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21

글씨와 놀다. 매거진 '글씨 21'

서예·캘리그라피

[Interview]

2021-03-30
필묵 속에서 자유를 찾다

()일중선생기념사업회 우수작가 초대전≫  김성덕 서전 인터뷰






지난 318일부터 24일까지 백악미술관에서 ()일중선생기념사업회 우수작가 초대전신산(信山) 김성덕 서전(書展)이 열렸다. ()일중선생기념사업회가 2014년부터 주관하고 있는 우수작가 초대전은 현재 서예계에서 주목받는 중견작가의 전시를 개최해 새롭게 변모해가는 한국 서예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데 그 취지가 있다.

 

전시 개최에 앞서 글씨21에서는 신산 김성덕 선생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번 전시와 김성덕 선생의 필묵에 관한 담백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글로 옮긴다.

 





필묵 속에서 자유를 찾다

서예가 김성덕 인터뷰

 

 

김성덕: 서예가

성인근: 경기대학교 교수

 

: 2021. 2. 26

: 글씨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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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318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김성덕 작가의 백악미술관 초대전에 앞서 전시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서예가 대중에게서 멀어지는 현시점에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중에게 친절하게 얘기해줄 수 있는 계기로써의 의미도 있습니다. 김성덕 작가님은 한국에서 대학 서예가 시행된 이른 세대의 그룹들 가운데서도 서예의 본질을 순정하게 추구하고 계신 몇 안 되는 작가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매우 많은 시간을 작업에 몰두하고 계신 줄 알고 있는데 말문을 여는 차원에서 선생님의 작업 외의 시간이 궁금해졌습니다. 서예 외의 시간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보내시는지요?

 

: 일부러 특별한 다른 취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서예 외에는 주로 산책을 합니다. 그렇게 하루에 2-3시간씩 늘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 작업과 작업 외의 시간을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장치로 산책을 활용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 ,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산책하며 떠오를 때가 있고, 걷다 보면 작품에 대한 구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건강차원에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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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 어떤 분들은 생각이란 발에 달려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작업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산책을 즐긴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전시가 백악미술관에서의 초대전인데, 백악미술관에서 서예가를 초대해서 지원하는 제도가 언제부터 어떤 계획으로 실시되고 있는지 말씀해주시죠.

 

: 저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일중서예대상과 우수작가상으로 나누어 시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1년에 한 번씩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2년에 한 번씩 하고 있어요. 우연히 선정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발작가에게 전시장 제공과 전시비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 서예가들에게 흔치 않는 기회제공의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가 개인전으로서 몇 번째고 현재까지 작품의 방향, 성향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얘기해주시죠.


: 이번이 두 번째고 10년 만에 하는 전시입니다. 우수작가상 선정 이전에 이 전시를 기획했는데 우연히 상과 맞아떨어져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방향성과 변화 양상... 글쎄요, 별로 변화가 없더라고요(웃음). 변화하고 싶은데 잘 변하질 않습니다. 못할 것 같으니까 깊이 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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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 김성덕 · 春風.秋水 · 20×135cm×2 


: . 변화라는 게 어떤 외적인 변화, 형식적인 변화도 있겠지만, 선생님이 방금 말씀 하셨듯이 지킬 건 지키면서 그 안에서 깊이를 더해가는 방향으로 진행하여 왔다고 이해됩니다. 며칠 전 선생님께서 이번 전시에 출품하실 작품 이미지를 보내주셔서 어제 하루 종일 나름 행복하게 보고 왔습니다. 주로 한문서예가 대부분이며 한글서예가 두 점 정도 포함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이한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보통 우리가 한시를 쓰면 한자로 시 원문을 쓰고 협서를 쓰는 방식인데, ‘춘풍대아능용물, 추수문장불염진을 한글로 쓰고 그 옆에 협서로 한문의 원문을 쓰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발상의 전환인 셈입니다.

