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산업훈장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 여기 오로지 글씨 하나로 2012년 디자인 코리아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작가가 있다. 글씨에 생명과 표정을 담아내는 글씨예술가 캘리그라퍼 강병인 작가를 만나보았다.
Q. 한글에 아름다운 글꽃을 피우고 있는 작가, 강병인 작가님의 글씨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글씨를 쓰게 되신 건가요?
어린 시절 시골이라 군것질은 거의 못했으며 집안은 원체 가난하였죠. 그런데 특활시간에 배운 서예수업이 끝나고 나면 양봉을 하셨던 선생님께서 꿀을 실컷 먹게 해주셨습니다. 달콤한 꿀의 유혹에 서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제 성격이 활발하기보다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먹을 갈고 글씨를 쓰는 시간이 왠지 좋았습니다. 내세울 것 없는 시골아이가 또래 중에 대표로 뽑혀 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나름의 존재감을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보여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작품세계와 조선시대 최고의 예술가·서예가라는 설명들을 보고 다시 한 번 ‘나중에 크면 서예가가 되어야 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독학이나 마찬가지 인데, 초등학교 때 1년 정도 궁체를 배웠고, 그 이후로는 선생님이 안계셨습니다.
Q. 서예가 강병인 보다 캘리그라피 디자이너 강병인으로 먼저 대중에 알려지셨습니다. 전통서예라는 콘텐츠로 디자인과 접목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글씨를 독학하면서 디자이너로도 활동을 했었는데 자연스럽게 서예와 디자인, 디자인과 서예의 관계를 생각했습니다. 디자인의 한 분야로 제품의 로고를 만든다던지, 책의 타이틀을 쓴다던지, 대부분이 그 당시에는 활자를 이용해서 제호를 활용했기 때문에 제품의 로고마저도 붓글씨를 쓰는 것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초 일본여행을 하면서 지하철이나 백화점, 서점, 길거리의 간판을 보면 붓글씨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컴퓨터로 만든 인위적인 글자인 반면에 일본간판의 글씨는 대부분이 붓글씨로 쓰여져 자연스럽게 가게의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붓글씨가 생활 속에 디자인 적인 쓰임이 굉장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분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서예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생활 속에서나 디자인적으로 광고카피, 제품의 로고, 영화·드라마에 부분적으로만 사용하고 있을 뿐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지는 않았죠. 그래서 조금씩 실험을 해보고 적용한 결과, 디자인적으로 쓰이는 붓글씨는 기존의 서예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원래 디자인은 발상이며, 어떤 광고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기업의 이념과 정체성을 광고에 표현해야 하고, 제품의 광고 패키지라면 제품의 속성, 제품을 누구에게 팔 것인가에 대한 소비자층을 분석하지 않으면 패키지나 제품의 로고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서예가의 서풍. 본인이 잘 쓰는 서체로 글씨를 쓴다는 것은 상업적으로 활용도가 매우 떨어질 것입니다. a라는 제품이 주(酒)류라면, 기업마다 자기의 이념이 다르고 만드는 과정이 다르고 제품의 속성이 다른 것인데 a제품,b제품,c제품의 글씨가 똑같다면 변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서예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표현방식과 하나의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분석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컨셉이 만들어지면 그 컨셉에 따라 로고, 패키지, 광고전략이 하나로 흐르듯 서예와 디자인적인 과정도 서로 접목하면 새로운 서예, 새로운 손글씨 분야가 만들어 질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붓글씨가 생활이나 디자인 속에서의 활발한 쓰이는 일본을 알아봤더니 그들은 이를 캘리그라피라고 하며 순수 서도와 상업서도를 구분해서 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것도 캘리그라피라고 말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속적인 실험을 하고, 광고회사에서 디자인을 하며 실제로 적용해볼 수 있었죠. 2000년대 ‘따자마자축제’나 99년도 <다비전>이라는 일러스트 그룹의 로고를 붓글씨로 쓴 경험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서체나 활자를 적용한 글씨를 보여줬을 때와 붓글씨로 서체를 다양하게 보여줬을 때의 반응은 너무 달랐습니다. 