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정 이돈흥(鶴亭 李敦興)과 리우정청(劉正成)의 2인전이 3월 13일부터 오는 6월 17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제1·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동년배인 두 작가는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20년 간 서예를 통해 교류해왔다. 전시 주제인 ‘예결금란(藝結金蘭)’은 예로써 맺어진 금란지교란 뜻이고 전시명인 ‘춘수모운(春樹暮雲)’ 역시 두보(杜甫)가 멀리 있는 친구인 이백(李白)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지은 시에서 유래한 것이니 이로써 두 작가의 두터운 우정을 짐작할 만하다.
두 작가는 각국의 서예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왔을 뿐만 아니라 교류를 통해 양국 서예계의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특히 학정 선생은 국제서예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세계청소년서예대전을 꾸준히 운영하여 한국 서단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데 공헌하였다. 리우정청 선생은 중국서법가협회의 부비서장으로서 중국 서단의 새로운 부흥기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서예잡지 『중국서법(中國書法)』을 창간하였고, 중국 서예사를 총망라한 『중국서법전집(中國書法全集)』 100권 시리즈를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매년 당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한민국 명품전의 일환으로, 서예인 및 일반 관객들에게 한·중의 서예술을 한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시 개막식 날인 3월 15일, 광주 금남로에 위치한 학정서예연구원을 찾아 두 작가와 나눈 이야기를 문답 형태로 정리하여 전한다.
Q. 이번 전시를 소개해주십시오.
(이돈흥(이하 이)) 그간 한국과 중국이 외교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에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문화예술을 통해 양국 관계를 풀어보고자 한국과 중국 작가 2인전을 기획하였습니다. 지난 10월 말 경에 결정된 전시라 준비기간이 짧았지만 리우정청 선생님께서 흔쾌히 허락을 해 전시회를 열 수 있었습니다.
(리우정청(이하 劉)) 한국과 교류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큰 전시는 처음입니다. 한국의 서예가와 관객들의 많은 관심과 조언을 바랍니다. 이번 ‘예결금란’이라는 전시명은 이돈흥 선생님과 저, 두 사람만의 우정이 아닌 오래전부터 교류해온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상징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양국의 우정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돈흥 作
Q. 두 분의 인연이 오래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劉) 여초 김응현 선생님 덕분입니다. 그분께서는 생전에 한국 서단과 중국 서단의 교류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한 번은 김응현 선생님이 권창륜·여원구·이돈흥 선생님 3분과 함께 베이징에 오셨죠. 그때 처음 이돈흥 선생님을 알게 됐습니다.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부터입니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참가 차 전주에 왔다가 광주에 와 학정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전주에 올 때마다 광주에 들렀죠. 마찬가지로 학정 선생님도 북경에 오면 꼭 저를 만났습니다.
(이) 리우정청 선생님과 10일가량 돈황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여행에서 그가 학문적으로도 높고 서예술에도 깊이 천착한, 훌륭한 작가임을 깊이 느낄 수 있었고 더욱 친하게 되었습니다. 언어는 서로 다르지만 예술로 교류하면서 서로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지기(知己)라 하겠습니다.
Q. 이번 전시 준비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전시의 특징은요?
(劉) 지난 10월 말에 결정된 전시라 준비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학정 선생님과 함께 하였기에 가능한 전시였고, 그간 서예로 교류하면서 공부한 것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마련한 전시입니다.
특히 중국의 우수한 시가(詩歌)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을 접하면서 알게 된 한국의 시가 역시 작품에 담았습니다. 또 전·예·해·행·초 등 여러 서체를 선보였는데 초서 작품에는 저의 감정이, 행서에는 저의 사상이 담겨있습니다. 전서와 예서로 쓴 작품은 한·중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청나라 시기, 특히 옹방강과 추사의 이야기를 주제로 했습니다. 아무쪼록 한국 작가들과 관객들의 많은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특히 학정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이) 이번 전시에는 한국과 중국, 양국의 작가가 함께하는 전시이기에 한국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광주라는 지역의 역사를 담고자 했습니다. 김상헌·성삼문의 글이라든지 광주에서 의병장을 했던 충장공 김덕령 장군에 관한 시와 글을 주제로 했습니다.
