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전각(篆刻)은 있는가 -<한국전각, 정예작가21인 초대전>을 보고- 김찬호(경희대교육대학원 주임교수·미술평론가) 1. 전각, 오늘의 현상을 보다 2018년 12월 글씨21(대표 석태진)에서 기획하고 이화아트갤러리에서 주최한 <한국전각, 정예작가21인 초대전>이 열렸다. 참여 작가들을 살펴보고, 전각계에 새바람을 일으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는 관람자에게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주어야 한다. 그런 설렘으로 바라본 작품들에서 기존 전각전과의 다른 특이함은 찾지 못했다. 척박한 전각문화의 현실 속에서 크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작품의 구성은 단순히 조각되어 있는 인면과 탁본뿐만이 아니라 여백을 포함한 작품 전체의 조형성에 주목해야 한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전각, 정예작가21인 초대전 전경
吳昌碩 齊白石
요즘 우리 전각계는 전반적으로 진한인고전풍(秦漢印古典風)·오창석(吳昌碩, 1844~1927)·제백석(齊白石, 1860~1957)·등산목(鄧散木, 1898~1963) 등의 청대유파인풍(淸代流派印風)과 대사의인풍(大寫意印風)이 절충되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서예의 전법(篆法)과 고문자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때문에 전통에 바탕을 둔 깊이 있는 전각작품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도법(刀法)은 자유롭게 운용하지만 여백을 살려주는 포치(布置)가 답답하며, 도식화(圖式化)되고, 정형화된 느낌이 강하다. 전각작품을 할 때는 서예 필법을 충분히 터득한 후, 그 필획이 전각 속에 드러나야 한다. 서예의 필법과 문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단순히 외형만 따르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한국전각, 정예작가21인 초대전 전경
중국의 전각계는 서령인사(西泠印社) 회원이 되면 생계가 보장된다고 할 정도로 전각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한다. 중국 전각계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전통적인 진한인고전풍과 청대유파인풍을 절충하고 있다. 대표작가로는 한천형(韓天衡)·축수지(祝遂之)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대사의인풍(大寫意印風)의 대표작가로는 왕용(王鏞)·석개(石開) 등이 있다. 지금 중국은 서령인사와 북경인사(北京印社)를 중심으로 전각예술에 대한 연구·비평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 전각계는 관동인파(關東印派)와 관서인파(關西印派)로 나눈다. 관동인파는 동경을 중심으로 전일본전각가연맹(全日本篆刻聯盟)이 활동하고 있으며, 대표작가는 코바야시 도완(小林斗庵, 1916~2007)이다. 관서인파는 오사카와 교토를 중심으로 일본전각가협회(日本篆刻家協會)가 활동하고 있으며, 대표작가로는 바이조 데키(梅舒適, 1914~2008)를 들 수 있다. 일본 전각은 전통적인 진한인고전풍·청대유파인풍·대사의인풍이 나타나고, 도법에서 한국과 중국에 비해 칼의 흔적[刀痕]을 표면에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 한·중·일의 전각예술은 전통적인 진한인고전풍·청대유파인풍·대사의인풍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각국마다 독자적 인풍(印風)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전각협회를 중심으로 회원전과 학술대회를 통해 전각 발전에 힘쓰고 있다. 중국은 서예가뿐만 아니라 화가들 사이에서도 전각을 즐긴다. 그리고 전각에 대해 높게 인정하며, 관련 연구와 비평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도 관서와 관동의 전각협회를 중심으로 전각의 대중화에 노력하고 있으며 학술적 연구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王鏞 石開 梅舒適 전각예술은 회화·건축·조소·디자인 등 여타의 예술장르로부터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전각도 자신의 기법과 사유방식 등 스스로의 가치와 장점으로 다른 예술장르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2. 새로운 시각, 여백에 눈을 돌리자 전시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하는 자리이다. 이번 초대전에서는 전각이 작가의 소통 도구로 역할 한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언어와 문자이고, 그 언어와 문자를 개념화시키고 압축하여 드러내는 예술형식이 바로 전각이다. 때문에 시각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오감을 자극하여 관람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때에야 그 전시가 새롭게 다가온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고 위기와 전환 단계를 거치면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그 결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전각계는 내용과 형식에서 다양성이 부족하다. 한국전각, 정예작가21인 초대전 전경
미래의 사회 환경과 예술계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 개발 또한 중요하다. 과거·현재·미래를 내다보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교육시스템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문자예술로서의 위치를 제대로 확인하고, 교육의 체계화와 함께 새로운 변화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회화·조각 등 예술 표현을 위한 방법과 재료인 매체는 예술형식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이우환(李禹煥, 1936~)은 말한다. “작품의 구성에서 한 점이 가장 어렵다. 한가운데 점을 찍으면 안정감이 있는 대신에 움직임이 없다. 그래서 중심에는 그리지 않는다. 중심에서 벗어나 점을 찍으면 중앙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사람의 눈이 생긴다. 눈이 동적인 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위치와 점을 찍을 수 있는 위치는 그래서 다르다. 그래야 역동성이 생긴다.”
