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이 붓놀림을, 영원히 긍정할 수 있는가”
回歸 1 35×35cm
김희정 서예전 《회귀》, 백악미술관에서 열려
回歸 10 20×15cm
전통 서예가 지닌 시간의 무게와 현대적 실존 사유가 깊이 교차하는 전시가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열린다. 김희정 서예가의 개인전 《회귀(回歸)》는 2025년 12월 18일부터 24일까지 백악미술관 1·2관에서 개최되며, 작가가 오랜 시간 천착해온 ‘서예’의 본질과 삶에 대한 긍정을 정제된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回歸 11 20×10cm
이번 전시의 제목인 ‘회귀’는 단순한 반복이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개념을 사유의 축으로 삼아, 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행위를 영원히 반복해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김희정의 서예는 바로 이 질문을 붓과 먹, 그리고 한 획의 결단 속에서 묵묵히 실천해 온 결과물이다.
懷素 - 自敍帖句 35×135cm
서예는 본래 되돌릴 수 없는 예술이다. 한 번 내려간 붓놀림은 수정될 수 없고, 작은 실수 하나가 전체 화면의 운명을 바꾼다. 김희정은 이러한 서예의 속성을 삶의 태도와 연결한다. 작가는 먹의 농담, 붓의 속도, 글자의 구조와 여백까지 모든 요소를 스스로의 판단으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온전히 책임진다. 이는 외부의 권위나 유행에 기대지 않는 ‘자기 창조적 책임’의 태도이며, 이번 전시는 그러한 초인적 예술가의 자세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米芾 蜀素帖句 18×48cm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반복과 집중의 시간 속에서 탄생했다. 동일한 글자, 유사한 형식이 되풀이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매 순간 다른 밀도와 호흡이 깃들어 있다. 글자 하나가 단순한 기호를 넘어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서는 지점, 바로 그 순간이 김희정 서예의 핵심이다. 작가는 글자가 지닌 본질적 아름다움과 에너지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끌어내며, 그것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긍정할 수 있는 가치가 되도록 만든다.
臨 顏真卿 祭姪文稿 90×28cm
김정환 서예평론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영원회귀는 우주론이 아니라 삶에 대한 실존적 시험이며, 김희정의 서예는 그 시험을 붓을 통해 통과하려는 치열한 시도”라고 평한다. 이어 “지금 이 순간의 붓놀림을 기꺼이 다시 반복하겠다는 의지는 곧 창조적 긍정이며, 이는 서예가 단순한 필법을 넘어 예술로 나아가는 지점”이라고 덧붙인다.
臨黃山谷松風閣詩卷 227×35cm
김희정은 전통 서예의 깊이를 단단히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머물지 않는다. 오래된 형식의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현대의 사유와 감각을 과감히 끌어안는 균형감이 이번 전시 전반에 흐른다. 전통과 현대, 반복과 결단, 침묵과 에너지가 한 화면 안에서 긴장과 조화를 이루며 관객을 마주한다.
高貞碑 句 戩穀純嘏 70×135cm
《회귀》전은 단순한 서예 전시를 넘어, 한 예술가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자 제안이다. 지금의 나, 지금의 선택, 지금의 붓질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가. 김희정의 작품 앞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되묻게 된다. 연말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이 전시는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에너지로 마음을 어루만지며, 다가올 새해를 맞이할 사유의 여백을 선사한다.
-글씨21 김현수 theart21@naver.com
전시 정보
전시명: 김희정 서예전 《회귀(回歸)》
기간: 2025년 12월 18일(목) – 12월 24일(수)
장소: 백악미술관 1·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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