붓글씨를 보며, 활자와는 차별화 되어있고 독특하며 우리의 정체성(한국인의 정체성, 단체, 개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며,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이념이나 제품의 속성이 잘 표현되었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붓글씨를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2000년 초에 광고회사에서 많은 실험을 거친 끝에 다시 글씨를 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2002년 초,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글씨 쓰는 사람은 보통 호를 갖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호 ‘영묵(永墨)’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중학교 때 추사 김정희 선생님을 보며 나중에 크면 닮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훌륭한 서예가가 되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 어렸지만 막연하게 한자서예시대를 겪으신 추사선생님의 작품 중 특히 예서를 보면 글이 가지고 있는 내용, 거기에 들어있는 무수한 삶의 경험들, 희로애락喜怒哀樂이 표현되어있습니다. 한글로 시작한 저는 ‘한자로는 도저히 추사를 따라 갈 수 없겠구나’ 하여 ‘한글로 이름을 날려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예를 하다보니 친구들이 글씨를 써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작품 마지막에 낙관을 찍어야 하는데 호가 없어 호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내가 앞으로 추사선생님 같은 글씨를 쓰려면 영원히 먹과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하여 호를 영묵永墨이라 짓게 됩니다. 그 당시에 글씨를 잘 쓰지도 못하고 전각이라는 것도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친구들이 부탁하면 고무지우개에 새겨 찍어주곤 했지요. 제가 만약에 중학교 때 영묵이라는 호를 짓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가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Q. 작가님은 2004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계십니다. 다양한 작품과 작가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작업노트와 같이 여겨지는데요. 글 중 ‘캘리그라피는 잠시 유행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캘리그라피란 어떤 것인지요?
그 당시 캘리그라피를 두가지 관점에서 접근하였습니다.
하나는 전통서예의 현대적인 재해석, 재창조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자서예는 추사선생님의 예서나 많은 서예가들이 모여 표현되는 서예작품은 굉장히 작가의 개성이나 정신이 표출되거나 형태적으로 구도적으로 작품이 굉장히 다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 80년대 90년대 초만 해도 한글서예는 판본체, 궁체 위주의 창작표현방식에 가두어져있지 않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한글은 한자처럼 쓸 수 없는가에 대해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그 답은 사실 추사선생님을 통해 얻었습니다. 추사선생님의 예서에서 지금의 제 작업을 보았습니다. 법고창신. 옛 것을 제대로 공부해야 하며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라는 뜻으로 한글서예에 있어서 법고는 당연히 판본체나 궁체, 정자 흘림정도가 있습니다. 이것을 익히지 않고서는 당연히 한글서예, 한글캘리그라피, 한글디자인도 저는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한글서예의 창신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한자는 꽃花 , 돌石, 용龍 등 힘있게 쓸 수 있는데 한글도 돌을 돌처럼 쓰면 안될까? 한글도 꽃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보면 꽃이 피고 가지가 있으며 뿌리가 있는데, 그것을 표현할 수 없을까? 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봄’을 가만히 보면 종성‘ㅁ’은 땅이고 초성은 하늘이고 중성의 모음은 사람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뿌리가 있고 가지가 있고 또 가지 위에 우리가 봄이 오면 무수하게 상상할 수 있는 무언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종성‘ㅁ’은 땅에서 싹이 나는 모습으로, ‘ㅗ’는 싹이 자라 가지가 되는 모습으로, 초성 ‘ㅂ’은 꽃봉 우리로 표현하면 안되는 것인가. 라는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죠. 이는 봄이 와 즐겁게 춤추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면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이게끔 상형화 하였다’라고 나옵니다.
