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 작가의 思생활, 김영삼
“세월을 담을 수 있는자연의 모습을 보고 나의 붓질로 표현한다.”문인화라는 시를 그리는 화가 우송헌 김영삼 현시대의 문인화는 더 이상 옛날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옛날의 것은 그저 옛날의 문인화 일뿐, 현대에는 현시대성을 반영한 작품을 해야 한다. 또한 예술이라는 것은 함께 이해하고, 공감해야한다. 늘 현시대에 맞는 작업을 모색하고 끊임없이 창작하는 우송헌 김영삼을 만나보았다. ...>>인터뷰 전문 보기(클릭)<<
[Column]
성인근의 글씨를 읽다
“할 말은 많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김정희의 《자화상》- 한 노인이 종이 앞에 앉았다가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옮겨놓았다. 누군가의 주문에 의해 그린 그림은 아닐 터이다. 나는 지금 160년도 더 된 그의 자화상 앞에 앉아 그의 붓끝 하나하나를 따라가 본다. 김정희, 《자제소조(自題小照)》 32×23.5㎝. 선문대학교박물관 의관과 격식을 갖춘 조선의 여타 초상화와 달리 평상복 차림의 소박한 모습이다. 왼쪽 어깨가 기우뚱하게 올라간 주인공의 상반신이 중앙 하단에 위치해 있다. 그림은 가는 먹선 위주로, 특히 주름과 수염을 꼼꼼하게 그렸다. 화면 속 노인은 얼핏 보아 육십은 훌쩍 넘어 보이며, 마른 체구에 초췌한 모습으로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다. 머리카락과 구레나룻, 수염조차 정돈이 안 되었고, 주름은 살아온 세월만큼 움푹 움푹 파였다. 야무지게 닫은 입술엔 ‘할 말은 많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쉽게 열 것 같지 않다.화면 속 주인공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추사 김정희(1786~1856, 정조 10~철종 7)다. 그는 경사(經史)는 물론 불교, 금석․고증, 서예, 회화 등 전방위의 영역에서 독보적 자취를 남긴 조선 말기의 문인이다. 조선시대에 초상화를 남긴 사람은 국왕으로부터 문무관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으며, 주인공의 신분과 공로를 한껏 드러내기 위한 장치들도 여럿 구사했다. 그러나 조선의 초상화 가운데서도 이토록 담박하면서도 전신사조(傳神寫照)의 화론을 내밀화한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중 자화상을 남긴 인물로 공재 윤두서, 표암 강세황 등이 떠오르지만 그들과 다른 추사만의 체취가 감지된다.화면의 우측 상단에는 다른 종이에 써서 삐딱하게 오려 붙인 그의 화상찬(畵像讚)이 적혀 있다. 이 글에는 화면 속의 자신이 왜 그렇게 입을 야무지게 닫고 있는지에 대한 입장이 적혀 있다. 자제부분(自題部分) 謂是我亦可, 謂非我亦可. 是我亦我, 非我亦我. 是非之間, 無以謂我. 帝珠重重, 誰能執相於大摩尼中. 呵. 果老自題. (이 사람을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고 해도 좋다. 나라고 해도 나이고, 내가 아니라 해도 역시 나다. 시비를 가리는 사이에 나라고 할 수 없게 된다. 제석천의 구슬이 주렁주렁한데, 뉘라서 큰 여의주 속에서 실상을 잡아낼까? 껄껄껄... 과노(果老) 스스로 쓰다.) 문장 끝의 ‘과노(果老)’는 ‘과천(果川) 노인’이란 의미의 자호(自號)로, 그가 북청 유배에서 풀려나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할 때인 1852년(철종 3), 즉 67세 이후의 초상임을 암시한다. 이 화상찬은 그의 문집 『완당선생전집』에 「자제소조(自題小照)」의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생략한 글자와 일부 다른 글자가 있으나 전체적 맥락 차이는 없다.김정희는 화상찬에서 자신의 초상에 담겨진 내면의 실상을 보아야지, 겉모습이 닮았는지의 시비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설파했다. 닮고 닮지 않고의 시비를 벗어난 존재의 실상(實相)이 무엇인지 아는 까닭에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고 해도 좋다.’며 껄껄껄 웃는 여유까지 보였다.그렇다면 그가 남긴 실상이 아닌, 어쩌면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이 자화상의 실체는 무엇인가? 여기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향하는 저쪽의 달이 있다. 그러나 달을 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자신이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이 아니면 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누가 큰 여의주 속에서 실상을 잡아낼까?’라며 껄껄껄 웃는 선종풍(禪宗風)의 문자로 깨우침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실상은 문자에 의해 온전히 표현할 수 없지만, 문자를 쓰지 않고서 남에게 전할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성인근 본지 편집주간
[Interview]
이 작가의 思생활, 백영일
“끊임없는 연구와 집념 끝에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한국 전각의 돌파구를 ‘한글’에서 찾아낸 송하 백영일 매서운 한파가 한 걸음 물러나고 봄볕이 비치기 시작할 무렵 서예에 대한 순정이 넘쳐나는 백영일 선생을 만났다. 그의 2015년 개인전 도록 서문에서 박기섭 시인은 “송하는 필묵에 온전히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글씨의 자기화를 꾀한다. 그가 쓴 글씨에서 그를 보고, 그 글씨의 체세에서 그의 정신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라고 평하였다. 서예, 전각, 문인화까지 광폭의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현재 한글 전각에 매료되어 있다. 백영일 선생의 전각에 대해 집중하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 전문 보기(클릭)<<
[Interview]
이 작가의 思생활, 박원규
한국서단의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하석 박원규- 먹 냄새 맡기를 샤넬 향수보다좋아해야 하고 화선지를 펴면 가슴이 뛰어야 한다. 서예는 손가락 아래에서 만물을 집약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상위 예술의 경지이다. 막힘없는 붓놀림으로 예스러우면서도 세련된 기량을 선보이며 자신의 뜻을 획에 발현시켜 살아 움직이는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하석 박원규를 만나보았다....>>인터뷰 전문 보기(클릭)<<
[News]
현충일 추념 특별기획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의 말현충일 추념 특별기획전 1919년 오라니장터 등 김포지역에서 일어났던 3.1독립만세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김포독립운동기념관에서 제62회 현충일을 맞이하여 캘리그라피 특별 기획전이 열린다.김포독립운동기념관 전경이번 추념 특별기획전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의 어록을 25점의 글씨로 풀어낸다. 도마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유관순 열사, 도산 안창호 의사, 윤동주 시인, 만해 한용운 선생 등의 귀중한 말을 글씨로 옮겨 쓰면서 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느낄 수 있다. 현충일추념 특별기획전_1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귀중한 현충일을 맞이하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캘리그라피 전시를 통해 경건한 마음으로 의미있는 6월을 맞이하길 바란다.글씨21 편집실자료제공 김포독립운동기념관 김포독립운동기념관[현충일 추념 특별기획전] 전시기간 : 2017.6.1~6.15위치 :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양곡2로30번길 46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 전화 : (031)996-6270홈페이지 : http://1931gimpo.fgy.or.kr
[Interview]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적절히 이뤄진 공간 \'담원서예\'
[Column]
박선영의 <캘리그래피 천일야화>03
