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도심을 떠나 남양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녀만큼이나 맑고 고운 풍경이 펼쳐진다.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싱그러운 봄빛으로 글씨와 그림을 물들이는 ‘늘봄’ 고은영 작가를 글씨21이 만나보았다.
화사하고 따뜻한 느낌의 공간이네요. 작업실 컨셉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제가 꽃을 좋아하고 자연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밖으로 나가면 뒤뜰이 있어서 산책할 수 있어요. 작업하면서 떠오르지 않거나 힘들 때, 사색하고 싶을 때 걷곤해요. 꽃을 보면 생각이 많이 떠오르고 날씨나 햇빛을 보면서 작품의 영향을 받곤하죠. 원래 제 작업실은 서울에 있었는데 홍대의 북적한 곳에 있다가 이쪽으로 오니 조용하고 작업에 몰두하기 좋아요. 저만의 공간으로 꽃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요. 원래 자연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작업의 소재나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풍부한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또 미래에 저만의 아트샵을 갖고 싶은 꿈이 있어요. 그래서 연습해본다는 생각으로 상품을 진열하면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곤해요.
아스팔트나 건물, 사람이 많고 북적거리는 것도 좋지만 전원생활을 해보고 싶어서 1년 반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이곳의 생활이 외롭진 않아요. 세련된 자료, 전시들과 거리가 멀어지기는 했지만 대신 공기 좋고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많고 계절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많이 느낄 수 있어서 제 작품이 좀 더 풍요로워 지는 것 같아요. 그릴 것이 많고 보는 것들이 달라졌어요.
필명이신 ‘늘봄’은 작가님과 참 닮았다고 생각되네요. 늘봄은 어떤 뜻인지요?
‘언제나 봄’이란 뜻으로 꽃을 좋아해서 지은 이름이에요. 언제나 봄처럼 사람들에게 그림으로, 글씨로 따뜻하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제가 워낙 꽃을 좋아해서 꽃도 배웠고 플로리스트가 되는 상상을 하곤 해요.
작가님의 작품은 글씨만 있지 않고 항상 그림이 함께하네요. ‘늘봄’ 작가를 떠올리면 캘리그라퍼이기도 때로는 일러스트 작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죠. 작가님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 부분에서 많이 고민해요. 저는 원래 캘리그라피 작가에요. 프로필에는 캘리그라피 작가로 소개가 되어있죠. 제가 그림을 하게 된 이유는 캘리그라피를 좀 더 돋보이게 하고 싶고 캘리그라피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보고 싶어서에요.
저는 ‘캘리를 위한 그림을 그립니다’
어떤 분들은 일러스트레이터로 보기도 해요. 실제로 캘리그라퍼로서 작업하는 경우가 있고 일러스트레이터의 신분으로 작업을 하죠. 어찌보면 직업이 두 개인 것 같기도 하네요. 두 영역을 왔다갔다 하면서 저만의 세계를 충분히 즐기고 있어요.
우연히 커피숍에 갔다가 작가님의 캘리그라피 작품을 본 기억이 나네요. 작가님의 작업 중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365일 봄을 기다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벚꽃을 수채화로 그리고 캘리그라피를 쓴 것이구요. 제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워낙 꽃을 좋아하기도 하고 항상 봄이 되면 주변 사람들이 저를 떠올리고 찾아주세요. 그래서 이 작품에 큰 애착을 느껴요.
작가님 작품 중에는 디자인 상품으로 나온 것이 많던데 어떻게 처음 글씨로 상품개발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셨는지요?
제가 원래는 디자이너로 5년 정도 회사생활을 했어요. 그 후 프리랜서로 7년 정도 일을 했구요. 막연히 팬시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꿈만 꾸다가 어느 날 제 작품을 엽서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줬어요. 처음에는 정확히 엽서 8장으로 시작했죠. 그 후 여기저기서 판매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받았어요. 소문이 나서 홍대, 인사동의 큰 샵들에서 판매가 시작되고 그 후 카드도 만들기 시작하고 점점 스케일이 커졌어요. 처음에는 저와 제 주변사람들을 위한 저만의 취미활동으로 소소하게 만들었는데 어느새 비중이 너무 커져버려서 지금은 입점되어있는 곳이 많아요. 본격적으로 팬시상품을 만들게 된 취지는 제가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것인데 우리나라에 관광 상품이 많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가볍게 살 수 있는, 저도 제작하기에 부담이 되지 않는 상품을 만들고 싶어서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지금 제 상품들은 관광지 위주로 많이 배치되어 있어요. 여행가면 기념할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글씨인 캘리그라피와 그림인 일러스트를 조화롭게 작업하는 작가님만의 작업 방식이 있는지요?
저는 작품을 한꺼번에 하지 않아요. 그림을 그려놓고 놔둬요. 글씨는 시간이 지난 후 작업을 하죠. 작품을 하루 안에 다 하지 않고 여러 시간에 걸쳐서 생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이유는 한번 그림과 글씨가 만나게 되면 그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는 결론이 주어지지만 저는 그렇게 글씨와 그림이 짝이 되는 것이 신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말 그 그림과 어울리는 글씨가 무엇인지 생각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여러날 에 걸쳐서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그림과 글씨가 만날 때 ‘그때’ 행복하고 둘이 짝이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이 들곤해요.