봄_2007_30x16.5cm
그래서 한글이 ‘표음문자이지만 적극적인 상형문자는 아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이게끔 합니다. 이기불이理旣不二, 소리와 문자는 다르지 않다고 뜻으로 우리 인간의 감정, 자연이 가지고 있는 형상을 보면 다 소리로 드러납니다. 보이는 그대로 형상을 만드는 것은 한자고, 한글은 그 소리를 통해 모든 형상들을 드러 낸다 라고 나름대로 제자원리에서 밝혀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칼 이라는 문자, 소리에서 칼을 볼 수 있지만 활자에서는 그것을 볼 수 없지요. 그런데 캘리그라피는 얼마든지 칼의 모습, 칼을 쓰는 사람, 칼을 쓰는 역동성을 ㄹ을 통해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한글이 가지고 있는 꼴의 다양성, 그안에 들어있는 철학,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 음과 양을 가지고 있는 한글의 제자원리 창제원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글서예를 보여주고자하였습니다, 결국, 한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꼴의 다양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실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imf 당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imf 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꿈꿔오고 생각하고 실험하였던 서예의 디자인적인 응용. 다시 말해 일본에서 보았던 캘리그라피를 한번 열어보자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늘 쓰던 서체가 아니라 a라는 도둑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이라면 도둑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엄마가 뿔났다’를 표현한다면 ‘뿔’ 자에서 엄마가 뿔난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단순히 뿔이라고해서 뿔처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뿔’ 자를 표현하여야 합니다. 어렸을 때 소에 먹이를 주는 했던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보았던 그 소가 늘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밭을 갈고, 새끼를 낳아 팔면 그것으로 아들,딸 들의 학비를 마련해주는 소를 보며 늘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강요받는 어머니상을 내용으로 하는 ‘엄마가 뿔났다’를 떠올렸습니다. 만약에 단순히 ‘뿔’ 이라고 생각하여 뿔처럼 표현해야지 라고 한다면 아마 캘리그라피의 생명력은 없었을 것입니다. 경험, 이유를 그 안에 응축시켜 엄마가 뿔났다가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 결과 드라마를 만드는 감독, 시청자 모두를 만족하는 글씨가 나온 것입니다. 저는 이런 작업을 통해 캘리그라피를 디자인의 분야로 발전시켜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와 더불어 이 분야를 하나의 직업군처럼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하게 됩니다. 교육을 통해. 지금은 나름의 직업분야로 발전하였지만 한글이 디자인 분야에서 새롭게 적용될 수 있도록 서예인, 디자이너, 일반 사람 모두 이 분야를 배워, 먹고 살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200802_KBS2_엄마가뿔났다 영상타이틀
Q. 매년 입춘이 다가오면 SNS에 강병인 작가님이 보내 온 입춘대길 글씨를 인증하는 인증대란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입춘 글씨를 선물하시는데 특별한 계기나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봄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봄이 오면 모든 얼었던 대지가 기지개를 핍니다. 사실은 한글에 계절을 담고 보면,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와있는 참모습은 겨울과 같습니다. 아무 움직임이 없는 상태, 네모나고 아주 정적인 겨울의 모습을 닮아있습니다. 겨울은 사실 어마어마하게 중요합니다. 모든 땅속에 영양분을 빨아들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켜 그 생명을 자라게하는 순환의 원리를 가진 계절입니다. 예를들면 ‘봄’이라는 글자는 땅에서 겨울내내 영양분을 머금고 있다가 봄이 오면 싹이 자라고 꽃이피는, 여름이 되면 절정을 이루었다가 가을이 되면 겨울을 준비합니다. 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떨어지면 땅으로. 겨울의 영양분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한글은 그런 원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굉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겨울도 너무 소중하지만 봄이 되면 많은 생명을 잉태시키고 누구나 평등하게 똑같이 햇살을 주기에 봄을 좋아합니다. 옛날에는 봄을 즐기는 방법이 집에 봄을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입춘대길을 문 앞에 써서 붙였습니다. 과거에는 모든 사람들이 글씨를 썼기에 본인들이 입춘대길을 써서 붙였는데 지금은 서예문화가 글씨를 쓰는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에 직접글씨를 써서 붙이기에는 어렵지요. 그래서 글씨를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글씨를 써서 주변의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5~60장 써서 시작했는데 해가 지날수록 장수가 늘어났습니다. 3년까지는 한자로, 매년 다른 서체 전서, 행서 등으로 바꿔가며 썼습니다. 그러다 2015년부터는 한글도 써보면 어떨까 하여 한자 밑에 한글로 ‘새봄 오시는 날’ 이라는 풀이를 써 보내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한자로만 되는 것보다 한글이 섞여 있는 것을 더 선호하셨습니다. 저는 오히려 한글을 크게 쓰고 한자는 작게 써드기도 하였습니다. 올해는 한글을 한자로 비유하면 행서로 쓰고 입춘대길은 낙관을 만들어서 찍어 보내드렸습니다. 한자로만 쓰는 입춘대길을 한글로 받았을 때, ‘입춘대길이 가지고 있는 뜻을 한글에서 느낀다’라는 반응이 왔을 때 그 기분 때문에 힘들더라도 즐거운 것 같습니다.