이 캘리그래피는 어디에서 왔는가?오늘은 놓치기 쉬운 캘리그래피의 저작권 인식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온라인에 게시물을 작성할 때 흔히 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출처를 빠뜨리거나 부정확하게 쓰는 것이다.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고 사용한다고 해도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창작자의 성명을 넣어줘야 하는데 이를 저작권자(창작자)의 성명표시권이라고 한다. 성명표시권은 저작자 자신이 그 저작물의 창작자임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로 우리가 현재 온라인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캘리그래피 작품들은 저작권자의 성명표시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온라인상의 재인용과 성명표시권뿐 아니라 더욱 심각한 것은 캘리그래피의 저작권이 보호받지 못한 채 불법적 사용과 도용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는 현상일 것이다. 일부 캘리그래퍼들은 불법 도용을 우려해 자신의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고해상도의 대용량 파일은 올리지 않거나, 워터마크를 표시해 올리기도 한다. 이런 방책이 나온 것은 그들의 피해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저작권은 저작물의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며, 온라인을 포함해서 발표 시점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원작자가 저작권을 가진다. 작가뿐 아니라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이라 하더라도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그것은 창작물에 대해 창작자가 취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다. 하물며 전문 작가의 노고가 담긴 작품이 합당한 저작권을 통해 보호받아야 함은 물론이다.필자는 캘리그래피 뿐만 아니라 창작물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캘리그래피는 작가의 고뇌가 담긴 엄연한 개인의 창작물이고, 디자인의 부요소가 아닌 회화나 문학, 음악 작품처럼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장르라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울러, 작가도 저작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우리나라 최초의 글자꼴 저작권 소송은? 1)영화 <축제>(1996) 포스터 _캘리그래피 여태명2) 여태명 작 \'춘향전\' 일부(동아일보 1997) 1996년 개봉작인 영화 <축제> 포스터는 글자꼴 도용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최초의 글자꼴 저작권 소송을 일으키기도 했다. 개인의 글자꼴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처음으로 인정받은 판례로 사법연수원 판례집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당시 영화 <축제>의 제작사인 태흥영화사가 여태명 교수의 작품을 포스터 제목에 무단으로 도용했는데, 결국 법원으로부터 무단 도용한 글자당 1천만 원씩, 총 2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또 법원은 소설책 <축제>의 제목에 여태명 교수의 서체를 도용한 출판사에도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문제의 서체는 여태명 교수가 1994년 5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한국청년작가초대전에 출품한 ‘춘향가’ 속에 들어 있던 창작 서체 중 일부였다.사건의 시초가 된 연원은 이렇다. 태흥영화사 측이 영화 <축제>의 포스터 제작을 디자인 회사에 의뢰했고, 이 디자인 회사는 한국청년작가초대전 도록에 실린 여태명 교수의 서체를 무단 도용해 포스터의 타이틀을 제작한 것이다. 지적 재산권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여태명 교수는 도용 사실을 확인한 뒤, 영화사에 시정을 요구했음에도 조치가 취해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고 한다. 당시 법원 판결을 살펴보면, 글씨체는 작가의 독창적 노력의 산물로 지적 재산권을 가지는 엄연한 창작물이며 영화사 측이 이를 무단 도용함으로써 작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밝히고 있다.+2002 한일 월드컵, 붉은악마, 그리고 캘리그래퍼3-1) 붉은악마 티셔츠 \'Be the Reds\'(2002) _캘리그래피 박용철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붉은색 티셔츠 역시 저작권 분쟁에 휘말렸다. 티셔츠에 새겨진 ‘Be the Reds’라는 문구 때문이다. 응원 열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축구팀 응원단 붉은악마가 제작한 ‘Be the Reds’ 티셔츠는 월드컵 기간 동안 2,500만 장이 판매되며 그해 최대 히트 상품이 되었다. 일명 ‘짝퉁’ 티셔츠도 길거리 좌판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월드컵 막바지에는 이 옷을 입지 않고 응원하는 것이 어색하게 보일 정도였다. 티셔츠 판매가 절정으로 치솟았던 2002년 6월, ‘Be the Reds’ 문구를 쓴 디자이너 박용철은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이 문구의 글씨체 디자인을 등록했다. 이와 함께 붉은악마의 광고 대행사였던 (주)토피안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3-2) 2002년 붉은악마의 ‘Be the Reds’ 로고 _캘리그래피 박용철(주)토피안은 시안료 200만 원으로 저작권을 샀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 돈이 양도의 대가로 판단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박용철의 손을 들어주었다. 붉은악마가 비상업적 단체이기에 상표권 출원자를 자신들이 아닌 (주)토피안으로 했음에도, 디자인의 저작권은 디자이너 본인에게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당시 법원은 “문구의 글자 중 ‘R’은 ‘12번째 선수가 되자’는 뜻에서 숫자 12를 본 떠 만들었고 첫 글자인 ‘R’자와 마지막 글자인 ‘S’의 끝이 만나도록 디자인한 것도 성적과 상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응원하자는 뜻으로 했다”는 박용철의 주장을 받아들여 글씨체나 색상 등에 저작권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저작권을 양도한다는 계약이 없는 한, 소액의 시안료를 받았다 할지라도 디자인에 대한 권리는 창작자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월드컵이 폐막하고 한참 뒤에 나온 판결이다. 공식 제작업체인 붉은악마 못지않게 짭짤한 수입을 거뒀던 짝퉁 제작업체와 길거리 좌판은 자취를 감춘 이후였다. 이들로부터 보상을 받을 길은 요원해진 것이다. +거침없는 캘리그래피 짜깁기4) 영화 <각설탕>(2006) _제작 싸이더스FNH5) 드라마 <뉴하트>(2007) _제작 JS픽쳐스, 편성 MBC영화 <각설탕>과 의학 드라마 <뉴하트>의 제목을 비교해보면 어딘가 닮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뉴하트>의 제목이 <각설탕>의 제목에 사용된 캘리그래피를 이용하여 짜깁기한 것으로 보인다. 제작연도도 <각설탕>이 앞서고, <뉴하트>에서 \'뉴\'의 ‘ㅠ’ 와 \'트\'의 ‘ㅡ’ 가로선은 같은 선으로 두 번 반복되어 나오니 짜깁기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두 작품의 디자이너가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으나, 동일 디자이너가 이전의 자료를 가지고 다시 작업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신이 썼다면 다시 쓸 일이지 짜깁기를 하지는 않았을 터이고, 답은 <뉴하트>의 드라마타이틀을 만든 사람이 쥐고 있을 것이다.더 자세히 살펴보자. <각설탕>의 ‘ㄱ’은 <뉴하트>의 ‘ㄴ’으로 바뀌었고,‘각’의 ‘ㅏ’는 ‘하’의 ‘ㅏ’ 로, ‘설’의 ‘ㅓ’는 ‘뉴’의 ‘ㅠ’ 일부로,‘설’의 ‘ㅓ’는 ‘트’의 ‘ㅡ’로, ‘탕’의 ‘ㅌ’은 ‘트’의 ‘ㅌ’으로,‘탕’의 ‘ㅏ’는 ‘하’의 ‘ㅎ’일부로, ‘탕’의 ‘ㅇ’은 ‘하’의 ‘ㅎ’ 일부로 쓰였다. <각설탕>의 제목 글꼴이 지닌 입에 닿으면 금방 녹아버릴 듯한 질감 표현과 자연스러운 공간 배분은 영화의 내용과 제목을 고려해 디자인된 것이다. 말과 기수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인 <각설탕>의 글씨를, 압도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의학 드라마의 타이틀로 조합해 쓴다는 것은 원작이 가진 감성과 목적에 맞지도 않는다. 이처럼 원작과 무관하게 짜깁기된 <뉴하트>의 네모꼴 글자를 보고 있자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사실 <뉴하트>의 짜깁기 타이틀은 일견 이상해 보이지도 않는다. 캘리그래피의 자소를 분해하고 조합해서 쓰는 일은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해 캘리그래피 파일을 모아 일러스트 파일로 전환하도록 시킨다는 회사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위험하고 심각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6)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 _제작 초록뱀미디어, 편성 MBC7) \'거침없이 갈아타자!\'(2007) _수도권 통합 환승할인제 표어2007년부터 시행된 수도권 통합 환승할인제의 표어는 ‘거침없이 갈아타자!’이다. 누가 봐도 당시 인기 시트콤이었던 MBC <거침없이 하이킥!>의 타이틀을 패러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원작자에게 허락을 받았는지는 궁금할 따름이다. 공공성을 내세워 은근슬쩍 넘어가지 않았기를 바란다. 사실 대놓고 따라 했으니, 이것은 차라리 귀엽다고 해야 할까?연속성을 중요시하는 TV 시리즈물에서는 똑같은 글꼴을 약간만 수정해 ‘하이킥’ 시리즈의 제목에 사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거침없이 갈아타자!’의 경우처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불법으로 자소를 분리해 쓰는 상황일 것이다. ‘거침없이 갈아타자!’의 ‘갈’자에서는 ‘ㄹ’의 획이 완벽하지 않아 ‘ㅈ’으로 보이는 문제를 안고 있다. 애초에 없는 자소를 만들다 생기는, 짜깁기의 여파라 할 수 있겠다. 짜깁기의 흔적은 ‘ㄱ’과 ‘ㅈ’, ‘ㅏ’의 반복에서도 계속 나타난다.위의 두 사례는 작가의 저작인격권 중 하나인 동일성유지권을 위반한 것이다. 동일성유지권은 저작물의 내용 및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허락 없이 변경과 삭제 등에 의해서 손상되지 않도록 할 권리를 의미한다. 