-강연 <여백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이우환 <照應> 56×76㎝, 1992
작가는 점 하나를 찍기 위해 수개월 또는 수년을 바친다. 이우환은 화면을 구성하는 캔버스에 여러 번의 색을 발라 바탕을 만들고, 자기에게 맞는 도구를 만들어 수없이 바르고 말리고, 또 바르는 작업을 통해 점과 여백에 밀도감을 더함으로써 작품에 깊이를 부여했다. 즉, 그리지 않는 부분과 그리는 부분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전각의 핵심은 그런 여백을 찾아내고 만들어내고 조화시키는 것이다. 대부분은 찍혀 있는 인문(印文)만 보는데,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여백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이응노(李應魯, 1904~1989)는 그의 예술적 뿌리는 서예이고, 서예에서 여백을 배웠다고 말한다. 예술작품에서 서예가 주는 영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붓글씨를 썼고 한동안 문인화를 그렸기 때문에 서예의 세계가 하나의 추상화의 세계로 통한다. 서예 속에 조형의 기본이 있다. 선의 움직임과 공간의 설정, 새하얀 평면에 쓰인 먹의 형상과 여백의 관계, 이것은 현대회화가 추구하고 있는 조형의 기본이다.” 이응노는 서예에 조형의 기본이 있다고 말한다. 선의 움직임과 공간의 설정을 통해 여백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현대회화가 추구하는 조형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南寬 李應魯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남관(南寬, 1911~1990)은 미술평론가 가스통 디일(Gaston Diehl, 1912~1999)로부터 “동서양 문화의 어느 일부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둘을 융합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대예술가”1)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의 뿌리 역시 우리 전통문화와 서예이다. 그는 국내외에서 동양의 옛 소재들을 현대적이면서도 독창적으로 풀어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전통 속에 있으면서도 결코 전통의 형식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한국전각, 정예작가21인 초대전
이번 초대전 출품작가의 면면을 살펴보면, 크게 대학 서예과 졸업 후 유학을 거친 작가와 국내 공모전과 사승관계를 통해 활동하는 작가로 나눌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현실의 어려움과 전형적 틀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탈고착화가 필요하다. 결국은 스스로의 고정관념을 하나하나 제거해 가야한다. 신철우 作 <혼돈 속으로 - 반야심경>
신철우의 <혼돈 속으로 - 반야심경>을 보면 매 글자의 대소·장단·소밀과 새기다 떨어져 나간 흔적이 전체 화면에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즉 형태를 보면 중심부와 주변부가 없이 화면을 균질하게 표현하는 올오버페인팅(all over painting) 기법과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완 作 <아프리카>
이완의 <아프리카>는 선과 면의 공간이 적절히 안배되어 음각인지 양각인지 모를 정도의 착시 효과를 주고 있다. 그래서 인면에 구성된 문자가 확장되어 보이기도 하고, 주변의 글자와 부딪치기도 하면서 여백이 만들어지고, 그 여백을 통해 관람객이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작품은 이렇듯 작은 인면에 구성된 글자이지만 그 속에서도 조형적 울림을 줄 수 있다. 이정 作 <大道無門>
이정의 <대도무문(大道無門)>은 네 글자의 크기가 다르면서도 도흔(刀痕)이 잘 살아있어 생경하면서도 운동감을 느끼게 한다. 작가만의 소밀한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안에서 자유스러움을 추구하고 있다. 밀(密)한 곳은 바늘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이고, 소(疎)한 곳은 말을 달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로운 공간운용이 돋보인다. 최재석 作 <고사리 손뼉소리>
