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Interview]

2017-04-24
이 작가의 思생활, 박원규

한국서단의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하석 박원규

- 먹 냄새 맡기를 샤넬 향수보다
좋아해야 하고 화선지를 펴면 가슴이 뛰어 한다.


 

서예는 손가락 아래에서 만물을 집약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상위 예술의 경지이다. 막힘없는 붓놀림으로 예스러우면서도 세련된 기량을 선보이며 자신의 뜻을 획에 발현시켜 살아 움직이는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하석 박원규를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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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학과 서론을 공부하시고 매년 서첩을 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서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석 박원규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한국에 몇 없는 학자이면서 예술가란 호칭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학자라는 말은 과분하고 어울리지 않습니다. 매년 작품집을 발간하려고 계획을 세운 것은 서울에 자리를 잡을 당시 한국 서단에 내 이름 석 자를 어떻게 각인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다 나온 목표이지요. 1988년도부터 2008년까지 25권의 작품집을 발간하였고 5년에 한번 씩 유료전시를 했습니다. 이것은 제 자신을 채찍질 할 수 있는 방편이었습니다.

 

Q. 매년 첫 휘호를 자전을 열어 눈에 들어오는 글자를 뽑아 작품을 하신다던데 올해는 어떤 글자가 선정되었는지 궁급합니다.

금년에는 급할, ()자가 있는 페이지를 골랐습니다. 그 페이지에는 급할, ()’자 외에도 부끄러울,()’, ‘바쁠,()’ 등이 있지요. 이 글자들을 보며 내 스스로를 경계하자. 매사 서두르지 말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도록 자신을 더욱 경계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급경(急繕)’ 이라는 올해 첫 작품을 하게 되었지요. 저는 해가 바뀌면 작품 12점을 실은 실년 캘린더를 같이 공부한 학생들에게 선물을 주곤 합니다. 하석표 리미티드 스페셜 에디션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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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急繕 46×50 2017년 첫날

예기禮記·곡례曲禮에 있는 말이다, ‘정현鄭玄의 주과 같고 으로 읽어야 하니 급경急繕견경堅勁(단단하고 굳셈)’과 같다.

 

 

Q. 선생님의 이력을 보면 대학에서는 법학과 국문학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서예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평생 붓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내지는 확신을 하게 된 계기나 영향을 주신 분이 있으신지 여쭙고자 합니다.

집안에 서예하시는 어르신이 계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자연발생적으로 서예에 입문했다고 볼 수 있어요. 고등학교 시절, 법 쪽에 종사하신 형님 댁에서 지냈는데 그 집에 좋은 서화작품이 여럿 있었어요. 특히 현관에는 참는 것이 덕이라는 뜻의 인지위덕(忍之爲德)’ 이라는 현판이 있었어요. 또한 청풍과 명월은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고 높은 산과 흐르는 물은 서로 정을 주고받는다라는 대련 작품도 있었지요. 이러한 작품이 좋아서 신문지에 임서, 흉내내곤 했어요. 이것이 내 글씨의 시작이지요. 당시 형님에게 영향을 받아 법학과를 가긴 했지만 법을 전공하다보면 매일 죄 짓는 사람들, 매일 듣게 되는 울음소리에 법조인의 길을 가긴 어렵겠다 여겨 군대 복학 후 전과를 하려했어요. 그런데 그만 시기를 놓쳐버려 교수님께 나는 법과 맞지 않으니 나의 길일 가겠다는 이해를 구하고 한문과 글씨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글씨를 쓰다 보니 한문을 배우지 않고서는 글씨를 쓸 수 없겠다 싶어 대학 때부터 한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였습니다.

 

Q. 또 하나의 독특한 이력이 있으십니다. ‘월간까마의 발행인이셨어요. 당시 다른 잡지와의 차별 점은 불필요한 광고는 과감하게 생략하시고 까마의 눈, 서예 전반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실은 잡지로 기억합니다. 당시 까마를 만든 이유와 서예인 들에게 꼭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꼭 잡지를 발행해야겠다.’라는 생각자체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같이 공부하던 학생들로부터 잡지를 함께 하자는 권유와 제안을 받았습니다. 선생으로서의 책임감으로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시작한 이상 하석이 무엇을 하려면 작품뿐만 아니라 잡지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까마를 할 당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두 가지는

첫째, ‘특집이 없으면 잡지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까마는 총 72권이 발행되었고 매달 특집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까마의 눈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제가 생각하는 좋은 전시 및 작품들을 다루었습니다. 유명하건 유명하지 않건 당시 전시와 작품 중 괜찮은 것들을 선별해 다루었습니다.