물론 저작권자의 특별한 의사표시가 있다면 변경할 수 있다.8)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 _캘리그래피 전은선9)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 _드라마 타이틀 패러디 모음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패러디처럼 작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숱한 패러디물의 양산은 원작자의 승낙 여부와 상관없이 유행에 편승해 온라인에서의 유희로 항상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태양의 후예’의 경우에는 주인공의 말투, 군복, 영상 이미지, 드라마 타이틀 등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다양한 분야에서 패러디와 무단사용이 있었다. 때마침 있었던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군복 이미지와 주인공의 말투, 드라마 타이틀 등이 군과 의사 출신 국회의원 후보자의 안보이슈와 홍보 이미지로 패러디되어 활용되었다. 어쩌면 인기나 매출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방송의 인기 확산을 위해 패러디와 복제를 묵인하거나 권장했는지도 모르겠다.-지금까지 살펴본 저작권 위반 사례들은, 한번 당기면 계속 나오는 칡넝쿨처럼 무궁무진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대량복제로 인한 원본의 불확실성과 표절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웹을 떠다니는 출처 불분명의 이미지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현상은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미리 대처하려 해도 방도를 모르고 손해를 봐도 명확한 근거를 찾기 난해하다. 그러므로 어떤 법적인 규제나 제도적 장치 마련을 기다리기에 앞서 디자이너가 자발적으로 자기 작품의 저작권을 지키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저작권에 대한 사회 일반 사용자들의 의식과 자정 노력은 아직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더 현실적인 도움을 얻고자 한다면 한국저작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캘리그래피는 디자이너에 의해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할 수도 있고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일차적 소비자이자 재생산자인 디자이너들이 파트너쉽을 가지고 관심과 이해를 가질 때 캘리그래피와 디자인이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계약 시 캘리그래피를 한 매체에만 사용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여러 매체에 게재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작품을 도용하거나 변형하는 것뿐만 아니라 애초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용도로 쓰는 것도 모두 저작권에 어긋나는 것이니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캘리그래피도 사진이나 일러스트처럼 용도에 맞는 계약을 따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복제와 전송, 배포,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 있는 저작재산권은 직접적인 부가가치가 높은 권리이기 때문에 저작재산권의 일부 또는 전부를 양도하는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계약 대상의 전체적인 디자인 범위에 포함된 금액이 아니라, 캘리그래피만을 따로 분리한 별도 항목이 책정되어야 하고, 매체와 규모에 따라 용도를 정확히 지켜야 한다. 이 부분은 일차적 소비자인 디자이너뿐 아니라 최종 클라이언트의 이해와 관심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다.아무쪼록 캘리그래피와 창작물의 저작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박선영(야림) 그래픽디자이너, 캘리그래퍼현 996크리에이티브랩 소장, 사)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이사, 전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이사로 활동했다. 동양적인 문화요소와 조형을 현대적인 디자인 언어로 융화시키는 작업에 관심이 많은 그는 독립적인 프로젝트 활동 및 출판과 한글 관련 프로젝트와 전시에 참여하고 있으며,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우리 문자의 조형을 강의한다. 논문 <캘리그래피(손멋글씨)의 조형적 표현과 활용에 관한 연구>(2005)를 발표했고, 이탈리아 Utilita Manifesta/ Design for Social 2010에서 작품이 선정된 바 있다.http://yarim.blog.me/
[News]
꽃과 패션, 그리고 캘리그라피의 만남
fffim 테이프 컷팅식디자인리프는 지난 27일 그랜드하얏트서울 그랜드볼룸에서 ‘핌(fffim 2017)’을 개최했다. fffim은 ‘Flower Fashion Festival Imagination(꽃 패션 축제 상상)’의 약자로 올해 첫 출발을 했으며, ‘Soul of Green(푸르름의 영혼)’이 주제였다. 이는 화예와 캘리그라피, 패션과의 협업이라는 도전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축제다. 꽃과 글씨 의상, 전혀 다른 세 장르의 예술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큰절로 감사를 인사를 하는 송민숙 대표이번 축제를 기획한 사람은 다름 아닌 \'꽃집딸\'이라는 친숙한 별명을 지닌 송민숙 대표다. 그는 화예를 수호하고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예전문 계간지 leaf(리프)의 편집장인 동시에 캘리그라피 디자인 그룹 \'어울림\' 감사이기도 하다. 그는 꽃꽂이로 치부되는 화예에 꽃은 물론 다른 분야의 예술도 접목 시켜 화예에 독창성과 화합성 두 가지 모습 모두를 보여주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fffim 전시회장 전경1부는 화예 100인전으로, 화예 작가 100인과 국내 유명 캘리그라피 작가 20명이 초대되어 참여하는 콜라보 전시였고, 2부는 <화예철학> 출판기념회, 3부는 인터내셔널 플로랄 패션 갈라쇼로 진행되었으며, 부대행사로 ‘테이블 플라워 콘테스트’도 함께 했다. 화예와 캘리그라피 협업 작품fffim 2017을 총 기획한 디자인리프는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테마로 다양한 분야를 이울러 새로운 창작의 방향을 찾고자 한다”며 “새로운 문화를 향한 시발점이자 화예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데에 의미를 두고, 다양한 예술의 융합과 창작 세계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화예와 캘리그라피 협업 작품윤경희 작가는 \"작가들에 대해 잘 모르고 화예의 특성상 작품을 미리 볼 수 없어, 문구와 규격만 가지고 상상력으로 작업을 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잘 어울려서 놀랐다. 작가들의 작품 철학과 해석, 그리고 성격의 방향이 같다보니 표현이 비슷하게 되었다.\"며 전시 소감을 말했다. 조용연 작가도 \"꽃과 함께 전시를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런 제의를 받고 기꺼이 참여했다. 꽃과 글씨가 만나서 새로운 모습을 만들고 또 어우러져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화예와 캘리그라피 협업 작품이일구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회장은 \"화예와 캘리그라피는 비교적 대중에게 친근한 분야인데, 이 두 예술을 함께 보니 신선하다. 앞으로도 서로 다른 예술과 협업이 진행되면 좋을 것 같다. 꽃은 금방 시들기 때문에 전시 기간을 오래 잡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화예가 김영란법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보고 있는데, 이러한 기획전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의 발전을 기대해본다.\"라는 의견으로 예술의 융합과 발전을 염원했다.fffim2017의 갈라쇼 무대캘리그라피의 열풍이 불고, 글씨가 당당히 예술의 독자적인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요즘이다. 글씨가 그림과 사진 또 화예와의 협업을 통한 새로운 융합예술을 선보임에 이어, 차후 다른 예술 분야와도 따로 또 같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본다. 취재 윤누리 기자참여 캘리그라피작가 20인김성태 김정호 김진경 김현중 박명호박선영 신철우 안병국 여태명 오민준윤경희 이상현 이승환 이 완 이일구정병례 조용연 조정욱 최 미 최일섭
[Interview]
봄을 닮은 공간 “늘봄캘리그라피”
