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륜(1943생) 호(號)는 초정(艸丁), 단샘 등이며 경북 예천에서 권동진 어른과 윤수향 여사의 4녀 1남 중 네번째로 태어났다. 서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현대 서예계의 거장이셨던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두 스승에게 사사 받았고 그들의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돋보였던 실력과 이론을 겸비한 인물이다.
세한송백 歲寒松柏 34x47cm
서예의 각 서체를 두루 섭렵하고 사군자, 전각, 문인화 등 다양한 서예의 분야를 개척했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인정되는 우리 서단의 대표적 서예가임은 틀림이 없다.
실사구시 實事求是 163x35cm 초정 권창륜과 여초 김응현
일중 김충현
사시규흥 四時佳興 40x31cm
1968년(28세) 제17회 국전에서 특선하면서 청년서예가로서 존재감을 알리게 되었다. 나아가 1977년(37세) 26회 봄 국전에서 석문명 필의로 창작한 작품이 대통령상 없는 최고상인 총리상을 수상하면서 서예, 문화계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된다. 인터뷰 장면
무학희해 舞鶴戱海 137x35cm
황룡가화 黃龍嘉禾 70x65cm
1977년 4월, 조선일보 - 제26회 봄 국전 국무총리상
지금 그 작품을 봐도 37세 때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필력과 작품 구성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현재를 사는 젊은 청년 서예가들 뿐 아니라 서예인 모두에게 큰 자극이 될 만하다.
추수위신 秋水爲神 185x35cm
한때 대한민국 서단에 파란을 일으켰던 촉망받던 청년작가가 세월이 흘러 어느덧 원로라는 이름으로 후학들에게 권창륜의 서예 이야기를 전해 주고자 한다.
현재 70대 중반의 노령임에도 올곧은 몸과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선생께 살아온 세월과 서예, 후배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그의 묵직한 글씨처럼 응축된 50년 서예인생의 역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인터뷰 성인근(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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