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5년 8월 20일(수)–26일(화)까지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린 송림 박윤옥 작가의 개인전이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번 전시는 전통 서화와 캘리그래피를 중심으로, 여기에 다양한 섬유 재료를 결합해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제시한다.
“처음 가는 길”이라는 제목처럼, 작가는 익숙한 서예의 한계를 넘어 일상 공간 속으로 글씨의 존재를 확장하는 실험을 펼쳤다.

전시는 종이와 더불어 섬유의 촉감과 질감을 적극 활용한 설치적 요소를 통해 다층적 볼거리를 구현한다.
전통 서예의 필법과 의도된 여백, 먹의 농담과 운필의 미세한 변화가 주는 심미적 울림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지만, 이제는 평면적 표면의 한계를 넘어 입체적 조형성과 다층 텍스처를 탐색한다.
이는 현대 미학의 흐름 속에서 종이 매체의 제약을 직시하고, 다매체 융합을 통한 확장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의도와도 맞물린다.

김건표 선생의 서문은 전시의 방향성을 한층 명료하게 한다. 작가가 “글씨가 우리의 일상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지속적으로 던져 왔음을 강조하며, 서예를 사용자 중심의 삶과 연결짓는 작업 철학을 조명한다.
익숙한 재료에 대한 편견을 벗겨내고 남은 자투리 종이와 한 장의 천까지도 새롭게 숨 쉬게 만드는 송림의 태도는, 그의 창작이 단순한 표현의 확장을 넘어 일상 속 놀이이자 사유의 출발점임을 보여준다.

전시의 핵심은 “재료의 재해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이가 대중적 매체로의 대중화를 이뤄낸 이후에도, 작가는 여전히 섬유의 물성에 주목한다. 원래 비단과 같은 직물이 문자와 서사의 권위를 전하는 매체였다는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는 직물의 상징적 성격을 재고하고 현대적 미학에 맞춰 재구성한다. 전통의 깊이와 현대의 실험이 서로를 보완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작가의 삶에 대한 서술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송림은 원래 화가의 길을 꿈꿨으나 오랜 시간의 서예 공부를 통해 얻은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는 서예를 “일상 속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글씨”라는 방향으로 재정의하며, 도구를 소모품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 재료를 삶의 일부이자 놀이의 장으로 전환한다.

이러한 태도는 전시 전체에 흐르는 잔잔한 에너지로 드러난다. 그는 조용한 성품 속에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익혀온 내면의 서예를 생활의 맥락에서 재조명한다.
작품은 낯설지만 순수하고, 소박하지만 아이 같은 순발력을 지닌다. 재료와 기법의 다양성은 그의 놀이 같지만, 결코 무모한 실험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서예 창작 철학의 조용한 선언”으로 읽힌다.

전시를 관람한 관객은 “익숙한 서예의 틀을 벗어나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고 평했고, 다른 이들은 “소박하면서도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입을 모았다.

송림의 이번 전시는 전통의 깊이와 현대 예술의 실험성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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