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Critique]

2020-08-26
이완 7회 개인전 <리얼리즘 서예, 익숙함의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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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리얼리즘 서예, 익숙함의 낯선

 

20세기 현대미술에서 평면의 회화형식을 뛰어넘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형식과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일상의 오브제를 작가의 해석에 의해 예술로 재탄생시킨다. 사유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개념 미술은 언어를 재료로 한다. 그래서 아이디어와 과정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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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하다다 · 158x19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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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 70x70cm


이완의 일곱 번째 개인전 쓸모없는 아름다움은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는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그는 <개 조심>, <주차금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일방통행>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가진다. <뒤집어진 양말>은 지나치게 일상적인 나머지 왜곡 없는 일상 그 자체를 반영한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일상적인 언어일수록 작품을 이해하는 시간을 단축하고, 일상과 예술의 거리를 좁힌다. 또한, 유머가 있는 일상의 언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개념 미술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동시에 소통의 길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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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아름다움 · 70x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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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진 양말 · 70x70cm


이완은 문장을 구성하는 어절을 엉뚱하게 끊고 행간과 자간의 자유로운 구성을 통해 익숙함 속에 낯섦을 의도한다. 통상적으로 글을 읽을 때는 띄어쓰기를 단위로 하는데 그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한글과 일상의 언어에 변주를 시도하는 것이다. ‘테두리 없는 고요 쓸모없는 아름다움’ 15글자 짧은 문구를 읽는 것도 호흡이 어색하기만 하다. 언어를 문법에서 벗어나게 하는 순간 익숙함과 낯섦이 동반되면서 작품은 생명력을 얻는다. 그의 조형 감각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흥미를 느끼게 한다. <하이하다다>는 언어의 일차원적인 의미 전달에 그치지 않고 낱글자를 자유롭게 배치하여 문자가 문자로만 존재하도록 한다. 그의 작품에서 대중성과 신선함을 찾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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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ㅋㅋ · 146x203cm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리얼리즘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포함한다. 물질을 우선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 소외 현상은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이다. 화려함 속에 가려진 쓸모없는 존재의 물음에 답을 내린다. 권정생 작가의 어린이 동화강아지 똥이 있다. 시골길 돌담 구석에 홀로 남겨진 강아지 똥은 조그만 흙덩이와 병아리 가족에게 외면받지만 결국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 꽃을 피워준다. 쓸모없음은 사물이 내재하는 속성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에게나 쓸모 있는 것이 아닌 아무도 찾지 않는 쓸모없음의 가치를 알려주고자 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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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01 · 70x70cm


이러한 이완의 작품세계는 서예작품의 명제로 고전을 차용하거나 필법을 중요시하는 전통 한문 서예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다. 그는 한자(漢字)를 써도 <外部人出入禁止(외부인출입금지)>와 같이 쉽고 재미있는 일상의 언어를 선택한다.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며 작가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조선 후기 남공철(南公轍, 1760-1840)만약 옛사람, 옛사람하고 소리 지르며 아득히 먼 것에만 힘써서 현실성이 적게 되면, 후세 사람들에게 그 글을 읽게 하더라도 그 사람과 그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지금의 시대에 일상의 언어를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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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作


예술 작품이 그냥탄생한 것은 없다. 이완의 작품 역시 하나의 글자를 화면 가득 크게 쓰는 일자서(一字書) 형식이 있고, 필법과 장법에 얽매이지 않는 시도는 다른 많은 작가에게도 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창조는 기존의 것을 비틀면서 이뤄진다. 이완은 있는 것을 진실의 눈으로 발견하고, 그것을 익숙한 일상의 언어로 소통하고, 여기에 조형을 재구성한다. 특히 그는 남들이 찾지 않는 일상의 언어를 작품으로 선보이기까지 많이 고민하고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리얼리즘 서예는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 그 자체가 예술이 된다. 울림을 주는 작품은 가볍지 않다. 쓸모없는 것들이 사실은 쓸모없지 않다는 존재론적 사유와 익숙함을 낯설게 비트는 창의성은 작품의 가치를 달리하며, <뒤집어진 양말>을 당당히 예술작품으로 완성한다.

 


2020. 8. 26
더아트21(글씨21) 큐레이터 최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