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삶을 품다 – 손지민 캘리그라피 "그 여자의 계절"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려.

한글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는 시간이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펼쳐지고 있다. 손지민 작가의 캘리그라피 개인전은 글씨가 단순한 문자와 기록을 넘어, 삶의 감정을 담아내는 하나의 예술임을 증명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 글씨 작품들이 관객을 맞는다. 정갈한 서체부터 과감한 해체와 재구성, 회화와 오브제가 결합된 설치작업까지, 글씨는 더 이상 평면에 머무르지 않는다.

특히 한지를 배접한 뒤 직접 잘라낸 ‘컷팅 캘리그라피’는 입체적이고 조형적인 힘을 지닌다. 90×64cm 크기의 작품 속 글자들은 서로 얽히고 흐르며 빛과 그림자를 만들고, 한글이 가진 구조적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손지민 작가는 “일상을 글과 그림, 그리고 만들기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손지민의 캘리에세이집』, 『사계 캘리그라피 & 그림』, 『그 여자네집』 등 저서를 통해 글과 그림이 함께하는 예술세계를 꾸준히 대중에게 전해왔으며, 현재는 ‘손지민캘리그라피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작가의 오랜 탐구와 경험이 집약된 자리다.

전시장 한쪽 벽에는 따뜻한 일상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이 걸려 있다. 친근한 캐릭터와 함께 쓰인 짧은 문장은 단순히 ‘읽히는 글’이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위로와 공감을 전한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작은 책장과 고양이, 낡은 시계가 놓인 미니어처 오브제와 캘리그라피가 어우러져 아늑한 방을 연상케 한다. 이처럼 손 작가의 작품은 생활 속 사물과 결합하며, 글씨가 단순히 종이 위의 문장이 아니라 삶을 채우는 예술임을 일깨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글씨를 잘 쓴다”는 차원을 넘어, 글자를 통해 감정과 이야기를 담아내고 이를 시각적, 조형적 언어로 풀어낸다. 관객들은 작품 앞에 서서 글자를 해독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분위기와 울림을 체감한다. 글씨는 더 이상 언어의 도구가 아닌,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인사동 경인미술관의 따뜻한 조명 아래, 글씨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조형물이 되며, 결국 우리 삶의 풍경으로 확장된다. 손지민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한글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동시에 관객에게 잔잔한 위로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한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경인미술관에서 이어지며, 글씨와 삶이 만나는 지점을 찾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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