마지막 발행이 아쉽진 않아요. 왜냐하면 6년 동안 다루고 싶었던 것을 모두 다루었기 때문이지요. 까마를 발행하는 동안 처음에 세웠던 창간의 뜻을 단 한 번도 왜곡한 적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에게도 대견하고 고마운 부분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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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호()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데요. 선생님의 호인 하석(何石)이 담고 있는 의미와 얽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호()와 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지요. 박원규라는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은 봉건 왕조시대 고종까지 올라가보면 왕과 부모뿐입니다. 남자는 23세가 되면 집안의 어른이 이름이 갖는 의미에 모자라는 것과 넘치는 것을 상호보완한 자, 호를 내립니다. 이는 모두가 부를 수 있는 것이지요.

제 호인 하석은 고향 김제 부용에 연꽃이 많았습니다. 대학교 다닐 적 한문선생님이시자 큰 형님의 벗인 유재식 선생님께서 연꽃, ()’‘,()’자로 호를 지어주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연꽃과 돌의 연관성에 의문이 들었고 선생님으로부터 의미를 들었으나 가슴 속에 와 닿지 않은 채 3년을 보냈어요.

어느 날 조용히 초두를 때어냈어요.() 그러자 호가 힘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요. 선생님이 지어주시고 도중에 내 스스로 초두를 떼어 냈으니 선생님과 나의 합작 호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Q. 선생님의 저서인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

서예는 점과 선의 예술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추상예술인 셈이다. 서예에는 자신의 마음과 정신세계가 모두 투영된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과 같습니다. 얼굴이 비슷한 형제는 있으나 똑같을 순 없지요.

글씨는 내가 공부한 만큼, 뜻만큼, 스스로의 미감만큼 드려납니다. 사람나름이지요. 자기를 쓰는 뿐입니다. 한 스승 밑에서 100명이 배워도 다 다른 것처럼 글씨만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없습니다.

 

Q. 나는 일필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일필휘지와 획의 기운생동에 대한 의견을 여쭙고자 합니다.

나는 글씨를 쓸 때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씁니다. 쓰는 매 과정은 일필휘지이지요. 그러나 예술의 ()’는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계속해서 닦는다.’라는 의미가 있어요. 작품을 할 때 일필휘지가 아닌 수백 번 내 마음에 들 때까지 그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지요. 일필휘지 하는 것이 화려할 수 있으나 이것은 퍼포먼스에 불과합니다. 한번만으로 기가 막힌 글씨가 있을 수도 있지만 갈고 닦는 것에서 무엇인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Q. 대중들이 가장 가깝게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서울역에 전시 된 10m 대형 ()’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업 당시의 구상과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가 궁금합니다.

먼저 이야기 할 것은 작품을 할 때 한글만을 써서 작품을 해야만 애국인 것인가. 혹은 왜 하필 한문을 쓰느냐에 대한 인식입니다. 일본에는 히라가나, 가타카나가 존재하지만 한문을 동양의 공동문자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자가 동북아시아의 공용문자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글씨 요청을 받았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작품이 걸릴 공간에 가서 구상을 합니다. 서울역에 있는 작품은 기차여행을 할 때 책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콘셉트를 잡았습니다. 공간과 어울려야 하지요. 철도길, 궤도와 같은 책()자를 금문과 갑골문으로 쓰고 안중근 의사의 명언[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을 낙관에 한자와 한글로 썼습니다. 책 두 글자를 한문으로 빽빽이 써두면 누구도 보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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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冊冊 2m×10m

 

Q. 선생님은 한자, 한글, 전각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계신데요. 특히나 갑골문, 금문 등 전서 작품에 애착이 있어 보입니다. 선생님의 최근 소식 중 광개토대왕비 서체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대형 작품화 하겠다는 출정식이 열린 기사를 접했습니다. 자세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 작품은 작년 7월 말에 작업을 끝내고 아직 공개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무려 5년 전 작품요청을 받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의뢰를 받았을 때 내 일생일대의 대작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여 마음먹고 준비하였습니다.

첫 구상은 한지, 우리 먹, 우리 붓으로 작품을 하려고 하였으나 이 조건을 갖추기 위한 재료 준비만으로 4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지체되며 일흔이 되기 전 작품을 끝내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재료준비가 원활하지 않아 우리의 재료를 갖추진 못하고 종이는 중국의 것, 먹은 일본, 붓은 우리의 붓으로 세팅을 마쳤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어느 날 문득 백두산 천지의 물로 먹을 갈아 글씨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작품을 부탁하신 분께 말씀드리니 순간 고민하시더니 20L의 물을 떠다 주셨습니다. 작품을 다 쓰고도 2L가 남아 잘 보관 중에 있습니다.