봄을 닮은 작가,답답한 도심을 떠나 남양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녀만큼이나 맑고 고운 풍경이 펼쳐진다.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싱그러운 봄빛으로 글씨와 그림을 물들이는 ‘늘봄’ 고은영 작가를 글씨21이 만나보았다.화사하고 따뜻한 느낌의 공간이네요. 작업실 컨셉이 어떻게 되시는지요?-제가 꽃을 좋아하고 자연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밖으로 나가면 뒤뜰이 있어서 산책할 수 있어요. 작업하면서 떠오르지 않거나 힘들 때, 사색하고 싶을 때 걷곤해요. 꽃을 보면 생각이 많이 떠오르고 날씨나 햇빛을 보면서 작품의 영향을 받곤하죠. 원래 제 작업실은 서울에 있었는데 홍대의 북적한 곳에 있다가 이쪽으로 오니 조용하고 작업에 몰두하기 좋아요. 저만의 공간으로 꽃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요. 원래 자연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작업의 소재나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풍부한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또 미래에 저만의 아트샵을 갖고 싶은 꿈이 있어요. 그래서 연습해본다는 생각으로 상품을 진열하면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곤해요.아스팔트나 건물, 사람이 많고 북적거리는 것도 좋지만 전원생활을 해보고 싶어서 1년 반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이곳의 생활이 외롭진 않아요. 세련된 자료, 전시들과 거리가 멀어지기는 했지만 대신 공기 좋고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많고 계절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많이 느낄 수 있어서 제 작품이 좀 더 풍요로워 지는 것 같아요. 그릴 것이 많고 보는 것들이 달라졌어요. 필명이신 ‘늘봄’은 작가님과 참 닮았다고 생각되네요. 늘봄은 어떤 뜻인지요?‘언제나 봄’이란 뜻으로 꽃을 좋아해서 지은 이름이에요. 언제나 봄처럼 사람들에게 그림으로, 글씨로 따뜻하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제가 워낙 꽃을 좋아해서 꽃도 배웠고 플로리스트가 되는 상상을 하곤 해요. 작가님의 작품은 글씨만 있지 않고 항상 그림이 함께하네요. ‘늘봄’ 작가를 떠올리면 캘리그라퍼이기도 때로는 일러스트 작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죠. 작가님의 정체는 무엇입니까?그 부분에서 많이 고민해요. 저는 원래 캘리그라피 작가에요. 프로필에는 캘리그라피 작가로 소개가 되어있죠. 제가 그림을 하게 된 이유는 캘리그라피를 좀 더 돋보이게 하고 싶고 캘리그라피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보고 싶어서에요.저는 ‘캘리를 위한 그림을 그립니다’ 어떤 분들은 일러스트레이터로 보기도 해요. 실제로 캘리그라퍼로서 작업하는 경우가 있고 일러스트레이터의 신분으로 작업을 하죠. 어찌보면 직업이 두 개인 것 같기도 하네요. 두 영역을 왔다갔다 하면서 저만의 세계를 충분히 즐기고 있어요.우연히 커피숍에 갔다가 작가님의 캘리그라피 작품을 본 기억이 나네요. 작가님의 작업 중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해주세요.저는 365일 봄을 기다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벚꽃을 수채화로 그리고 캘리그라피를 쓴 것이구요. 제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워낙 꽃을 좋아하기도 하고 항상 봄이 되면 주변 사람들이 저를 떠올리고 찾아주세요. 그래서 이 작품에 큰 애착을 느껴요. 작가님 작품 중에는 디자인 상품으로 나온 것이 많던데 어떻게 처음 글씨로 상품개발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셨는지요?제가 원래는 디자이너로 5년 정도 회사생활을 했어요. 그 후 프리랜서로 7년 정도 일을 했구요. 막연히 팬시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꿈만 꾸다가 어느 날 제 작품을 엽서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줬어요. 처음에는 정확히 엽서 8장으로 시작했죠. 그 후 여기저기서 판매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받았어요. 소문이 나서 홍대, 인사동의 큰 샵들에서 판매가 시작되고 그 후 카드도 만들기 시작하고 점점 스케일이 커졌어요. 처음에는 저와 제 주변사람들을 위한 저만의 취미활동으로 소소하게 만들었는데 어느새 비중이 너무 커져버려서 지금은 입점되어있는 곳이 많아요. 본격적으로 팬시상품을 만들게 된 취지는 제가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것인데 우리나라에 관광 상품이 많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가볍게 살 수 있는, 저도 제작하기에 부담이 되지 않는 상품을 만들고 싶어서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지금 제 상품들은 관광지 위주로 많이 배치되어 있어요. 여행가면 기념할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글씨인 캘리그라피와 그림인 일러스트를 조화롭게 작업하는 작가님만의 작업 방식이 있는지요?저는 작품을 한꺼번에 하지 않아요. 그림을 그려놓고 놔둬요. 글씨는 시간이 지난 후 작업을 하죠. 작품을 하루 안에 다 하지 않고 여러 시간에 걸쳐서 생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이유는 한번 그림과 글씨가 만나게 되면 그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는 결론이 주어지지만 저는 그렇게 글씨와 그림이 짝이 되는 것이 신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말 그 그림과 어울리는 글씨가 무엇인지 생각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여러날 에 걸쳐서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그림과 글씨가 만날 때 ‘그때’ 행복하고 둘이 짝이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이 들곤해요.방금 이야기 해주신 노하우가 캘리그라피와 그림을 어울리게 작업하고 싶어하시는 분들에게 중요한 팁인 것 같네요. 그림을 그리고 바로 글씨를 얹는 것에 시간을 두지 않고 급하게 진행하게 되면 그만큼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저는 항상 시간을 두고 쉼표처럼 그림과 어울리는 글씨가 무엇인가 고민해요. 시간을 두고 깊게 생각하면 최적화 된 결과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상품으로서의 결과물과 수강생들에게 글씨를 가르칠 때에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어떻게 다른가요?초기에는 상업적인 작업을 할 때 제가 하고 싶은 부분을 클라이언트에게 많이 어필했어요. 작업의 색깔과 글씨의 변형등에 대한 저의 의견을 이야기 했죠. 제 글씨를 마음대로 클라이언트가 수정하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어요. 돌이켜 지금 생각해보면 상업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지 저의 개인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제는 어떤 수정요청이 들어와도 요구에 맞게끔 해주는 것이 좋은 글씨이고 그림이지 않나 생각해요. 작업실 수업은 저에게 또 하나의 고민이에요. 저는 외주 작업 뿐만아니라 팬시도 작업하고 그 외 진행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수업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주로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는 편이에요. 사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정규 수업을 진행하고 싶죠. 수업은 사람을 만나서 소통하고 작업을 하는데 많은 영감을 주거든요.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고민했던 부분도 알려드리고 싶어요. 제가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3개월~6개월 하면 금방 될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죠. 어떻게하면 글씨를 잘 쓸 수 있을까? 얼마만큼 공부를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많이했어요. 요즘 독학하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제가 고민한 부분에 대한 노하우도 알려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여유가 생기는대로 원데이클래스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작가님께 원데이클래스를 받으신 분들은 정규수업을 계속 받고 싶어 하실 것 같아요.네. 그래서 제가 고민이에요. 제가 팬시상품 작업을 하는 게 생각보다 비중이 커져서 시간 할애를 많이해요. 팬시는 지속적으로 신제품이 나와야 하죠. 아직까지도 수업은 제가 많은 고민이 되네요. 좀 더 무르익었을 때 정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좋은 소식이 들려왔어요. 드디어 많은 독자들이 기다리던 ‘늘봄’작가의 캘리그라피 책이 나왔네요. 집필하시면서 힘드신 부분은 없으셨나요?카피 문구를 정하는데 이틀이 걸렸어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아 뒤뜰을 산책했어요. 봄이 슬슬 오기 시작할 때 카피가 정해졌어요. 거창하진 않지만 캘리그라퍼들에게 요구되는 한 가지가 자신의 글을 써야된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의 시나 좋아하는 문구, 노래가사를 쓰는 것도 물론 좋지만 자신이 직접 글도 함께 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해서 요즘에는 책을 좀 읽고 시를 써볼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책의 타깃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이 책의 타깃은 20대 초반입니다. 1일 1캘리라는 것은 하루에 하나씩 따라써보고 그려보는 것인가요?네. 1일 1캘리구요. ‘늘봄의 하루’에요. 하루에 하나씩 365일 매일매일 캘리그라피를 쓰고 봄을 느끼셨으면해서 ‘너에게 보내는 봄빛 손글씨’라고 부제를 정했어요.책이 처음 나오자마자 저의 스승님이신 강병인작가님께 책을 전해드렸어요. 그 부분에서 감성적으로 왈칵했어요. 감사하게도 추천사를 적어주셨어요. 두 번째 추천사를 적어준 분은 캘리그라피 작업을 하는 신동욱 작가님이에요. 저와 캘리그라피에 대해 이야기 많이 하고 변화하는 흐름에 대해 고민을 나누는 사이에요. 추천사 써주신 두 분께 너무 감사드립니다.