 

: 전에도 이런 작품을 한두 번 했었는데, 한시 가운데 뜻이 명쾌하게 드러난 문장만 했습니다. (: , 한글로 봐도 이해가 되는..) , 그 정도 된 작품을 했기 때문에 한글이 주가 되고 한문이 부수적으로 된 것도 재밌을 것 같았어요. 형식을 바꿔서 운치 있게 해보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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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 김성덕 · 趙憲 雙溪石門詩 · 40×180cm


: 이번 전시는 한문서예 위주이고 한글서예는 두 점 정도 출품하셨는데, 한글은 사실 우리글이고 우리말이기 때문에 서예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한글서예의 미래적인 가능성, 가치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 이번 작품은 한문 위주로 썼었는데, 한글서예도 도전해볼만한 좋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특히 자기감정을 그대로 표출할 수 있기는 장점이 있죠. 예를 들어서 한글에 초서를 가미해서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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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 김성덕 · 춘향가 중에서 · 90×150cm


: 최근에 선생님 말씀대로 한글에 행초서의 흐름을 가미해서 쓰는 작가들도 있더라고요. 서예가들이 한글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게 연구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가 조금 더 형성되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한문서예에 대한 본격적인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선 서예에서는 획질(劃質)을 중요시하죠. 어떤 사람 글씨에서는 나무와 같은 질감이 느껴지고도 하고, 어떤 사람의 글씨는 돌같이 파삭파삭하면서도 단단한, 어떤 사람의 획에서는 유려한 물 같은 성질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건 개인적인 성향과 그 작가의 성정이 자연스레 묻어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작품을 보면서 느껴지는 획의 질감은 금속(金屬)에서 나타나는 어떤 기운을 개인적으로 느꼈습니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쇠맛같은 느낌입니다. ‘()’이라고 하는 것은 붓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평소 용필(用筆)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획의 성질이 기운생동함도 좋긴 한데, 사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부드러움입니다.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저는 그게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스스로 생각해도 딱딱한 느낌이 들어요. (: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싶다..) , 중국 현대작가 심붕(沈鵬, 1931~ )의 젊었을 적 작품을 보면 부드러우면서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강인함이 있더라고요. 그런 작품을 하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가고자하는 방향입니다. 저는 글씨 쓰는 자세가 다른 사람들과 약간 다릅니다. 바닥을 선호하는 편인데 평상시에는 일주일에 하루이틀만 바닥에서 씁니다. 힘들어서(웃음). 30대부터 바닥에서 쓰다 보니 무릎이 아파서 서예를 더 하려면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 싶어서 주로 책상에서 쓰고 바닥은 이틀정도 씁니다.

 

: 바닥과 책상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 시야가 넓습니다. 그리고 흐름이 깨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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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의 변화는 어떨까요?

 

: 선의 변화도 많죠. 물론 현완(懸腕)으로 쓰면 비슷해 보일 수는 있어요. 예를 들어 벼루를 두 개 놓고, 혹은 대작하면 세 개 놓고, 위치에 따라 먹을 묻혀가면서.. 거기서 오는 자유스러움이 좋습니다.

 

: 조금 더 유연해지고 싶다, 아직은 딱딱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부분이 한국 서예와 중국 서예의 특성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중국서예는 유려하고 부드럽지만 골기(骨氣)가 부족해 보이기도 하며, 현대의 한국서예는 전예(篆隷) 중심, 특히 중봉을 중요시 여기면서 단단하게 써오는 흐름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런 국가적 경향성이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 맞습니다. 그리고 도구에서 오는 차이도 있고요. 저는 이번 작품을 붓 두 자루로 했습니다. 하나는 16cm 되는 긴 장봉과 하나는 무심필 이렇게 두 가지로 했습니다. 요즘은 글씨의 유연함과 유려함을 위해 행초 위주로 임서하고 있습니다. (: 주로 어떤 자료를?) 요즘은 서위(徐渭, 1521~1593)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 서위가 갖는 매력이 뭘까요?) 제가 보지 못했던 자연스러움이 있더라고요. 중봉에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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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방향으로 나가고 싶다는 획에 대한 방향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서예에서는 획이 중요하지만 먹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도 중요할 것 같고, 전체 화면에서 공간을 어떻게 구상할 것인가의 문제도 작가에겐 큰 고민일 것 같은데..

 

: 저는 공간 구성을 할 때 첫 줄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첫 줄을 써놓고 그 다음부터는 거기에 맞춰서 공간을 잡아나갑니다. 예를 들어서 장단(長短), 대소(大小), 비수(肥瘦) 등의 관계가 첫 자를 시작함과 동시에 기준이 되고 이후에 변화합니다.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고 흐트러지기도 하고.. 보통 작품은 처음 썼던 것이 가장 자연스럽더라고요. 임서는 많이 하되 창작할 때는 한 번으로 끝내야 해요.

