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글시 뎍으시니 :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 덕온공주 가족과 후손들의 왕실 한글 유산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지난 4월 25일(목)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개관 5주년을 맞이하여 2019년 첫 번째 기획특별전으로 <공쥬 글시 뎍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을 개최하였다. 이번 전시는 2016년 기획특별전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 덕온공주 한글 자료>에 이어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온 집안의 미공개 한글 유산을 소개하는 두 번째 전시이다.
축사중인 박영국 국립한글박물관장
2016년부터 2019년 1월까지 수집한 400여 점의 유물 중 덕온공주와 아들, 손녀 3대의 한글 자료와 유품 200여 점을 처음으로 망라하여 공개된다. 특히 올해 1월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으로부터 이관받은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의 『ᄌᆞ경뎐긔』를 포함하여 덕온공주의 언니 복온공주의 글씨첩, 덕온공주의 아들 윤용구(尹用求, 1853-1939)가 한글로 쓴 중국 여성 전기 『동사기람』 등 중요 유일본 자료들을 최초로 선보인다. 또 손녀 윤백영(尹伯榮, 1888-1986) 3대의 한글 자료를 비롯하여 덕온공주의 부모님 순조와 순원왕후, 오빠 효명세자의 자료가 한자리에 소개되었다. 덕온공주가 한글로 쓴 ‘자경전기’. 19세기 / 32×528cm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이번에 소개된 덕온공주 가족들의 한글 자료는 조선 왕실에서 어떻게 한글로 소통하고 가족 간의 정을 나누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처음 공개되는 『복온공주글씨첩』(개인 소장)은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832)가 12살 때 한글로 쓴 시문을 모은 첩으로, 순조(純祖, 1790-1834)가 점수를 매기고 종이와 붓 등을 상으로 내린 기록이 함께 적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복온공주의 유일한 글씨인 동시에 조선의 왕이 자신의 딸에게 직접 글쓰기를 가르쳤음을 보여주는 중요 자료이다.
오빠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의 『학석집』(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은 왕세자가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누이들을 위해 자신의 한시를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조선 시대 남성 문집 중 유일한 한글본이다.
또 이번 전시에 처음 소개되는 자료 중 한글을 통해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것들이 많다. 덕온공주가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의 명으로, 아버지 순조의 글을 한글로 풀어 쓴 『ᄌᆞ경뎐긔』와 어머니가 주신 『고문진보언해』(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를 베껴 쓴 「양양가」, 「비파행」 등에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담겨 있다. 덕온공주의 아들 윤용구는 딸 윤백영이 12세 되던 해에 모범이 될 만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뽑아 『여사초략』을 써주었고, 그 마음을 이어받은 윤백영도 아버지의 한글 역사서 『동사기람』 등을 베껴 쓰며 평생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유교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누구나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인 동시에 군왕에게는 나라의 안위를 지키고 태평성대를 불러오는 가장 근본이 되는 마음가짐이었다. 조선 시대에 부왕이 한문으로 쓴 글에 담긴 뜻을 공주가 이어받아 한글로 옮겨 쓴 사례는 극히 드물다. 5미터 넘는 길이의 종이에 정성스럽게 쓴 『ᄌᆞ경뎐긔』에서 부모의 가르침을 받들고자 했던 공주의 효심이 잘 드러난다. 전시장에서 아버지 순조의 『자경전기』와 함께 만날 수 있다.
왕실의 한글 궁체를 현대로 이어준 덕온공주의 손녀 윤백영은 할머니와 아버지의 한글 글쓰기를 이어 받아 평생 한글을 쓰고 가꾸었다. 궁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 궁할머니로 불린 윤백영은 왕실문화와 한글 자료에 대한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이 집안에 전해오는 다수의 한글 자료 필사자와 관련 내력을 알 수 있는 것도 윤백영의 기록 덕분이다. 전시장에는 덕온공부의 혼수 물품 목록, 철인왕후 친필 한글 편지 등 윤백영이 쓴 부기 부분을 찾아보는 것으로 관람에 흥미를 더할 수 있다.
윤백영은 42세였던 1929년 한글 궁체로는 처음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고, 이후 많은 한글 서예 작품을 남겨 왕실 한글 궁체의 품격을 오늘날 우리 일상이 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였다. 『한나라 명덕황후 마씨 전기』 등 윤백영이 평생 동안 쓴 다양한 한글 서예 작품과 서사書寫 상궁, 철인왕후 등의 한글 궁체를 함께 비교해 볼 수 있다. 축사중인 정재숙 문화재청장
이번 전시에서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글로서 마음을 전한 자료를 볼 수 있는데, 덕온공주의 아들 윤용구는 덕온공주가 순원왕후에게 하사받은 『고문진보언해』(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가 저동궁(덕온공주와 윤의선의 살림집) 화재로 일부 없어지자 68세 때 그것을 보충해서 쓰고 기록을 남겼다. 이후 장서각에 소장된 윤용구의 『정사기람』80권 중 권19(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는 한국전쟁 때 분실된 것을 윤백영이 77세 때 보충하여 채워 넣은 것이다. 어머니 덕온공주를 생각하는 아들 윤용구의 마음은 지극했고, 그 마음은 딸 윤백영에게로 이어졌다.
윤백영이 쓴 한글 서예 「공주 칭호」, 「녈녀 공강」, 「결혼 초법」 등은 아버지의 역사서 『동사기람』의 내용을 베껴 쓴 것이다. 아버지와 딸 윤용구와 윤백영이 앞부분과 뒷부분을 이어 쓴 『관혼상제 예법』은 이들 부녀의 각별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덕온공주와 윤용구, 윤백영 3대의 글씨가 한데 모인 자료도 있다. 덕온공주가 쓴 『족부족』 뒷면에 아들 윤용구가 한자 뜻풀이 『자의』를 쓰고, 손녀 윤백영이 그 기록을 남겼다.
2016년 기획특별전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 덕온공주 한글 자료>에서 아들과 딸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막내딸 덕온공주의 혼례를 홀로 준비하는 순원왕후의 애틋한 모정을 볼 수 있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덕온공주 가족과 그 후손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글을 통해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따뜻한 가족 사랑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밖에도 전시장에서는 덕온공주 집안이 왕실과 주고받은 한글 편지를 통해 옛 한글 편지의 특성을 살펴보는 공간도 마련하였다. 순원왕후, 명성황후 등의 편지에서 지금은 사라진 궁중어와 옛 한글 편지의 높임 방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전시운영팀
이번 전시의 연계 문화 행사로 덕온공주 가족의 왕실 잔치를 통해 조선 왕실의 한글문화를 체험하는 <해설리 있는 궁중무용과 음악(5.25)>을 개최할 예정이며, 관련 강연과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기획전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하는 덕온공주의 집안 한글 유산을 올해 안으로 발간되는 연구 총서를 통해 소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 자료 하나하나에 역사성을 갖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한글문화 자원이다. 이 전시를 계기로 더욱 활발한 관심과 연구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2019. 5. 2 김지수 기자 <전시 정보>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5주년 기획특별전 <공쥬 글시 뎍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 기간 : 2019. 4. 25 ~ 8. 18 장소 :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