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먼저 독특한 서체의 원인에 대해 살펴보자. '천발신참비'는 동오 마지막 황제 손호가 정치적 안정을 위해 하늘이 내려준 권위와 정통을 선전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이 비를 세우는 입장에서 보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첫째, 글자를 통해 하늘의 영험과 신비가 전해져야 한다. 둘째 비석을 통해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첫 번째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설립자는 여섯 가지 장치를 만들었다.
1. 하늘에서 내려온 문자이므로 기존 글자와 다른 낯설게 함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전서와 예서를 혼합해 한 글자로 조합한 것도 있고(도 1.1), 과감하게 변형한 것도 많다.(도1.2) 이런 글자가 모두 143개로 83.1%를 차지한다. 전형적 전서는11개(도 1.3),6.4%이고 예서18개(도1.4),10.5%다. 통계 숫자가 말해 주듯 이 비엔 낯선 글자가 월등히 많아 생소한 느낌을 성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도1) 《천발신참비》 자형(字形)
2. 이 비의 글씨 형태가 상당히 복잡하다. 도 2와 같이 풍부한 자형은 관객들에게 완전하고 통일된 느낌을 주기 어렵다. 따라서 글씨 쓴 사람의 글쓰기 의도나 법칙을 발견하기 어렵고, 상당히 무질서해 보인다. 자형에 대한 통계는 이러한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비석의 직사각형 자형은 94개로 54.6%를 차지하며, 그중 세로 직사각형 86, 납작한 모양 8이다. 정사각형 40개, 23.3%를 차지한다. 사다리꼴 28개, 16.3%이며, 원형 10개로 5.8%이다. 그 중 세로 타원형 5개이며 가로 타원형도 5개다. 이렇게 풍부한 글자 모양이 비면에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생동감 있고 신비로운 색을 더하고 있다.
도2) 《천발신참비》 字形비율
3. 의도적으로 특정 자형과 획을 통일적으로 변형 처리했다. 비에 신비스러운 색채를 더하기 위해 비석을 세운 사람들은 계획적으로 일부 글자 형태와 획을 동일하게 변형 처리했다. 도 3은 상단 10행 5번째 글자 '字'로 전체 모양은 사다리꼴이다(도 3.1), 글자는 전체적으로 윗부분이 치밀하게 잘 짜여 있고 아랫부분은 느슨하다 (도 3.2), 좌우의 짧은 세로 두 획은 의도적으로 길게 해 아치형(도 3.3)으로 되었다. 글자 윗부분은 필획이 굵고 아래는 뽀족하다.(도 3.4) 이러한 처리는 글자 아래에서 들어간 공기가 글자를 공중으로 상승시키는 것같이 보이게 한다. 이 비의 갓머리 부분은 대체로 위와 같이 일괄적으로 처리하였다. 또한 세로획, 삐침 등은 대부분이 기필하는 부분이 굵고 둔하며 수필 하는 부분을 뾰족하게 처리하여 글자가 하늘에 떠 있거나 공중으로 표류하는 듯한 시각적 느낌을 내고있다. 이러한 효과는 하늘의 신비로운 징후를 시각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도3) 《천발신참비》 “字”자 분석
4. 이 비 문자의 중심축은 극히 미묘하게 처리되거나 불안정하게 구현되었다. 예를 들어, 도 4.1은 상단 14행의 두 번째 글자 '部'이며 좌우 A, B, C, D, E의 5개의 짧은 선은 글자 각 부분 중심축의 복잡 다 변함을 보여준다. 그림 4.2 상단 18행 3번째 글자 고(故)도 마찬가지다. 왼쪽 고(古)와 오른쪽 등글월문(攵)의 기울기와 글자 중심 높이가 달라 미묘한 역동성을 주며 글자가 공중에 떠 움직이는 듯한 불안함을 전한다.
도4) 글자의 중심축선 분석
5. 글씨의 기필 부분과 수필 부분, 두 획의 연결 부분, 획의 전환 부분, 서로 다른 획의 교차 부분 처리 방식이 풍부하고 다양하다. 가로획과 세로획으로 시작하는 기필과 수필 모양이 좋은 예이다(그림 5), 사각형, 뾰족한 모양, 긴 호, 원형 등 여러 가지 기필 형태가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획의 굵기가 동일하고 시작과 끝의 모양이 둥근 전서와 차이가 큰 점이다. 그리고 예서의 잠두연미 및 비교적 고정된 획 처리 방법과도 상당히 다르다. 천발신참비'의 이러한 필획의 특성은 매우 혼란스럽게 나타나는데 이 부분은 성공적으로 낯선 느낌을 조성하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도5) 《천발신참비》 가로세로획의 기필 수필 형태
6. 이 비석과 관련해 하늘이 내려준 징조인 '석문리성자(石文理成字)'의 느낌을 강화하기 위해 이 비의 획처리는 굵고 거친 한나라의 마애석각(摩崖石刻) 효과를 기본적으로 적용하였다.(도 7) 예를 들면 상단 11행 첫 번째 글자 '삼(三)', 상단 17행 첫 번째 글자 '대(大)'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디테일은 비가 세워지는 배경 속'석문리성자(石文理成字)'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해준다.
