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인 의미를 전통 동양화 기법으로 작품에 담아온 지송 이현정 작가의 첫 개인전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전이 서울 종로구 북촌로 갤러리 일백헌에서 2023년 11월 30일(목)부터 12월 7일(목)까지 열렸다.
이번 전시에는 항아리 연작 4점, 비구상미술 2점을 포함해 난(蘭)과 연못(蓮)을 주 소재로 붓의 운필과 먹의 발묵 기법을 연구한 문인화 25점이 출품됐다.
지송 이현정 작가는 “선의 굵기, 강약, 속도, 농담 조절에 따른 선 변화를 연구해 선의 운필법을 달리하며 그 느낌을 난으로 다양하게 표현했고, 또 한지의 종류와 물과 먹의 배율에 따라 먹물이 종이에 흡수되고 번지는 차이를 탐구해 동양화의 전통 발묵법으로 연못에 적용했다”고 소개했다.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_ 83x68.5cm, 한지에 수묵담채, 2023
‘위로’는 순수하게 발묵을 통해서만 먹의 화려한 색감을 보여준 작품으로 꼽힌다. ‘선키스드 폰드(Sun-Kissed pond)’ 연작 역시 컬러가 아니어도 먹의 풍부한 색감으로 얼마든지 화려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위로(慰勞) _ 85x127cm, 한지에 수묵, Will, 2023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 작가는 책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었다. 단어나 문장에서 단서를 찾고 연상되는 이미지를 스케치 했다. 그는 “현실에서는 큰 변화 없이 루틴대로 살기 때문에 책만큼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주고 가보지 못한 세계로 인도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Sun-Kissed pond _ 97x61.5cm, 한지에 수묵담채, Will, 2023
작가는 장자(외편) 『제19편 달생(達生) 4-1』에서 ‘상심이라는 연못을 건넌 적이 있는데’라는 구절을 만났다. 그는 “문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못에게 속상한 이야기를 했으면 연못에 ‘상심(傷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커다란 연잎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경청자의 ‘귀’로 연상되었고, ‘연못은 너그럽네’로 생각이 이어졌다”고 한다.
상심의 연못 _ 68.5x56.5cm, 한지에 수묵담채, 2023
이 때의 연못과 귀의 연상은 이번 개인전 주제인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를 관통하는 이미지가 됐다. 이 작가는 “공허함과 허탈함에 지칠 때, 외로움을 느낄 때 나를 진심으로 알아주는 누군가를 찾게 된다. 그럴 때, 무심한 듯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만 줄 누군가가 있다면 참 위로가 되겠다 싶었다”면서 “내 심상(心象)에 그려진 상상 속 연못에 이야기 하면 연못이 다 들어줄 것을 기대하면서 그림에 내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마음의 소리를 함께 나눠 갖는 친구 같은 그림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잠이 오지 않는 하얀 밤 _ 102x74cm, 한지에 수묵담채, Will, 2023
연못과 함께 주 소재로 사용한 난은 작가가 스승인 우향 김동애 선생의 난초를 닮고 싶어 가르침 그대로 그린 작품들이다. “우향 선생님은 난초를 품위 있게 그리시는데, 선생님이 그린 우아하고 따듯한 감성이 느껴지는 난초를 참 좋아한다”며 “작품 ‘동경’은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보여드리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 작가는 ‘동경’을 둘러싼 액자 색감도 우향 선생이 좋아하는 연보라를 사용했다.
동경(憧憬) _ 133.5x81cm, 한지에 수묵, 2023
특히 이번 전시에는 전통 기법을 바탕으로 문인화에 새로운 ‘윌(will)’이라는 오브제를 사용해 접화적 태도로 접근하고 한국 문인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한 작품들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작가는 “윌(will)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없이 연습했던 파지를 자르고 말아서 직접 디자인한 그림용 장식 오브제”라고 설명했다. 윌이 처음 작품을 통해 발표된 것은 2022년 10월 한국문인화협회 지상전이었다. 2023년 4월에는 디자인 출원도 했다.
작가는 “윌의 의미는 작품에 따라 다양하게 상징화될 수 있다”며 “처음 적용한 작품 ‘욕망’에서는 다양한 욕망의 의지와 표상으로 사용했고,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품마다 다양한 의미를 담아 상징화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비’와 ‘밤에’는 윌을 비구상적으로 적용한 작품들이다.
욕망(慾望) _ 44.5x68cm, 한지에 수묵, Will, 2023
이번 전시에서 많은 공감을 받은 작품 중 하나는 ‘항아리’ 연작이다. 살아있는 생동감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가는 “40대가 되고 아버지께서 편찮으면서 젊음과 늙음,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항아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우주를 상징하고 이를 큰 화폭으로 옮겨 항아리의 빈 공간에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모습을 색으로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인생(人生) _ 67x60cm, 한지에 먹, 아크릴, 2023
인생(人生) _ 54x34cm, 한지에 먹, 아크릴, 2022
작가는 죽음도 결국 윤회사상처럼 다른 삶이 시작되는, 죽음과 삶이 만나는 순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윤회를 철학적으로 담아 ‘아름다움’이라는 항아리를 그렸다. 항아리에 꽂힌 국화는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름다움 _ 54x34cm, 한지에 수묵담채, 2022
한편 지송 이현정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시각디자인과를 수료했다. 2013년부터 우향 김동애 선생을 사사했다. 한국미술협회 초대 작가, 한국문인화협회 초대 작가, 대한민국 국가기술원 2022 한류문화원 초대 작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화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2022 http://m.knaart.com/1357’, ‘2023 강북삼성병원 나눔 존 갤러리 3인전, 강북삼성병원 디지털캠퍼스 미디어 전시’에 참여했다.
이현정 작가는 ‘가장 한국적인 작가’가 되고 싶다며 작품 방향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한국적 아이덴티티는 분명한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2023년은 작품에 몰두하며 지냈다. 결과가 나오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하나 끝내면 그 다음 작업이 또 기대되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림 이야기로 소통하며 생각에 또 자극을 얻었고 어떻게 표현할지 호기심도 잔뜩 생겼다. 길게 잡고 호수가 큰 작업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년 반 뒤에 ‘재미있는 작품’을 가지고 전시를 열겠다고 밝혔다.
2023.12.08.
한동헌
<전시정보>
지송 이현정 개인전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전시기간 : 2023년 11월 30일(목) ~ 12월 7일(목)
전시장소 : 갤러리 일백헌
(서울 종로구 북촌로 81)
문의: 010-8598-1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