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서예계의 맥’ - 학정 이돈흥 선생 별세
한국서예사에 큰 획을 그은 학정 이돈흥 선생이 지난 18일 오전 1시45분 별세했다. 향년 74세이다. 전남 담양 출생 학정 이돈흥 선생은 만 20살 때 아버지의 권유로 송곡 안규동 선생을 찾아가 서예에 입문했다. 동국진체의 맥을 이은 서예가이다. 故 학정 이돈흥 선생
동국진체와 중국 고금의 서체를 조화시킨 글씨체를 완성하는데 일생을 바친 학정 선생의 서예 철학은 “배우고 익힌 뒤, 격을 깨뜨리고, 완전한 자유를 얻으면 원칙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수(守)·파(破)·이(離)’로 집약된다. 고 학정 선생은 생전에 한국미술협회 고문, 광주 미술협회 회장, 국제서예가협회 회장,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 부이사장 등을 지냈고, 학정연우서회와 학정서예연구원 등을 설립해 작품 활동과 후학양성을 이어왔다. 그동안 학정 선생에게 배운 제자들은 1만 여명에 이른다. 故 학정 이돈흥 선생
원교 이광사과 추사 김정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학정체’라는 독자적인 서체를 이뤘다. 20여 년 전 한·중·일 서예인들이 창립한 국제서예가협회 공동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베이징대학교 서법예술연구소 객좌교수와 주한 중국대사관 중국문화원 고문으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문화교류에 크게 이바지했다. 학정 선생의 작품은 국립 5·18 민주묘지 민주의 문, 광주 5·18 민주광장 민주의 종각 등과 화엄사, 송광사 대웅전, 대흥사, 불국사, 범어사 등 전국 사찰에 걸려있다.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국민통합’이라고 적은 친필 휘호를 선물하기도했다. 고인은 식도암 지병으로 광주 성요한병원에서 투병하였으며,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발인식은 20일 조선대병원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2020. 1. 21 글씨21 편집실 弔 辭
미술협회 서예분과위원장 권인호 哭挽 삭풍이 불어대는 2020년의 1월에 한국서단의 큰 별이 지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의 서예가로, 또 한 사람의 선생으로 너무나 큰 족적을 남기신 학정 이돈흥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생전에 선생이 서예가로서 이룬 작품세계는 현대 한국서예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선생이 서예가로 활동을 시작하던 초창기의 한국서예는 한비(漢碑)와 위비(魏碑)를 주종으로 하는 비파(碑派) 일색이었습니다. 이러한 시에 홀연히 왕탁(王鐸)과 부산(傅山)으로 통칭되는 명⋅청시대의 방일(放逸)한 행초서를 수용하여 자신만의 예술정신과 성실함으로 일가를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한국서단에 새로운 품격을 보여줌으로써 한⋅위의 비(碑)에 매몰되어있던 한국의 서예가들에게 새로운 물줄기를 제공하였던 것입니다.
故 학정 이돈흥 선생 작품 2018, 중과광주, 67x34cm
선생의 행초서는 중국의 그 어떤 작가와도 구별되어지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심지어 왕탁과 부산을 수용하였음에도 두 대사(大師)와는 확연히 구별되어지는 조형언어와 획을 사용하였으니 선생의 뛰어난 서예적 역량은 바다 건너 중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현자들과 교분을 나누기에 이르렀습니다. 故 학정 이돈흥 선생 작품 2017, 월성스님 시, 35x25cm
선생의 뛰어난 실력과 인품은 호남은 물론이고, 멀리서부터 책상을 짊어지고 스승으로 모시고자 수많은 제자들이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인 제자들 중에 지금의 한국서예를 이끌고 있는 제자가 수없이 많아 선생의 문하는 가히 명문중의 명문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故 학정 이돈흥 선생 작품 2014, 문심무괴, 116x23cm
이렇게 모인 제자들을 훈도하면서 선생은 일정한 공부가 된 제자들에게는 자신만의 세계를 열도록 종용하였으며, 또 그러한 제자를 지극히 아끼셨습니다. 사도(師道)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행하신 분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은 서단과 후학을 위한 일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셨습니다. 한국미술협회 수석부이사장을 역임하시면서 당시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심사제도 개선에도 노력하였으며,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오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온힘을 다하셨습니다.
故 학정 이돈흥 선생 작품
선생은 후배나 후학들에게 언제나 따뜻한 선배이자 선생이었습니다. 젊은 서예가들의 전시장에는 어김없이 찾아주셨고, 애정 어린 격려로 힘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이런 따뜻하고 정감듬뿍 담긴 전라도 사투리는 서예만 바라보고 내달리는 많은 서예학도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선생은 다시 못 올 길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히 글씨를 잘 쓰는 분을 잃은게 아니라 한국 현대서예사가 꼭 기억해야 할 이 시대의 서예가, 그리고 언제나 인자하고 따뜻한 선생님을 잃었습니다. 아! 선생의 영전에 뜨거운 눈물과 감사의 인사를 바칩니다. 한국 2020년 1월 미술협회 서예분과위원장 권인호 哭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