작업기간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주제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인 만큼 사찰에서 글씨를 쓰고 싶어 통도사를 찾았으나 공간이 여의치 않아 현재 작업실 밑에 100평 가량의 공간을 임대하여 작업하였지요. 글씨를 쓰는 동안 6명의 인력이 하루 종일 먹을 갈고 종이를 접고 잡아주는 등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3126자가 되는 부모은중경을 광개토대왕비의 서체로 완성하고 보니 128M라는 대형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전시할 공간도 쉽지는 않지만 전시장을 물색하는 중이고 책도 함께 발간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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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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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일부분

 

Q. 서예는 준비물만 갖추면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가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곤 합니다. 선생님은 평생 글씨를 써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활동을 하실 텐데요. 끈기 있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선생님만의 비법을 알 수 있을까요?

먹 냄새를 맡기를 샤넬 향수보다 좋아해야 하고 화선지를 펴면 가슴이 뛰어야 합니다. 스스로 즐기지 못하면 끝까지 갈 수가 없어요. 나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매일 글을 쓰고 매일 해야 할 작품이 있고, 늘 재미있고, 늘 설레는 마음, 흥미진진한 뛰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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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은 젊은 서예인 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예술가로 손꼽힙니다. 알고 계시는지요? 이 시대에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일단 내 스스로에게 작품을 할 때 질문합니다.

이 작품은 하석, 오로지 나만이 가능한가?

내리는 획과 점 하나에 50년이 있다면 믿겠냐고 묻곤 합니다. 이것은 구한자만이, 안목을 갖춘 사람만이 알아 볼 수 있는 눈을 갖춘 것이지요.

훗날 나는 내가 선생소리를 듣는 한 꼭 지키고자 하는 덕목이 있습니다.

 

첫째, 절대 치사하면 안 된다.

치사라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스승이라면 스승에 맞는 언행을 해야 합니다.

 

둘째, 학생과 선생과의 거리는 늘 똑같아야 한다.

선생은 학생과의 거리가 항상 일정해야 합니다. A와는 10m, B와는 20m, C와는 30m 이렇게 거리가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셋째. 선생이란 학생들의 의문을 풀어주어야 한다.

이 말은 학생보다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 가지가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학생보다 더 열심히 책가방 메고 공부하는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새로이 창간하는 글씨21’에 당부하고자 하는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젊은 창작자들에게 하는 조언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글씨21’은 기존의 종이 잡지사에게 큰 위협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역이 서로 다르므로 나름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요. 그러나 글씨21’의 창간은 시의(時宜)’, 즉 때에 적합합니다. IT시대에 대중과 빠르게 소통하고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 예상됩니다. 제 나름의 시간으로 계산해보면 15년은 해야 자리가 잡힙니다. 가까이 보지 말고 적어도 15년은 버틴다면 천천히 꾸준히전 세계의 영향력 있는 웹매거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젊은 창작자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내가 준비가 덜 된 것이라 여기십시오. 세상을 원망하지 말고 모든 책임을 나에게 두십시오. 그리고 큰 꿈을 가져야합니다. 내가 추사를 극복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달려들어야 합니다. 늘 역사를 의식하고 나의 현 주소를 파악하여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합니다. 서두르지 말고 꿈을 크게가지며 글씨에 내 인생을 투사해보겠다라는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문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합니다. 30년씩 하루에 3시간만 투자해보면 향후 내가 달라져 있을 테지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큰 꿈을 가지고 긴 시간 움츠려 들지 말고 꾸준히 가십시오! 세상이 나를 알아봐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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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大作)을 남긴 화가라야 비로소 대가(大家)라는 말이 있다. 장대하고 살아있는 듯 한 기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몰입과 고뇌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석 박원규는 흔들리지 않는 집념과 특유의 성실성으로 한국서단의 기념비적인 대작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글씨를 어떻게 쓸 것인가는 지극히 자신의 선택이자 취향이다. 한 점 한 획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는 하지 않는 작가의 정신은 궁극적으로 글씨예술이 추구하는 이상으로의 환원인 것이다. 서예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요즘이지만 품위 있으면서 이색적인 작가 하석 박원규를 서예인의 자부심으로 느끼길 바란다.

인터뷰 성은하 기자

 

 


9..gif예운대도지행야절禮運大道之行也節 2m70cm×7m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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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서학회(대만), 겸수회(한국) 서예연합전시 현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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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서학회(대만), 겸수회(한국) 서예연합전시 현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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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 박원규작가

 

略歷

사사

-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선생 문하 입문

- 독옹(獨翁) 이대목(李大木)선생 전각 사사

- 긍둔(肯遯) 송창(宋昌), 월당(月堂) 홍진표(洪震豹) 선생 한학 사사

- 현재는 지산(地山) 장재한(張在釬) 선생 문하 수학

 

학력

-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 배재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

 

수상

- 제1회 동아미술제에서 대상

- 2013년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그랑프리 수상

- 2016년 일중서예대상 수상

 

개인전

- 『何石 漢簡展(백악미술관, 88. 4. 44.13)

- 『何石 書展(조선일보미술관, 93. 4. 2 ~ 4. 16 )