늘봄캘리그라피 공간, 작가님을 떠올렸을 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으면 하나요?제 소개를 할 때 ‘언제나 봄, 당신의 봄’이라고 말해요. 봄이 오면 저를 떠올려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추운 겨울도 더운 여름도 항상 봄을 꿈꾸고 있어요. 비록 추운겨울이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더라도 그 안에서 꽃을 보셨으면 해요. 저로 인해 꽃필 날을 느끼고 그리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캘리그라피 뿐만 아니라 서예와 문인화도 깊이감 있게 공부하고 있다는 늘봄작가. 그녀는 10년 이상 캘리그라피 작업을 해오면서 시대가 변한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 5년 전, 그리고 요즘의 캘리그라피가 다른 것을 실감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을 지켜보며 적응을 하는 과도기에 있다고 말하는 그녀. 단지 보기에 예쁜 것만을 추구 하지 않고 작업에 신중을 기하는 작가의 고민과 열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미래의 캘리그라퍼를 꿈을 꾸는 이들이 그녀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나 돌아오는 봄날의 꽃처럼.취재 성은하 기자세타필 콜라보레이션_더샘 화장품_늘봄해피바스, 할리스 콜라보레이션_늘봄헤라, 메이크업헬퍼, 조선왕비간택사건, 신세계 SSG마켓_늘봄
[Interview]
이 작가의 思생활, 강병인
전통서예에 디자인을 입히다.한글의 의미적 상형성을 찾는 글씨 예술가 강병인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산업훈장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 여기 오로지 글씨 하나로 2012년 디자인 코리아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작가가 있다. 글씨에 생명과 표정을 담아내는 글씨예술가 캘리그라퍼 강병인 작가를 만나보았다.Q. 한글에 아름다운 글꽃을 피우고 있는 작가, 강병인 작가님의 글씨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글씨를 쓰게 되신 건가요?어린 시절 시골이라 군것질은 거의 못했으며 집안은 원체 가난하였죠. 그런데 특활시간에 배운 서예수업이 끝나고 나면 양봉을 하셨던 선생님께서 꿀을 실컷 먹게 해주셨습니다. 달콤한 꿀의 유혹에 서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제 성격이 활발하기보다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먹을 갈고 글씨를 쓰는 시간이 왠지 좋았습니다. 내세울 것 없는 시골아이가 또래 중에 대표로 뽑혀 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나름의 존재감을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보여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작품세계와 조선시대 최고의 예술가·서예가라는 설명들을 보고 다시 한 번 ‘나중에 크면 서예가가 되어야 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독학이나 마찬가지 인데, 초등학교 때 1년 정도 궁체를 배웠고, 그 이후로는 선생님이 안계셨습니다. Q. 서예가 강병인 보다 캘리그라피 디자이너 강병인으로 먼저 대중에 알려지셨습니다. 전통서예라는 콘텐츠로 디자인과 접목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글씨를 독학하면서 디자이너로도 활동을 했었는데 자연스럽게 서예와 디자인, 디자인과 서예의 관계를 생각했습니다. 디자인의 한 분야로 제품의 로고를 만든다던지, 책의 타이틀을 쓴다던지, 대부분이 그 당시에는 활자를 이용해서 제호를 활용했기 때문에 제품의 로고마저도 붓글씨를 쓰는 것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초 일본여행을 하면서 지하철이나 백화점, 서점, 길거리의 간판을 보면 붓글씨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컴퓨터로 만든 인위적인 글자인 반면에 일본간판의 글씨는 대부분이 붓글씨로 쓰여져 자연스럽게 가게의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붓글씨가 생활 속에 디자인 적인 쓰임이 굉장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분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서예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생활 속에서나 디자인적으로 광고카피, 제품의 로고, 영화·드라마에 부분적으로만 사용하고 있을 뿐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지는 않았죠. 그래서 조금씩 실험을 해보고 적용한 결과, 디자인적으로 쓰이는 붓글씨는 기존의 서예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원래 디자인은 발상이며, 어떤 광고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기업의 이념과 정체성을 광고에 표현해야 하고, 제품의 광고 패키지라면 제품의 속성, 제품을 누구에게 팔 것인가에 대한 소비자층을 분석하지 않으면 패키지나 제품의 로고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서예가의 서풍. 본인이 잘 쓰는 서체로 글씨를 쓴다는 것은 상업적으로 활용도가 매우 떨어질 것입니다. a라는 제품이 주(酒)류라면, 기업마다 자기의 이념이 다르고 만드는 과정이 다르고 제품의 속성이 다른 것인데 a제품,b제품,c제품의 글씨가 똑같다면 변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서예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표현방식과 하나의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분석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컨셉이 만들어지면 그 컨셉에 따라 로고, 패키지, 광고전략이 하나로 흐르듯 서예와 디자인적인 과정도 서로 접목하면 새로운 서예, 새로운 손글씨 분야가 만들어 질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붓글씨가 생활이나 디자인 속에서의 활발한 쓰이는 일본을 알아봤더니 그들은 이를 캘리그라피라고 하며 순수 서도와 상업서도를 구분해서 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것도 캘리그라피라고 말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속적인 실험을 하고, 광고회사에서 디자인을 하며 실제로 적용해볼 수 있었죠. 2000년대 ‘따자마자축제’나 99년도 <다비전>이라는 일러스트 그룹의 로고를 붓글씨로 쓴 경험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서체나 활자를 적용한 글씨를 보여줬을 때와 붓글씨로 서체를 다양하게 보여줬을 때의 반응은 너무 달랐습니다. 붓글씨를 보며, 활자와는 차별화 되어있고 독특하며 우리의 정체성(한국인의 정체성, 단체, 개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며,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이념이나 제품의 속성이 잘 표현되었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붓글씨를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2000년 초에 광고회사에서 많은 실험을 거친 끝에 다시 글씨를 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2002년 초,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Q. 글씨 쓰는 사람은 보통 호를 갖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호 ‘영묵(永墨)’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중학교 때 추사 김정희 선생님을 보며 나중에 크면 닮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훌륭한 서예가가 되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 어렸지만 막연하게 한자서예시대를 겪으신 추사선생님의 작품 중 특히 예서를 보면 글이 가지고 있는 내용, 거기에 들어있는 무수한 삶의 경험들, 희로애락喜怒哀樂이 표현되어있습니다. 한글로 시작한 저는 ‘한자로는 도저히 추사를 따라 갈 수 없겠구나’ 하여 ‘한글로 이름을 날려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예를 하다보니 친구들이 글씨를 써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작품 마지막에 낙관을 찍어야 하는데 호가 없어 호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내가 앞으로 추사선생님 같은 글씨를 쓰려면 영원히 먹과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하여 호를 영묵永墨이라 짓게 됩니다. 그 당시에 글씨를 잘 쓰지도 못하고 전각이라는 것도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친구들이 부탁하면 고무지우개에 새겨 찍어주곤 했지요. 제가 만약에 중학교 때 영묵이라는 호를 짓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가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Q. 작가님은 2004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계십니다. 다양한 작품과 작가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작업노트와 같이 여겨지는데요. 글 중 ‘캘리그라피는 잠시 유행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캘리그라피란 어떤 것인지요?