방금 이야기 해주신 노하우가 캘리그라피와 그림을 어울리게 작업하고 싶어하시는 분들에게 중요한 팁인 것 같네요. 그림을 그리고 바로 글씨를 얹는 것에 시간을 두지 않고 급하게 진행하게 되면 그만큼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항상 시간을 두고 쉼표처럼 그림과 어울리는 글씨가 무엇인가 고민해요. 시간을 두고 깊게 생각하면 최적화 된 결과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상품으로서의 결과물과 수강생들에게 글씨를 가르칠 때에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어떻게 다른가요?
초기에는 상업적인 작업을 할 때 제가 하고 싶은 부분을 클라이언트에게 많이 어필했어요. 작업의 색깔과 글씨의 변형등에 대한 저의 의견을 이야기 했죠. 제 글씨를 마음대로 클라이언트가 수정하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어요. 돌이켜 지금 생각해보면 상업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지 저의 개인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이제는 어떤 수정요청이 들어와도 요구에 맞게끔 해주는 것이 좋은 글씨이고 그림이지 않나 생각해요.
작업실 수업은 저에게 또 하나의 고민이에요. 저는 외주 작업 뿐만아니라 팬시도 작업하고 그 외 진행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수업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주로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는 편이에요. 사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정규 수업을 진행하고 싶죠. 수업은 사람을 만나서 소통하고 작업을 하는데 많은 영감을 주거든요.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고민했던 부분도 알려드리고 싶어요.제가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3개월~6개월 하면 금방 될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죠. 어떻게하면 글씨를 잘 쓸 수 있을까? 얼마만큼 공부를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많이했어요. 요즘 독학하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제가 고민한 부분에 대한 노하우도 알려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여유가 생기는대로 원데이클래스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작가님께 원데이클래스를 받으신 분들은 정규수업을 계속 받고 싶어 하실 것 같아요.
네. 그래서 제가 고민이에요. 제가 팬시상품 작업을 하는 게 생각보다 비중이 커져서 시간 할애를 많이해요. 팬시는 지속적으로 신제품이 나와야 하죠. 아직까지도 수업은 제가 많은 고민이 되네요. 좀 더 무르익었을 때 정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좋은 소식이 들려왔어요. 드디어 많은 독자들이 기다리던 ‘늘봄’작가의 캘리그라피 책이 나왔네요. 집필하시면서 힘드신 부분은 없으셨나요?
카피 문구를 정하는데 이틀이 걸렸어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아 뒤뜰을 산책했어요. 봄이 슬슬 오기 시작할 때 카피가 정해졌어요. 거창하진 않지만 캘리그라퍼들에게 요구되는 한 가지가 자신의 글을 써야된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의 시나 좋아하는 문구, 노래가사를 쓰는 것도 물론 좋지만 자신이 직접 글도 함께 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해서 요즘에는 책을 좀 읽고 시를 써볼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책의 타깃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 책의 타깃은 20대 초반입니다.
1일 1캘리라는 것은 하루에 하나씩 따라써보고 그려보는 것인가요?
네. 1일 1캘리구요. ‘늘봄의 하루’에요. 하루에 하나씩 365일 매일매일 캘리그라피를 쓰고 봄을 느끼셨으면해서 ‘너에게 보내는 봄빛 손글씨’라고 부제를 정했어요.
책이 처음 나오자마자 저의 스승님이신 강병인작가님께 책을 전해드렸어요. 그 부분에서 감성적으로 왈칵했어요. 감사하게도 추천사를 적어주셨어요. 두 번째 추천사를 적어준 분은 캘리그라피 작업을 하는 신동욱 작가님이에요. 저와 캘리그라피에 대해 이야기 많이 하고 변화하는 흐름에 대해 고민을 나누는 사이에요. 추천사 써주신 두 분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늘봄캘리그라피 공간, 작가님을 떠올렸을 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으면 하나요?
제 소개를 할 때 ‘언제나 봄, 당신의 봄’이라고 말해요. 봄이 오면 저를 떠올려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추운 겨울도 더운 여름도 항상 봄을 꿈꾸고 있어요. 비록 추운겨울이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더라도 그 안에서 꽃을 보셨으면 해요. 저로 인해 꽃필 날을 느끼고 그리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캘리그라피 뿐만 아니라 서예와 문인화도 깊이감 있게 공부하고 있다는 늘봄작가. 그녀는 10년 이상 캘리그라피 작업을 해오면서 시대가 변한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 5년 전, 그리고 요즘의 캘리그라피가 다른 것을 실감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을 지켜보며 적응을 하는 과도기에 있다고 말하는 그녀. 단지 보기에 예쁜 것만을 추구 하지 않고 작업에 신중을 기하는 작가의 고민과 열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미래의 캘리그라퍼를 꿈을 꾸는 이들이 그녀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나 돌아오는 봄날의 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