- 『何石 書藝展(일민미술관, 98. 4. 14 ~4. 26)

- 『何石 百壽百福展(공평아트센터, 03. 6.18~7.1),

- 『何石 書藝展(한국미술관, 09. 1. 11~1. 27)

- 『字中天(북하우스 아트스페이스 · 갤러리 한길, 2010. 12. 10 ~ 2011. 2. 28)

- 『書藝三俠坡州大展(북하우스 아트스페이스 · 갤러리 한길, 2011. 12. 9 ~ 2012. 2. 29)

 

기획전

- 한국서예100년전 예술의전당

- 국제현대서예전 예술의전당

-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한국서예40대 작가전 예술의전당

- 동아미술제 수상작가 초대전 동아일보사

- 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

- 동아시아서예가4인전

      

저서

-『곽점초묘죽간 상/

-『중국고대금문의 이해

-『서주금문십팔품

-『서주금문정선33

-『박원규서예를말하다

 

작품집

-『癸亥集25권 발간

-『朴元圭作品集한길사

-『作品集字中天한길사

-『마왕퇴백서노자임서본馬王堆帛書老子書臨書本현 하버드대 도서관 소장

 

언론소개

-KBS ‘TV 명인전

-OBS 명불허전

-아리랑 TV 외 다수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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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속에 길어 올린 치열한 예술혼

- 하석何石 박원규朴元奎의 작품세계

장헌 김정환

 

자고이래로 대다수의 뛰어난 예술가들이나 서예가들은 각기 고유한 예술론과 서예론을, 그것이 이론의 형태이든 창작의 형태이든 간에, 개진하고 있다. 이러한 자의식이야말로 그들의 예술을 한 단계 진전시키고 동시에 한 사람의 예술가를 고유한 자기 세계를 지닌 예술가로 만드는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이며 영혼의 창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타계한 세계적인 사진가인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사진은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하석何石 박원규朴元圭글씨는 쓰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본디 서예는 정해진 법이 없다(書無定法)’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서예란 법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운필을 통해 스스로 체득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서예술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운필의 요체는 결국 시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창작은 예술가 개인이 표현한 개성화 행위이다. 창작해낸 작품의 아름다움은 예술가의 개성과 기법적 특성을 포함하고 있다. 석도石濤나는 나의 법이 있다(我有我法)”고 하였고, 제백석齊白石나는 나의 법을 행해야 하고, 붓을 댈 때는 나만의 법이 있어야 한다(要我行我道, 下筆要我有我法)”라고 하였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그들 작품에서 반영하는 정신세계, 즉 풍격은 모두 다르다. 하석 박원규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생기(生氣)’, 즉 살아 있는 기운이다. 그가 작품을 통해서 뿜어내는 기운은 감상자의 다양한 심미욕구를 만족시켜준다. 란 생명력의 최소단위로서의 호흡이다. 는 동양미학에서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철학적 측면에서 기는 만물과 우주의 생생불식生生不息의 기를 가리킨다. 둘째, 작가가 서화를 창작할 때 붓을 움직이는 기를 가리킨다. 셋째, 작품에 존재하는 내재적인 정신의 기질을 가리킨다. 기가 이미 사물의 물질현상과 정신현상을 포함한 이상, 기는 우주와 생명의 기원일 뿐만 아니라 예술과 미의 기원이기도 한 것이다. 동양의 고대 예술은 모두 기와 정신의 관계에 매우 관심이 있었으며, 예술가는 평소에 정신과 기를 조화롭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마음이 평온하고 기를 온화하게 하고 정신을 상쾌하게 유지할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생활을 감수하고 체험하고 창작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은 동양 미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이며, 최고의 미적범주이다. 서화예술 가운데 운은 필획, 선의 움직임, 질삽, 마르고 습윤함 등의 변화가 시 같은 운미韻味를 가지는 것과 감상자로 하여금 끝없이 마음이 이끌리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운은 느낄 수 있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어서 예술적 매력을 부르는 별칭 중의 하나가 되었다. 동양 예술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면 운의 의의를 분명하게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운은 철저히 이성을 떠난 것이며, 이성은 이미 직각적 감각 가운데 융합되었기 때문에 운의 매력은 직접적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북송대의 서예가 황정견黃庭堅서화는 운을 위주로 한다(書畵以韻爲主)”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기와 운은 합쳐져서 기운이 된다. 기운은 물상의 화면이 포함한 생기, 운율 등의 총체적 드러남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물상 자체의 생기정신 등을 가리키는 것 이외에도 서화가가 대자연의 생동하는 형상에 대한 미적 감수 및 그로부터 형성된 작가 자신의 정감과 사상 등으로 발전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이유로 사혁謝赫은 육법론六法論을 말하는 가운데 기운氣韻과 생동生動을 연결하여 하나의 척도를 마련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