그 당시 캘리그라피를 두가지 관점에서 접근하였습니다. 하나는 전통서예의 현대적인 재해석, 재창조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자서예는 추사선생님의 예서나 많은 서예가들이 모여 표현되는 서예작품은 굉장히 작가의 개성이나 정신이 표출되거나 형태적으로 구도적으로 작품이 굉장히 다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 80년대 90년대 초만 해도 한글서예는 판본체, 궁체 위주의 창작표현방식에 가두어져있지 않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한글은 한자처럼 쓸 수 없는가에 대해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그 답은 사실 추사선생님을 통해 얻었습니다. 추사선생님의 예서에서 지금의 제 작업을 보았습니다. 법고창신. 옛 것을 제대로 공부해야 하며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라는 뜻으로 한글서예에 있어서 법고는 당연히 판본체나 궁체, 정자 흘림정도가 있습니다. 이것을 익히지 않고서는 당연히 한글서예, 한글캘리그라피, 한글디자인도 저는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한글서예의 창신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한자는 꽃花 , 돌石, 용龍 등 힘있게 쓸 수 있는데 한글도 돌을 돌처럼 쓰면 안될까? 한글도 꽃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보면 꽃이 피고 가지가 있으며 뿌리가 있는데, 그것을 표현할 수 없을까? 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봄’을 가만히 보면 종성‘ㅁ’은 땅이고 초성은 하늘이고 중성의 모음은 사람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뿌리가 있고 가지가 있고 또 가지 위에 우리가 봄이 오면 무수하게 상상할 수 있는 무언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종성‘ㅁ’은 땅에서 싹이 나는 모습으로, ‘ㅗ’는 싹이 자라 가지가 되는 모습으로, 초성 ‘ㅂ’은 꽃봉 우리로 표현하면 안되는 것인가. 라는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죠. 이는 봄이 와 즐겁게 춤추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면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이게끔 상형화 하였다’라고 나옵니다. 봄_2007_30x16.5cm그래서 한글이 ‘표음문자이지만 적극적인 상형문자는 아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이게끔 합니다. 이기불이理旣不二, 소리와 문자는 다르지 않다고 뜻으로 우리 인간의 감정, 자연이 가지고 있는 형상을 보면 다 소리로 드러납니다. 보이는 그대로 형상을 만드는 것은 한자고, 한글은 그 소리를 통해 모든 형상들을 드러 낸다 라고 나름대로 제자원리에서 밝혀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칼 이라는 문자, 소리에서 칼을 볼 수 있지만 활자에서는 그것을 볼 수 없지요. 그런데 캘리그라피는 얼마든지 칼의 모습, 칼을 쓰는 사람, 칼을 쓰는 역동성을 ㄹ을 통해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한글이 가지고 있는 꼴의 다양성, 그안에 들어있는 철학,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 음과 양을 가지고 있는 한글의 제자원리 창제원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글서예를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한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꼴의 다양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두 번째는 사실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imf 당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imf 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꿈꿔오고 생각하고 실험하였던 서예의 디자인적인 응용. 다시 말해 일본에서 보았던 캘리그라피를 한번 열어보자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늘 쓰던 서체가 아니라 a라는 도둑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이라면 도둑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엄마가 뿔났다’를 표현한다면 ‘뿔’ 자에서 엄마가 뿔난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단순히 뿔이라고해서 뿔처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뿔’ 자를 표현하여야 합니다. 어렸을 때 소에 먹이를 주는 했던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보았던 그 소가 늘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밭을 갈고, 새끼를 낳아 팔면 그것으로 아들,딸 들의 학비를 마련해주는 소를 보며 늘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강요받는 어머니상을 내용으로 하는 ‘엄마가 뿔났다’를 떠올렸습니다. 만약에 단순히 ‘뿔’ 이라고 생각하여 뿔처럼 표현해야지 라고 한다면 아마 캘리그라피의 생명력은 없었을 것입니다. 경험, 이유를 그 안에 응축시켜 엄마가 뿔났다가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 결과 드라마를 만드는 감독, 시청자 모두를 만족하는 글씨가 나온 것입니다. 저는 이런 작업을 통해 캘리그라피를 디자인의 분야로 발전시켜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와 더불어 이 분야를 하나의 직업군처럼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하게 됩니다. 교육을 통해. 지금은 나름의 직업분야로 발전하였지만 한글이 디자인 분야에서 새롭게 적용될 수 있도록 서예인, 디자이너, 일반 사람 모두 이 분야를 배워, 먹고 살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200802_KBS2_엄마가뿔났다 영상타이틀Q. 매년 입춘이 다가오면 SNS에 강병인 작가님이 보내 온 입춘대길 글씨를 인증하는 인증대란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입춘 글씨를 선물하시는데 특별한 계기나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제가 봄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봄이 오면 모든 얼었던 대지가 기지개를 핍니다. 사실은 한글에 계절을 담고 보면,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와있는 참모습은 겨울과 같습니다. 아무 움직임이 없는 상태, 네모나고 아주 정적인 겨울의 모습을 닮아있습니다. 겨울은 사실 어마어마하게 중요합니다. 모든 땅속에 영양분을 빨아들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켜 그 생명을 자라게하는 순환의 원리를 가진 계절입니다. 예를들면 ‘봄’이라는 글자는 땅에서 겨울내내 영양분을 머금고 있다가 봄이 오면 싹이 자라고 꽃이피는, 여름이 되면 절정을 이루었다가 가을이 되면 겨울을 준비합니다. 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떨어지면 땅으로. 겨울의 영양분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한글은 그런 원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굉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겨울도 너무 소중하지만 봄이 되면 많은 생명을 잉태시키고 누구나 평등하게 똑같이 햇살을 주기에 봄을 좋아합니다. 옛날에는 봄을 즐기는 방법이 집에 봄을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입춘대길을 문 앞에 써서 붙였습니다. 과거에는 모든 사람들이 글씨를 썼기에 본인들이 입춘대길을 써서 붙였는데 지금은 서예문화가 글씨를 쓰는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에 직접글씨를 써서 붙이기에는 어렵지요. 그래서 글씨를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글씨를 써서 주변의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5~60장 써서 시작했는데 해가 지날수록 장수가 늘어났습니다. 3년까지는 한자로, 매년 다른 서체 전서, 행서 등으로 바꿔가며 썼습니다. 그러다 2015년부터는 한글도 써보면 어떨까 하여 한자 밑에 한글로 ‘새봄 오시는 날’ 이라는 풀이를 써 보내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한자로만 되는 것보다 한글이 섞여 있는 것을 더 선호하셨습니다. 저는 오히려 한글을 크게 쓰고 한자는 작게 써드기도 하였습니다. 올해는 한글을 한자로 비유하면 행서로 쓰고 입춘대길은 낙관을 만들어서 찍어 보내드렸습니다. 한자로만 쓰는 입춘대길을 한글로 받았을 때, ‘입춘대길이 가지고 있는 뜻을 한글에서 느낀다’라는 반응이 왔을 때 그 기분 때문에 힘들더라도 즐거운 것 같습니다.서울시 슬로건 Q.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세종대왕 광팬이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스승의 날에 대한 이야기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알아야 할 스토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글씨21 독자들에게도 이야기 부탁드립니다.제가 2년전만 해도 홍대앞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쪽 종로 인왕산 아래로 옮긴 이유는 세종께서 여기서 태어나셨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한글은 스마트시대에 가장 적합한 문자로 입력과 출력도 용이합니다. 