 

: 그런 부분이 서예라는 장르가 가진 특징이 아닐까 싶네요. 회화 같은 경우에는 고민도 많이 하고 조금 더 고치고 계산해 나가기도 하지만, 서예는 에너지를 쌓아서 한 번에 만들어 내는 일회적인 것, 그게 서예가 가지는 특징이자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저는 집자 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반면, 작품 할 때는 자유롭고 유연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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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 김성덕 · 毛公鼎臨 · 97×180cm


: 이번 출품작이 전서, 예서, 행초를 포함한 초서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의 서체씩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 우선 선생님 전서 작품의 경향은 모공정을 임서한 작품도 하나 있었고, 대개 금문 위주입니다. 앞서 선생님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는 선의 질감을 금속의 맛으로 말씀드렸는데, 금문 학습의 영향이 선생님 획 안에 녹아들어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15년 전까지만 해도 금문 임서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따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에 제가 금문을 좋아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예전에는 전서를 많이 쓰셨던 醉墨軒(취묵헌), 소헌(紹軒), 하석(何石) 선생님의 글씨를 많이 따라 썼어요. 임서보다는 차용이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금문을 잘 쓰려면 행초를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 선생님 금문에서 행기(行氣)라고 하나요, 유동적인 흐름이 많이 노출되는 것 같았습니다.

 

: 금문을 쓸 때 행기를 넣지 않으면 너무 박제화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금문을 쓰되 행초 느낌으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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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 김성덕 · 晏子句 · 33×175cm


: 모공정 임서작품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역입(逆入)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선을 그어가는, 그러면서 금문의 조형들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으로 임서하고 계시더라고요.

 

: 역입을 하면 얽매여 딱딱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금문 쓸 때만큼은 좌에서 우로도 쓰고, 우에서 좌로도 쓰고, 밑에서 위로도 쓰고 그럽니다. 글자 한 자 한 자에서요.

 

: 한자의 필순(筆順)이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가 기본적인 건데 솔직히 그 때 그 사람들이 다 지켜서 썼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저는 글씨를 쓰는 사람마다 조형을 만드는 데 편리한대로 썼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거든요.

 

: 자연스러움도 좋지만 어느 정도 절제력은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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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 김성덕 · 隸書 四首 · 45×200cm×4


: 그렇죠. 자유로움과 법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여기에서 현재적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예서 얘기로 넘어갈게요. 선생님 예서는 한비(漢碑)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한나라 민간에서 썼던 간독(簡牘) 자료들의 영향이 커 보입니다. 금문에서도 그렇고 거기에 유연한 흐름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계신데, 선생님 예서가 변화되어온 과정을 말씀해 주시죠.

 

: 예기비(禮器碑), 사신비(史晨碑) 위주로 임서하다가 한국에서 목간이 유행했을 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지금은 작품 할 때 따로 경계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한예를 집자해서 목간처럼 쓰기도 했습니다. 청대의 이병수(伊秉綬), 진홍수(陳鴻壽)의 글씨에도 좋은 글꼴이 있거든요. 따로 특정 자료를 고집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나올 수 있도록 작업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추사 글씨를 보다가 청대 글씨를 다시 보니까 이병수, 진홍수의 글꼴과 거의 비슷하더라고요. 그것을 추사는 추사스타일로 발전시켰던 거죠. 오히려 이병수, 진홍수의 예서가 순수하게 쓴 작품들이 있거든요. 거기에 내 행기를 넣고 나만의 글꼴을 넣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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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 , 어떤 서체를 보던 행기가 전반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행기 얘기가 나왔으니까 행서, 초서 얘기를 할게요. 선생님 작품에서 느껴지는 행서는 주로 명말청초의 여러 작가들, 특히 부산(傅山)이나 왕탁(王鐸), 서위(徐渭) 등의 매우 자유분방하면서도 낭만적인 경향이 느껴집니다. 선생님이 추구하시는 초서, 행초의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 처음에는 왕희지(王羲之), 안진경(顏眞卿) 글씨를 많이 썼고, 나중에 왕탁과 부산 등을 썼습니다. 계속 하다 보니 왕탁보다는 부산이 맞는 것 같았어요. 아직까지는 변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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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 김성덕 · 百尺竿頭進一步 · 30×41cm


: 물론 지금의 작품들은 큰 글자들로 썼기 때문에 부산의 대자초서(大字草書) 느낌이 많이 나는데, 그 하나하나의 글꼴들이나 흐름들을 쫓아가보면 부산의 천자문과 같은 소초(小草)의 영향이 저한테는 느껴지더라고요.