서울시 슬로건
Q.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세종대왕 광팬이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스승의 날에 대한 이야기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알아야 할 스토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글씨21 독자들에게도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2년전만 해도 홍대앞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쪽 종로 인왕산 아래로 옮긴 이유는 세종께서 여기서 태어나셨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한글은 스마트시대에 가장 적합한 문자로 입력과 출력도 용이합니다. 이토록 쉽고 편리한 한글을 쓰는 이상 세종께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글 글씨를 쓰면서 제 자신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고, 더불어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하였으니 세종대왕을 어찌 잘 안 모실 수 가 없습니다. 세종의 한글정신을 지키고 알리고 이 큰 한글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 것인지 고민하며 즐겁게 한글을 더 아끼고 사랑하고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 곳으로 옮기면서 생각한 제 나름대로의 슬로건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정신을 이들이 꿈꾸는 덕을 잇는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한글은 글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들을 위해 만들어 진 것으로 굉장히 쉽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문자를 독점한다는 것은 지식을 독점한다는 것, 양반에게 독점되어 있는 지식을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겠다는 세종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시대로 보면 나눔이라는 민주주의, 인본주의, 홍익정신이 모두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정신을 ‘오늘날에 잇자, 어떻게 이어갈것인가’ 이것은 저 혼자만으로 힘으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곳은 세종의 한글창제 정신을 잇고자 하는 이들과 이 공간에서 함께하고 활동하는 다짐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종이 태어난 이곳에 그를 위한 생각터, 기념관 하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다행인 것은 마을 주민분들도 생각터복원사업에 관심이 많으시며, 추진위원회도 만들었습니다. 생각터복원에 관심이 많은 분들과 한글학자들, 한글디자이너들, 서예가분들과 함께 세종께서 나신 곳, 한글을 만든 공간에 역사성, 공간성을 알리고 외부에서 누군가 왔을 때, 세종이 태어나신 것 과 위대한 문자 한글이 만들어진 공간임을 새기고 알릴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합니다.
세종이 태어나신 날이 5월 15일은 스승의 날과 같습니다. 겨레의 스승이 바로 세종대왕입니다. 5월15일이면 세종이 태어나신 곳에서 무언가 행사나 축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행사가 없습니다. 모두 세종이 잠들어 계신 여주로 가 세종이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데 저는 이것이 모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통 일반 분들은 생신날에 묘소를 찾아가 참배하지만 위대한 인물들은 생가에서 행사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국립한국박물관후원회 이사이기도 하여 한국박물관후원회의 이름으로 2년동안 꽃다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이 행사를 할 계획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세종이 태어나셨고, 그 날짜가 5월15일이며, 왜 스승의 날이 5월15일인지를 알려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200801_KBS2_대왕세종 영상타이틀
Q. 캘리그라피는 보통 붓으로 작업을 한다고 알고 있는데 작가님의 작품 중 ‘공주의 남자’ 같은 경우 붓으로 작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보 작가들을 위하여 재료에 대한 이야기와 작업 과정을 알 수 있을까요?
캘리그라피는 서예를 바탕으로 하는 글씨입니다. 글씨를 아름답게 쓰든, 슬프게 쓰든, 기쁘게 쓰든, 못나게 써도 모두 글씨입니다. 전통서예와는 조금 다른 현대적인 재해석이기 때문에 순수작품이더라도 때로는 도구를 다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디자인적인 쓰임의 글씨는 드라마, 책, 그 내용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 따라 도구도 달리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붓을 사용하지만 때로는 다른 인공적인 도구를 사용합니다.
처음 캘리그라피를 하시는 분들은, 서예하면 바닥에 깔판이 있어야 되고, 종이, 붓, 벼루 먹, 문진 등 문방사우가 있어야 하는 등 굉장히 많은 것이 필요하여 사용이 어렵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나온 펜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가장 극대화시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동양의 모필입니다. 서양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봐야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캘리그라피는 동양의 서예 도구인 모필을 잘 다뤄야 하며, 필법을 하지 않고서는 좋은 글씨를 쓸 수 없습니다.