요컨대 천발신참비 서체가 아주 독특한 이유는 비를 세운 목적이 다른 비석과 다르다. 역사상 대부분 비는 대체로 주어가 인간이다. 즉 대개 비석은 인간의 다채로운 욕구를 시각화하는 수단으로 세웠졌다. 그러나 <천발신참비>는 비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하늘이 내린 신성한 징조를 감사해 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비석을 세운 사람들은 위 여섯 가지 장치를 통해 하늘의 신성함과 신비로움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역사상 대부분 학자들이 이 비를 기궤하다 평한 것은 이를 반증한다. 달리 말해 이 비는 설립자의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디자인 된 것이다.
두 번째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세 가지를 중시했다. 1. 서체의 선택. 설립자 권위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 전 시대 공식 서체인 전서와 예서를 바탕으로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다. 의도적으로 적국인 서진 공식 서체인 해서에 가까운 서체는 배제했다. 2. 장법. 비록 계선 없고 글자 크기도 다소 다르나 행과 열 배열에 있어 황제 위세를 느낄 수 있게 했다. 3. 문자 크기. 비문 모든 글씨가 대략 10cm 정도로 크다. 하늘의 명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체험하기에 더욱 적합하다.
도6) 《천발신참비》 연결부분 및 전절부분의 각종 처리 형태
둘째, 서체적 영향 관계. 이 부분의 주요한 내용은 천발신참비에 현재와 다른 글쓰기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즉 한 획을 여러 번 나누어 완성하는 ‘다필’적 글쓰기 방법이 당시에는 자주 쓰였다. 논문에선 천발신참비에 보이는 다양한 다필적 글쓰기 방법뿐 아니라 한대와 육조시대 때 다른 실물을 예로 들어 구체적이고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도 8)
셋째, 현대서예에 주는 시사성. 천발신참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세 가지다. 첫째, 문자의 기능에 관한 내용이다. 문자는 인간이 의사소통의 편의를 위해 창조한 도구일 뿐이다. 문자를 자유롭고 다양하게 사용하여 일정한 목적을 만족시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문자의 기본 기능 중 하나다. 따라서 문자가 명확하게 의도한 뜻을 전달했다면 그것으로 문자는 임무와 사명을 다한 것이다. 공예품의 글자와 붓으로 쓴 글자는 모두 정보를 전달하는 문자이다. 경우에 따라 다른 효과를 발휘한다. 그들 사이에는 가치상의 높낮이가 없다. 다만 용도와 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신분과 지위를 이용해 모종의 도구로 쓴 글자를 어떤 이익집단의 전유물로 보고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글을 쓰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문자를 사용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정보의 이상적이고 효과적인 전달이며,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셋째, 서예 이론에 관한 내용이다. "천발신참비", 서진의 "벽옹비", 심지어 왕희지의 "난정서"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필순, 용자팔법, 시간성 등의 요구에 어긋난 글자가 많다. 따라서 이 부분은 각종 서예 이론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생각을 요구하고 있다. 점점 더 개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대, '천발신참비'는 우리에게 어떻게 글을 써야 개성이 뚜렷하고 의도가 명확한 서예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시사하고 있다. 이는 '천발신참비'가 후대 서예가에게 남긴 소리 없는 선물이다.
도7) 한대 마애 석각 효과
특정 시대, 특정 사회의 영향으로 탄생한 천발신참비는 다른 서예 작품과는 매우 다른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비문은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고 특수 효과를 거두고자 할 때 목적에 맞는 혁신적인 서예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둘째, 비문은 개성이 뚜렷한 서예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글자의 구조와 쓰는 방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실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셋째, 이 비는 관성적 사고의 틀 속에서 모든 서예를 이해할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환경과 시대에 따라 서예 이론은 변한다. 천발신참비는 진나라와 한나라 그리고 육조 시대 서예는 현재와 다른 패러다임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도8) 《천발신참비》에 보이는 다필 효과와 그 효과의 역사성 및 시대성
이 논문은 2024년 7월 호<중국서법>에 실린 《天发神谶碑》书风内在逻辑及表现特征研究를 번역 요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