이토록 쉽고 편리한 한글을 쓰는 이상 세종께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글 글씨를 쓰면서 제 자신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고, 더불어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하였으니 세종대왕을 어찌 잘 안 모실 수 가 없습니다. 세종의 한글정신을 지키고 알리고 이 큰 한글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 것인지 고민하며 즐겁게 한글을 더 아끼고 사랑하고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 곳으로 옮기면서 생각한 제 나름대로의 슬로건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정신을 이들이 꿈꾸는 덕을 잇는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한글은 글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들을 위해 만들어 진 것으로 굉장히 쉽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문자를 독점한다는 것은 지식을 독점한다는 것, 양반에게 독점되어 있는 지식을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겠다는 세종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시대로 보면 나눔이라는 민주주의, 인본주의, 홍익정신이 모두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정신을 ‘오늘날에 잇자, 어떻게 이어갈것인가’ 이것은 저 혼자만으로 힘으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곳은 세종의 한글창제 정신을 잇고자 하는 이들과 이 공간에서 함께하고 활동하는 다짐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종이 태어난 이곳에 그를 위한 생각터, 기념관 하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다행인 것은 마을 주민분들도 생각터복원사업에 관심이 많으시며, 추진위원회도 만들었습니다. 생각터복원에 관심이 많은 분들과 한글학자들, 한글디자이너들, 서예가분들과 함께 세종께서 나신 곳, 한글을 만든 공간에 역사성, 공간성을 알리고 외부에서 누군가 왔을 때, 세종이 태어나신 것 과 위대한 문자 한글이 만들어진 공간임을 새기고 알릴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합니다.세종이 태어나신 날이 5월 15일은 스승의 날과 같습니다. 겨레의 스승이 바로 세종대왕입니다. 5월15일이면 세종이 태어나신 곳에서 무언가 행사나 축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행사가 없습니다. 모두 세종이 잠들어 계신 여주로 가 세종이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데 저는 이것이 모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통 일반 분들은 생신날에 묘소를 찾아가 참배하지만 위대한 인물들은 생가에서 행사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국립한국박물관후원회 이사이기도 하여 한국박물관후원회의 이름으로 2년동안 꽃다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이 행사를 할 계획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세종이 태어나셨고, 그 날짜가 5월15일이며, 왜 스승의 날이 5월15일인지를 알려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200801_KBS2_대왕세종 영상타이틀Q. 캘리그라피는 보통 붓으로 작업을 한다고 알고 있는데 작가님의 작품 중 ‘공주의 남자’ 같은 경우 붓으로 작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보 작가들을 위하여 재료에 대한 이야기와 작업 과정을 알 수 있을까요?캘리그라피는 서예를 바탕으로 하는 글씨입니다. 글씨를 아름답게 쓰든, 슬프게 쓰든, 기쁘게 쓰든, 못나게 써도 모두 글씨입니다. 전통서예와는 조금 다른 현대적인 재해석이기 때문에 순수작품이더라도 때로는 도구를 다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디자인적인 쓰임의 글씨는 드라마, 책, 그 내용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 따라 도구도 달리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붓을 사용하지만 때로는 다른 인공적인 도구를 사용합니다. 처음 캘리그라피를 하시는 분들은, 서예하면 바닥에 깔판이 있어야 되고, 종이, 붓, 벼루 먹, 문진 등 문방사우가 있어야 하는 등 굉장히 많은 것이 필요하여 사용이 어렵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나온 펜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가장 극대화시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동양의 모필입니다. 서양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봐야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캘리그라피는 동양의 서예 도구인 모필을 잘 다뤄야 하며, 필법을 하지 않고서는 좋은 글씨를 쓸 수 없습니다. 개_2014_30x55cm다만 디자인적인 서예의 글씨는 필요에 따라 도구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공주의 남자 같은 경우, 드라마 방향을 시점은 조선시대지만 한복을 벗고 현대의 옷으로 갈아 입으면 현대물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드라마의 줄거리다 라고 생각하여 사극이기도 하지만 현대물이기도 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씨는 모던하게 쓰는 것이 어울리므로 도구도 바꿔본 것입니다. 물론 붓으로도 쓰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도구의 차이에서 시대도 드러나며, 공간, 시간, 역사 모든 것들이 표현됩니다.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현대성이 담아내기에는 현대적인 도구의 느낌이 더 좋았고 드라마 측에서도 이것을 채택하였습니다. 미생도 마찬가지로 작업된 것입니다. 한가지 고민이 있다면, 시청자에게 이 드라마가 얼마나 사랑받을까 하는 마음과, 드라마의 얼굴이자 주인공 못지 않게 중요한 타이틀 글씨가 얼마만큼 소통될까 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201107_KBS2_공주의 남자 영상타이틀Q. 상업글씨는 가독성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너무 가독성만을 따지면 폰트와 크게 차이가 없어 질 듯합니다. 가독성이나 예술성이나,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상업적인 글씨는 기본적으로 사실 쓰임에 가장 충실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성은 나중의 문제가 되겠죠. 기본적으로 가독성이라는 것은 작가나 제품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업에서 만든 제품이 빨리 소비자에게 노출이 되거나 각인이 되길 원합니다. 노출되는 것이 곧 가독성입니다. 그 뒤 각인되어 기억나게 하는 것입니다.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글씨,로고가 기업의 마케팅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저같은 경우에는 가독성이 높으면서도 제품의 성격을 글씨에 담아내는, 거기에서 소비자가 쉽게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제 나름대로 ‘의미적 상형성’입니다. 글이 가지고 있는 뜻, 소리, 형상을 자연스럽게 글씨에 드러냄으로써, 보다 쉽게 소통하고 기억하게 합니다. 기억하게 한다는 것은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재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글씨여야 좀 더 상업적인 글씨에 충실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업적, 디자인적인 글씨를 쓰면서도 놓치지 않고, 줄곧 나름대로 연지해온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업의 어떤 마케팅 전략, 소비자, 타겟이 누구인지에 충실하고, 디자인 방향에 충실하면서도 로고를 통해 한글의 새로운 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입체시각시_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_2011두 번째는 그 속에서도 강병인의 생각, 예를들면 ‘작가의 정신철학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경우 기업과 작가와의 상충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는데 상대방을 설득하는 문제는 저에게 늘 공부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캘리그라퍼가 상업적인 글씨를 쓸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사용자의 입장에 만들어야 된다는 것 입니다. 좋은 글씨를 위해서는 소비자하고 직접 만날 수 없으므로 디자이너, 기업, 작가와의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반면에 기업이나 디자이너 분들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의 제품이 나오기까지 기업에서 많은 정성과 공을 들이며 연구, 개발, 생산되기까지는 많게는 몇 개월에서 3년 정도 걸리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당황스러운 것은 글씨는 그저 쓰기만 하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여 쉽게 부탁하실 때도 있고, 글씨를 보여주며 유사하게 써달라고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저는 ‘그 제품도 유사하게 만드셨나요?’ 