 

: 부산의 천자문은 써본 적이 없는데, 제가 부산을 썼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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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 김성덕 · 朱熹 觀書有感 · 90×150cm


: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 가운데 유독 눈에 확 들어온 작품이 있었는데, 왕유(王維)의 시 적우망천장작(積雨輞川莊作)’을 광초(狂草)로 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매우 아슬아슬하면서도 호쾌한 느낌이 듭니다. 작품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내 의도와 달리 붓이 나를 끌고 갔다고 할까요, 그런 경계에서 나온 작품이 아닌가 할 정도로 매우 인상 깊게 본 작품입니다.

 

: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썼던 글씨입니다. 이건 초안이라고 하고 욕심 없이 썼던 거 같아요. 쓰고 나서 나중에 보니까, 이번 출품작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에요, 사실 이 작품을 성박사님이 알아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도 이 작품이 제일 좋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이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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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우리가 득의작(得意作)’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왕희지의 난정서가 왜 천하제일의 행서냐, 그 당시의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입되었기 때문이고. 안진경의 제질문고도 명품인 이유가 당시의 감정이 녹아있기 때문이며, 손과정도 서예가 정말 잘 될 때는 우연히 마음이 동했을 때였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작가의 감성이 자연스럽게 풀어져 나왔을 때, 그때가 득의작이 나오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오늘은 붓이 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거기서 조금 오버하면 금방 티가 나거든요. 더 깊이 생각하면 오자를 내거나 글씨를 빼먹는데 그런 게 안생기고 괜찮은데?’ 이 정도에서 끝까지 갔던 것 같아요. 5분 정도 손에 힘 안주고 쭉 써 내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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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 김성덕 · 陶潛 讀山海經 · 95×200cm    


: 아무튼 정말 좋은 작품 만들고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눈이 정말 시원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전각 분야에서도 많은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전각을 따로 출품하시지 않으셨죠? (: , 따로 하진 않았습니다.) 평소 전각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 전각은 문자예술이면서도 건축적인 측면, 인문학적 측면이 포함된 종합예술이잖아요. 전각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조형감각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또한 전각의 7할 정도는 서예에서 나오지 않나 생각하고 있거든요. 옛날사람들이 그런 얘길 했잖아요. 서예 하는 사람은 전각가가 될 필요가 없지만 전각가는 서예가가 되어야한다고. 그 말에 동의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작가 스스로 전각을 새겨 작품에 찍을 때 안목이 틔는 것 같아요. 전각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눈이 떠지는 느낌을 받아요.

 

: 그렇죠, 한 치의 공간에 천지를 담는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그 작은 공간에 글자 몇 자를 완성도 있게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간에 대한 학습, 감각이 늘어나는 것도 분명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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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 김성덕 · 杜甫 絶句 · 90×150cm


: 이번 전시의 출품작 가운데 진계유(陳繼儒)의 시구를 대련으로 쓴 작품 오늘 나눈 대화가 10년의 독서보다 낫다내용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저도 오늘의 대화에서 많은 부분을 배우고 영감을 얻었습니다. 서예라는 분야의 고유성, 그리고 근본에 대해서 매우 치밀하고 깊게 파고들면서도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 앞으로 작업 방향, 꿈꾸고 계시는 작품 세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행초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 한학도 더 했으면 좋겠고요. 이번 작품하면서 관지 쓸 때 제 감정을 표현한 것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행초 공부를 많이 하고, 더 진지하고 깊이 공부하고 싶어요. 저는 현대적인 것은 잘 못하니까 서예 안에서 약간의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런 정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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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 끝으로 하실 말씀 있으시면.

 

: 학정(鶴亭) 이돈흥(李敦興) 선생님께서 돌아가신지 1년 조금 더 됐거든요. 선생님 계실 때 이 전시가 잡혔어요. 너무 허전하지만 지금도 옆에 계신 것처럼 느껴져요.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서예가의 정신, 서예가의 길을 앞으로 가슴 속 깊이 새기면서, 이번 작품을 선생님 영전에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2021. 3. 30
글씨21 편집실



<전시정보>

()일중선생기념사업회 우수작가 초대전

신산 김성덕 서전

전시기간 : 2021. 3. 18(목) ~ 3. 24(수)

전시장소 : 백악미술관 1, 2층

주관 : ()일중선생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