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자신만의 서예 세계 구축에 일념을 다한 규당 조종숙 선생은 특히 한글서예의 맥을 이어오며 열정을 쏟았다. 반세기에 걸친 시간 동안 한문과 한글을 넘나들며 폭넓은 작품세계를 보여주었으며, 현재는 한글서예의 일가를 이루고, 후학 양성에 앞장서는 등 원로서예가로서 후학들에게 큰 모범이 되고 있다.
규당 조종숙 선생은 동방연서회에 입문하면서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본격적인 서예 공부를 시작한 규당 조종숙 선생은 안진경의 해서를 시작으로 몇 년을 이어 한문서예 공부를 해 나갔다. 당시 일중 선생의 가르침에는 체본을 써주는 것을 일절 없었으며, 스스로 공부하고 연습하며 깨닫도록 하는 방식으로 지금에 돌이켜보면 정말 큰 공부였다고 한다.
단단한 기초를 다지며 국전에 4번을 입선한 뒤, 특선을 목표로 했지만 5번을 낙선하며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멈춰 서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으로 입선의 고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이 열리게 되고, 규당 선생은 그동안 한문서예를 공부해 온 필력으로 한글서예에 대담하게 전향한다.
공모전 출품을 통해 한글서예의 기본기를 연마하였고, 초대 작가가 된 후에는 규당 조종숙 선생만의 한글서예 길을 걷게 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원숙한 점과 획이 드러나며 고전 연구에 대한 깊이를 볼 수 있었다.
밝은 표정만큼이나 따뜻하고 맑은 마음씨를 지닌 규당 선생께서는 “반세기가 넘도록 붓과 함께 해왔건만 첫 번째 개인전 때나 지금이나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은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늘 연구하고 공부를 했음에도 부족함에 대한 갈증으로 지금의 서예 일가를 이룬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버지의 명필 내력을 이어받아 펜 글씨를 곧잘 쓰던 소녀에서 결혼 후 서예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으로 고군분투해 온 지난 세월을 조금은 가늠해볼 수 있는 인터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