그리고 리우정청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2인전은 상호보완이라고 해야 할까요? 말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상대방의 글씨를 보다 보면 ‘아, 무엇을 배워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리우정청 선생님께서 겸손하게도 저에게 지도를 해줬으면 하고 말씀하셨지만 저야말로 리우정청 선생님께 지도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한국과 중국 서예가의 2인전으로는 예전에 김응현·치궁(啓功), 권창륜·선펑(沈鵬), 그 뒤로는 박동규·저우샹린(周祥林)의 전시가 있었죠. 저희의 2인전이 4번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전시가 우리 서단에 좋은 영향을 미쳐서 후배들이 무언가를 느끼고 새로운 목표나 지향점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을 만큼 좋은 작품을 했나 걱정이 되긴 하지만요.
리우정청 作
Q. 상대방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신다면요?
(劉) 학정 선생님과 저는 서로가 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며 영향을 주고받고 공부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흔히 펜으로 교류를 한다고 하는데, 저희는 서사(書寫)라는 행위로서 교류를 한 셈입니다.
학정 선생님은 높은 경지의 서예술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그 실력이 잘 알려져 있고 중국에서 봐도 대단히 수준이 높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이의 시나 문장 외에도 선생님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시로 짓고 이를 붓으로 표현하신다면, 서예계뿐만 아니라 문학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한국 서단의 서예가들은 스스로 시를 지어 쓰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언어의 문제로 시를 읽을 수는 있어도 짓는 수준이 되기까지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자작 시를 쓰고 이를 서예작품화한다는 것은 자기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인데요, 바꿔 말하면 다른 이의 글을 쓸 때도 그 글을 충분히 이해하고 느껴야 한다는 거죠. 특히 행초의 경우, 충분히 이해하고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쓰면 글씨도 제대로 나오지 못합니다.
리우정청 선생님은 서론에도 밝을 뿐만 아니라 개성이 강한 행초를 씁니다. 행초를 씀에 있어서 장초를 쓴다는 것은 변화를 꾀하는 것을 의미해요. 왕탁 글씨를 보면 이런 장초가 조금씩 섞여있는데 리우정청 선생님의 행초에는 장초가 상당히 많이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보통의 작가들이 넘볼 수 없는, 굉장한 속필이죠. 오래 볼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그런 글씨입니다.
이돈흥 作
Q. 두 분은 국제서예가협회에서 각국의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 서단이 중국 서단의 발전을 통해 어떤 점을 배워야 할까요?
(이) 그간 한국과 중국의 교류전을 수차례 개최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과 중국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지난 10년 사이에 중국의 실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중국에서는 서예를 국가적으로 육성하고 있는데, 우리는 학교에서 서예를 가르치지 않고 한문도 가르치지 않다 보니 갈수록 서단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서예가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죠. 서예진흥법 통과 등 정책적으로 서예를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몇 사람 개인의 노력으로는 힘들죠. 우리 서예인이 모두 뭉치고 한학자들이 뭉쳐 무엇인가를 해야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劉) 한국은 한글을 쓰기 때문에 한자가 필요 없는 상황이고, 한자 교육도 하지 않기에 중국의 서예가들보다 환경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많은 서예가들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예를 대하는 정신에 대해 배우곤 합니다. 한국 서단과 중국 서단의 발전은 동보(同步), 같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리우정청 作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劉) 두 가지 큰 계획이 있는데 모두 학정 선생님과 관련이 있네요. 우선 이번 2인전을 중국에서 다시 한 번 개최하고 싶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서예가가 어떻게 교류하고 있는지 중국 작가들에게 보이고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10년 정도가 흘러 80세가 넘었을 때 학정 선생님과 다시 한 번 전시를 하고 싶습니다. 그때는 법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게, 마음 내키는 대로 쓰고 싶습니다.
(이)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리우정청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번 전시를 중국에서 할 수 있다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매일 밥 먹듯이 매일 글씨를 쓰면서 저의 소임을 하는 거죠. 열심히 부지런히 붓하고 노는 것, 그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입니다.
* 본 인터뷰는 『월간 묵가』와 공동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월간 묵가』의 4월 호에서도 인터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