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이 묘연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됐던 조선왕실 어책(御冊)이 프랑스에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프랑스의 개인 소장자로부터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을 매입하여 지난 20일 국내에 들여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사진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외국에서 왕실의 의례용 도장인 어보가 돌아온 적은 있으나, 왕과 왕후의 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리거나 왕비·세자·세자빈을 책봉할 때 옥이나 대나무로 제작한 어책이 들어온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669점은 지난해 10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번에 고국에 돌아온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순조 19년(1819) 효명세자빈을 책봉할 때 만들어졌다. 재질, 서체, 인각 상태가 매우 뛰어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죽책에 새겨진 글은 당시 우의정 남공철이 지었고, 글씨는 서사과 이만수가 썼다. 크기는 높이25cm, 너비17.5cm이며, 6장을 모두 펼친 길이는 102cm이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사진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국외 경매에 나온 한국문화재를 모니터링하던 중 지난해 6월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프랑스의 한 경매에 나온 것을 발견하였다. 사진 상으로 죽책문의 내용을 판독하고 이를 조선왕조실록 및 의궤에 기록된 내용과 대조한 결과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재단은 경매사에 거래 중지를 요청했고, 파리 보석상을 운영하던 할아버지로부터 죽책을 상속받은 소장자와 협의해 약 2억 5천만 원을 주고 사들이기로 했다. 구매 대금은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의 기부금을 활용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사진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프랑스로 흘러간 경위는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기록상으로 1857년 강화도 외규장각의 물품 목록 ‘정사외규장각형지안’에 적혀 있는 것이 마지막이다. 프랑스군이 1866년 강화도를 침입한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 도서를 자국으로 가져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시기에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남긴 약탈 문화재 목록에 죽책은 포함되지 않아 불에 타 사라진 것으로 여겨져 왔다. 죽책의 주인공인 효명세자빈(1808~1890)은 풍양조씨 조만영의 딸로 11세에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와 혼인했다. 효명세자는 요절했으나, 부부 사이에 낳은 아들 환이 헌종(재위 1834~1849)이 됐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사진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효명세자빈은 훗날 신정왕후로 봉해졌고, 철종(재위1849~1863)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자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재위1863~1907)을 왕위에 앉혔다. 세간에는 대왕대비로서 고종을 수렴청정한 ‘조대비(趙大妃)’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헌종·철종·고종에게서 여러차례 존호를 받는 등 왕실 어른으로서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죽책의 귀환은 매우 반갑고 놀라운 사건이다. 조선왕실의 품격과 높은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이 죽책의 발견을 시작으로 해외에 있는 소중한 우리 문화재의 발견과 귀환이 계속되길 기대한다.”라고 피력했다. 라이엇 게임즈의 기부로 되찾은 이 죽책은 어보와 어책 등 왕실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실 전문박물관인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연수)에 기증된다. 2018. 1. 31 글씨21 편집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