라고 질문을 한적도 있습니다. 유사하게 써달라고 하는 것은 카피가 될 수 있으며 a라는 제품에 맞게 글씨 또한 새롭게 창작이 되어야 합니다. 제품이 정성들여 만들어지듯이 글씨 또한 소비자와 만나는 첫 얼굴이기에 너무도 중요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캘리그라퍼들도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계속적인 소통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참이슬 3종Q. 작가님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은 글씨 작업을 하시고 쉬는 시간에는 임서를 하며 보낸다는 것이 사실인지요? 캘리그라피 작가들이 임서를 할 때 추천하는 서체는 무엇인지요?크게 한글은 고딕서체에 바탕이 되는 판본체, 명조체의 바탕이 되는 궁체 두 가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두 서체를 늘 임서를 합니다. 궁체는 이미경 선생님의 정자와 흘림을 주로 하며, 제 글씨를 배우는 분들에게 지도도 합니다. 한글고체에는 정자와 진흘림이 있는데 두루두루 하고 있습니다. 한글을 주로 발표하지만 한문·한자서예 역시 임서를 하고 있으며 주로 왕희지의 행서를 많이 합니다. 사실은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낸다는 것은 고통스러우나 좋은 글씨를 임서하는 것만큼 행복한 시간이 어디있겠습니까. 평상심을 찾는데에는 좋은 글씨를 임서하는 것 만큼 더 좋은 것이 없는 듯 합니다. 임서라는 것은 추사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70평생에 벼루10개를 갈아 닳게 하고 붓 일천자루, 만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어도 모자르다고 하셨으니 획 공부는 평생해야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글씨를 볼 줄 알고 임서하는 것은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한 큰 바탕입니다. 글씨를 오래 쓰려면 임서를 많이 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측면에서 늘 하고 있습니다. Q. 캘리그라피작가 강병인,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또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한 캘리그라피 디자이너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거창한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세종께서 나신 이곳에 새로운 둥지를 틀며 나름 정리한 것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캘리그라피나 먹글씨 분야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한 시대의 어떤 역할을 했는지. 곧 있으면 20년 정도 되어가는 캘리그라피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 앞으로의 역할, 뿐만아니라 문제점과 단순히 기교로서 글씨를 보여주는데 그치는가 아니면 이론적인 부분도 계속 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작가로서 새로운 한글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미적 상형성을 넘어서 한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는 요즘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한글은 전환이 무궁무진합니다. 실제로 한글의 확장성이라는 것은 개인이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이므로 끊임없이 고민할 것입니다. 캘리그라피, 다시말해 먹글씨를 좋아하시고 이 분야에 계시는 분들에게 말씀을 드린다면 먼저 자신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하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정말 나는 글씨를 좋아하는지, 글씨를 돈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저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고 봅니다. 좋아하면 즐길 것이고 즐기면 잘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돈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 역시 이 분야를 들어설 때 디자인으로서는 실패작이었습니다. 그 때 제 자신의 문제를 돌아 봤을 때 실제로 디자인의 능력이 모자라면서도 돈을 쫓고 있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글씨를 돈으로 보지말자, 내가 좋은 글씨를 쓰다 보면 돈도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씨를 정말 좋아한다면 자연스럽게 누구에게나 좋은 글씨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글씨21 힘내세요! 얼씨구! 생각과 마음, 붓이 하나일 때 담고자 하는 감정이 드러난다고 말하는 작가 강병인.거침없는 붓놀림,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듯 한 획의 표현으로 21세기 서예의 명작을 만들어 가고 있는 글씨예술가 강병인의 오색찬란한 글꽃들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길 소망한다.인터뷰 성은하기자영묵永墨 강병인 Kang Byung In-강병인글씨연구소 술통 대표-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 졸업-문화체육관광부 국립한글박물관 후원회 이사-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 명예교사-교보문고 손글씨문화확산위원회 위원-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서예스승-개인전 14회(2016년 기준)[수상]-2014.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2012. 대한민국디자인대상 은탑산업훈장-2009. 한국출판인회의 올해의 출판디자이너상[저서]-글씨 하나 피었네_2016, 글꽃출판사 [언론소개]-2016 KBS 1라디오 <문화공감>-2015 SBS <컬쳐클럽>-2014 프랑스,독일공영합작채널 ARTE <기적의 나라, 한국>-2013 EBS <지식채널e> ‘봄봄봄’-2011 KBS 1TV <한국 한국인>-2010 KBS 2TV <생방송 오늘>-2007 MBC <뉴스데스크> 정이 담긴 손 글씨 ------------------------------------------------------------------------------------------------------------------------------------그가 쓴 글씨 안에는 꼭 다문 꽃봉오리와 활짝 핀 꽃의 모습이 함께 있다- 류시화(시인)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글씨 쓰는 사람 강병인에게 감사드린다. 그는 우리가 쓰는 한글이 단순히 자음과 모음을 결합시켜 대상을 가리키는 약속된 글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대상을 안에 담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꽃’은 ‘ㄲ’과 ‘ㅗ’와 ‘ㅊ’이 합쳐져 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 글자 자체가 ‘꽃’의 모습이다. ‘길’은 그 글자 안에 ‘길’을 담고 있고, ‘봄’은 글자 그대로 모든 생명을 다시금 깨우는 ‘봄’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물을 상징하는 글자라고 여겼던 ‘물’이 그 안에 물의 흐름과 물의 소리까지 담고 있다! 상징적인 의미뿐 아니라 실질적인 모습까지 표현하는 것이 한글인 것이다. 내가 꽃에 대해 시를 쓰는 이 사랑하는 글자들이 단순한 소리 글자가 아니라 ‘꽃’ 그 자체임을, 무심히 써 온 ‘숲’이라는 글자 안에 깊은 산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음을 그는 보여 준다. 오랜 세월 우리가 써 온 글자들 안에 이 땅의 모든 생명과 삶이 담겨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가 쓴 손글씨 안에는 꼭 다문 꽃봉오리와 활짝 핀 꽃의 모습이 함께 있다. 그의 글자는 발명이 아니라 놀라운 발견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글씨의 시인’이라 부른다. 발견하는 눈을 가진 이는 누구나 시인이다. 더구나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그는 그리움과 사무침을 많이 겪어 온 사람이다. 모든 외형적 기대들과 좌절과 실패를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씨에는 절실함이 있다. 자기 안의 부딪침과 자기 밖의 부딪침이 담겨 있다. 그리워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음은 죽은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꽃이 피어야 우리가 만드는 작품에도 꽃이 핀다. 단순히 손재주로 피운 꽃은 향기가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든 글씨를 쓰는 사람이든 부단한 자기 공부가 따라야 하는 것이다. ‘글씨와 삶이 하나여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그가 쓰는 글자들 안에서 빛을 발한다. 그의 글씨를 그림이 아니라 ‘글꽃’이라고 우리가 느끼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