개_2014_30x55cm
다만 디자인적인 서예의 글씨는 필요에 따라 도구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공주의 남자 같은 경우, 드라마 방향을 시점은 조선시대지만 한복을 벗고 현대의 옷으로 갈아 입으면 현대물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드라마의 줄거리다 라고 생각하여 사극이기도 하지만 현대물이기도 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씨는 모던하게 쓰는 것이 어울리므로 도구도 바꿔본 것입니다. 물론 붓으로도 쓰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도구의 차이에서 시대도 드러나며, 공간, 시간, 역사 모든 것들이 표현됩니다.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현대성이 담아내기에는 현대적인 도구의 느낌이 더 좋았고 드라마 측에서도 이것을 채택하였습니다. 미생도 마찬가지로 작업된 것입니다. 한가지 고민이 있다면, 시청자에게 이 드라마가 얼마나 사랑받을까 하는 마음과, 드라마의 얼굴이자 주인공 못지 않게 중요한 타이틀 글씨가 얼마만큼 소통될까 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201107_KBS2_공주의 남자 영상타이틀
Q. 상업글씨는 가독성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너무 가독성만을 따지면 폰트와 크게 차이가 없어 질 듯합니다. 가독성이나 예술성이나,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상업적인 글씨는 기본적으로 사실 쓰임에 가장 충실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성은 나중의 문제가 되겠죠. 기본적으로 가독성이라는 것은 작가나 제품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업에서 만든 제품이 빨리 소비자에게 노출이 되거나 각인이 되길 원합니다. 노출되는 것이 곧 가독성입니다. 그 뒤 각인되어 기억나게 하는 것입니다.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글씨,로고가 기업의 마케팅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저같은 경우에는 가독성이 높으면서도 제품의 성격을 글씨에 담아내는, 거기에서 소비자가 쉽게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제 나름대로 ‘의미적 상형성’입니다. 글이 가지고 있는 뜻, 소리, 형상을 자연스럽게 글씨에 드러냄으로써, 보다 쉽게 소통하고 기억하게 합니다. 기억하게 한다는 것은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재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글씨여야 좀 더 상업적인 글씨에 충실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업적, 디자인적인 글씨를 쓰면서도 놓치지 않고, 줄곧 나름대로 연지해온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업의 어떤 마케팅 전략, 소비자, 타겟이 누구인지에 충실하고, 디자인 방향에 충실하면서도 로고를 통해 한글의 새로운 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입체시각시_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_2011
두 번째는 그 속에서도 강병인의 생각, 예를들면 ‘작가의 정신철학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경우 기업과 작가와의 상충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는데 상대방을 설득하는 문제는 저에게 늘 공부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캘리그라퍼가 상업적인 글씨를 쓸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사용자의 입장에 만들어야 된다는 것 입니다. 좋은 글씨를 위해서는 소비자하고 직접 만날 수 없으므로 디자이너, 기업, 작가와의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반면에 기업이나 디자이너 분들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의 제품이 나오기까지 기업에서 많은 정성과 공을 들이며 연구, 개발, 생산되기까지는 많게는 몇 개월에서 3년 정도 걸리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당황스러운 것은 글씨는 그저 쓰기만 하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여 쉽게 부탁하실 때도 있고, 글씨를 보여주며 유사하게 써달라고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저는 ‘그 제품도 유사하게 만드셨나요?’ 라고 질문을 한적도 있습니다. 유사하게 써달라고 하는 것은 카피가 될 수 있으며 a라는 제품에 맞게 글씨 또한 새롭게 창작이 되어야 합니다. 제품이 정성들여 만들어지듯이 글씨 또한 소비자와 만나는 첫 얼굴이기에 너무도 중요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캘리그라퍼들도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계속적인 소통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이슬 3종
Q. 작가님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은 글씨 작업을 하시고 쉬는 시간에는 임서를 하며 보낸다는 것이 사실인지요? 캘리그라피 작가들이 임서를 할 때 추천하는 서체는 무엇인지요?
크게 한글은 고딕서체에 바탕이 되는 판본체, 명조체의 바탕이 되는 궁체 두 가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두 서체를 늘 임서를 합니다. 궁체는 이미경 선생님의 정자와 흘림을 주로 하며, 제 글씨를 배우는 분들에게 지도도 합니다. 한글고체에는 정자와 진흘림이 있는데 두루두루 하고 있습니다. 한글을 주로 발표하지만 한문·한자서예 역시 임서를 하고 있으며 주로 왕희지의 행서를 많이 합니다. 사실은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낸다는 것은 고통스러우나 좋은 글씨를 임서하는 것만큼 행복한 시간이 어디있겠습니까. 평상심을 찾는데에는 좋은 글씨를 임서하는 것 만큼 더 좋은 것이 없는 듯 합니다. 임서라는 것은 추사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70평생에 벼루10개를 갈아 닳게 하고 붓 일천자루, 만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어도 모자르다고 하셨으니 획 공부는 평생해야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글씨를 볼 줄 알고 임서하는 것은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한 큰 바탕입니다. 글씨를 오래 쓰려면 임서를 많이 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측면에서 늘 하고 있습니다.
