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준 한글서예의 향연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2025년 7월 3일부터 9일까지 제15회 ‘산내 서우회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산내 서우회 회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하며 익혀온 한글서예 작품들을 통해, 단순한 실력 자랑이 아닌 고전의 학습과 연구의 결과물을 점검하고 창작의 기틀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시회라고 볼 수 있음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예은 조용란 / 신석정 시 그 마음에는

시윤 이선영 / 정철의 훈민가 중에서
이번 전시의 주요 특징은 산내서우회의 과거 전시들과 마찬가지로 ‘목표와 지향’을 분명히 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13회 전시에서는 궁체의 정수를 담은 『옥원중회연』 16권을 임서하여 한글궁체의 진수를 선보였으며, 14회에서는 민체라고 불릴 수 있는 고전소설 필사본을 통해 현대 서체와의 조화를 보여준 바 있다. 15회 전시에서는 진흘림의 선본을 엄선하여 임서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작 작품들이 펼쳐졌다.


시우 이승희 / 순원왕후 어찰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필사 후기를 정리한 부분이 눈에 띄는데 후기에는 필사 시기와 장소, 필사자에 대한 구체적인 사연이 담겨 있어, 당시 시대상과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는 창작 작품들에서는 좋아하는 시문 위에 임서의 단계를 통해 익힌 기법을 활용하여 ‘심수상응(心手相應)’의 정신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청담 송영옥 / 이해인 시 무지개 빛깔의 새해 엽서 '주황'
이외에도, 『휘언』의 진흘림 필체로 『속미인곡』을 창작하거나, 『만신쥬봉공신녹』의 서체로 『농가월령가』를 재창작하는 등 다양한 서체와 문장을 활용한 작품들도 선보였다. 성경이나 불경 구절을 창작한 작품들도 있어, 서예를 통해 신앙과 정신적 깊이까지도 담아낸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연 조명자 / 파블로 네루다 시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한글서예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한국 고유의 문자 예술로서, 1443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창제한 한글이 그 뿌리이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 체계를 바탕으로 하여, 간결하면서도 표현력이 뛰어난 문자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서예가의 손길을 거쳐 문서와 서찰, 그리고 문학 작품 등에 활용되면서 점차 독특한 서예 양식이 형성되었다.


심초 한혜지 / 연꽃
한글서예는 자음과 모음을 조합한 문자 구조의 특성을 살려 다양한 서체와 필법이 발전하였다. 특히,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특성을 살려, 간결하면서도 리듬감 있고 아름다운 선을 창조하는 것이 한글서예 궁체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산내 박정숙 / 최송설당 시 명월
이번 산내 서우회전은 이러한 한글서예의 역사적 맥락과 특징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자리였다. 산내 서우회 회원들은 전통 서체의 엄격한 연습과 연구를 바탕으로, 고전 필사와 창작을 병행하며 서예의 본질을 탐구해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진흘림의 필체와 다양한 서체를 활용하여, 전통의 아름다움과 현대 서예의 실험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었다. 
시우 이승희 / 순원왕후 어찰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은 단순한 작품 감상을 넘어, 서예가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는지, 어떤 연구와 노력이 깃들었는지에 대한 사전 지식을 알게 됨으로써, 더 깊은 이해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본 서우회전의 지도자인 산내 박정숙 선생은 ‘갈물한글서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한글서예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위원, 한국서예문화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역저 ‘조선의 한글 편지’를 저술하였다.


이번 산내 서우회전은 서예의 연구와 계승, 그리고 현대적 재해석을 동시에 실현하는 의미 있는 행사이다. 앞으로도 산내 서우회는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적 도전과 연구를 이어가며, 한국 서예의 위상을 높여갈 것으로 기대된다. -글씨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