최재석의 <고사리 손뼉소리>는 전각과 서예를 한 화면에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열 작품을 하나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 전각과 글씨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묻어나 있다. 전각의 위치에 따라 글씨는 위에 있기도 하고, 아래에 있기도 하다. 전각과 글씨의 여백을 통한 공간창출, 어울림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엿보인다. 여백이란 빈 공간이 아니다. 공간 자체가 역동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울림의 공간이다. 작가는 작가대로, 관람자는 관람자대로 사유하는 공간이다. 3. 탈고착화(脫固着化), 생각이 예술을 만든다 1975년 코닥(Kodak)의 한 엔지니어가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한다. 그러나 코닥의 경영진은 “해 오고 있던 일이나 잘하자”라며 디지털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혁신을 외면한 코닥은 2012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코닥이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기 때문이다.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도전을 포기한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 내기 어렵다. 코닥처럼 여기서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변화의 바람에 눈을 돌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우리 전각계에도 필요하다.
전각의 정형화된 형식을 바꾸고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탈고착화를 시도해야 한다. 탈고착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다양한 매체의 사용, 평면성 탈피, 색의 다양화이다. 이를 통해 전각예술의 확장성에 주목해야 한다. 1. 다양한 매체의 사용 : 디자인·영화·음악 또는 다양한 오브제와 결합된 매체의 다양화를 통해 현대인의 문화생활 속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2. 평면성 탈피 : 기존의 화선지·액자·족자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과 문자와의 만남 등 새로운 조형공간을 찾아 전각예술의 시공간적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 3. 색의 다양화 : 흰색이 바탕일 때는 검정색과 붉은색이 대비를 이루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지만 작품의 내용에 따라 효과를 극소화할 수도 있다. 바탕색이 달라지거나 조형공간이 달라지면 색도 조형공간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 사진 예술이 가능한 것은 사진기라는 새로운 매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이 전통과 전혀 다른 형식을 드러냈기 때문에 새로운 형식의 예술이 만들어진 것이다. 매체의 변화는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형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매체와 열린 사유가 새로운 예술형식을 만들어 낸다. 르네상스의 정형화되고 이상화된 틀을 깨고 바로크의 카라바조가 나왔다. 카라바조는 “그리스 여인을 그리느니 차라리 집시를 그리겠다”라고 말했다. 카라바조의 예술정신은 미술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게 된다. 김성덕 作 <崇尙書學> 3.4x3.7
어떤 관계가 고착화되면 관계 그 자체가 틀을 만들어 억압적이 되고 고정화된다. 중세는 신을 중심으로 수직적 위계를 세우고 그 관계는 고착화되었다. 신에서 인간이 중심이 된 르네상스는 또다시 인간을 중심으로 위계를 세우고 그 관계는 다시 고착화되었다.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단순히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금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야 한다. 전통을 통해 변형·해체·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생각이 예술의 변화를 만든다. 한국전각, 정예작가21인 초대전 전경
전각 그 자체가 작품이고, 그 작품이 완성도가 있어야만 전각예술은 확장성을 갖게 된다. 매 글자의 자법과 장법이 조화를 이루고 작가의 개념이 작품을 통해 전해질 때 애호가들이 호평하는 것이다. 이번 글씨21의 <한국전각, 정예작가21인초대전>은 작지만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 전시였다. 그들의 작은 날갯짓이 전각계에 큰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한다.
* 본 글은 <월간묵가 1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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