Q. 캘리그라피작가 강병인,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또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한 캘리그라피 디자이너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거창한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세종께서 나신 이곳에 새로운 둥지를 틀며 나름 정리한 것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캘리그라피나 먹글씨 분야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한 시대의 어떤 역할을 했는지. 곧 있으면 20년 정도 되어가는 캘리그라피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 앞으로의 역할, 뿐만아니라 문제점과 단순히 기교로서 글씨를 보여주는데 그치는가 아니면 이론적인 부분도 계속 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작가로서 새로운 한글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미적 상형성을 넘어서 한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는 요즘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한글은 전환이 무궁무진합니다. 실제로 한글의 확장성이라는 것은 개인이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이므로 끊임없이 고민할 것입니다. 캘리그라피, 다시말해 먹글씨를 좋아하시고 이 분야에 계시는 분들에게 말씀을 드린다면 먼저 자신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하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정말 나는 글씨를 좋아하는지, 글씨를 돈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저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고 봅니다. 좋아하면 즐길 것이고 즐기면 잘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돈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 역시 이 분야를 들어설 때 디자인으로서는 실패작이었습니다. 그 때 제 자신의 문제를 돌아 봤을 때 실제로 디자인의 능력이 모자라면서도 돈을 쫓고 있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글씨를 돈으로 보지말자, 내가 좋은 글씨를 쓰다 보면 돈도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씨를 정말 좋아한다면 자연스럽게 누구에게나 좋은 글씨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글씨21 힘내세요! 얼씨구!
생각과 마음, 붓이 하나일 때 담고자 하는 감정이 드러난다고 말하는 작가 강병인.
거침없는 붓놀림,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듯 한 획의 표현으로 21세기 서예의 명작을 만들어 가고 있는 글씨예술가 강병인의 오색찬란한 글꽃들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길 소망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글씨 쓰는 사람 강병인에게 감사드린다. 그는 우리가 쓰는 한글이 단순히 자음과 모음을 결합시켜 대상을 가리키는 약속된 글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대상을 안에 담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꽃’은 ‘ㄲ’과 ‘ㅗ’와 ‘ㅊ’이 합쳐져 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 글자 자체가 ‘꽃’의 모습이다. ‘길’은 그 글자 안에 ‘길’을 담고 있고, ‘봄’은 글자 그대로 모든 생명을 다시금 깨우는 ‘봄’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물을 상징하는 글자라고 여겼던 ‘물’이 그 안에 물의 흐름과 물의 소리까지 담고 있다! 상징적인 의미뿐 아니라 실질적인 모습까지 표현하는 것이 한글인 것이다. 내가 꽃에 대해 시를 쓰는 이 사랑하는 글자들이 단순한 소리 글자가 아니라 ‘꽃’ 그 자체임을, 무심히 써 온 ‘숲’이라는 글자 안에 깊은 산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음을 그는 보여 준다. 오랜 세월 우리가 써 온 글자들 안에 이 땅의 모든 생명과 삶이 담겨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가 쓴 손글씨 안에는 꼭 다문 꽃봉오리와 활짝 핀 꽃의 모습이 함께 있다. 그의 글자는 발명이 아니라 놀라운 발견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글씨의 시인’이라 부른다. 발견하는 눈을 가진 이는 누구나 시인이다.
더구나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그는 그리움과 사무침을 많이 겪어 온 사람이다. 모든 외형적 기대들과 좌절과 실패를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씨에는 절실함이 있다. 자기 안의 부딪침과 자기 밖의 부딪침이 담겨 있다. 그리워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음은 죽은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꽃이 피어야 우리가 만드는 작품에도 꽃이 핀다. 단순히 손재주로 피운 꽃은 향기가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든 글씨를 쓰는 사람이든 부단한 자기 공부가 따라야 하는 것이다. ‘글씨와 삶이 하나여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그가 쓰는 글자들 안에서 빛을 발한다. 그의 글씨를 그림이 아니라 ‘글꽃’이라고 우리가 느끼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