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書’ 제목이 참 요상하다. 마치 미술이 아닌 것이 미술관에 들어선 것처럼 말이다. 서예가 미술인가 하는 논란은 어제오늘만의 현상은 아니다. 서양에서 얘기하는 미술의 논리로는 납득이 어려운 서예만의 독특한 미술성, 문文과 필筆이 어울려 표현되는 그 어떤 접점. 그것이 서예인데 말이다.
그래서 서예는 어렵다. 하는 자도 어렵고 보는 자도 어렵다. 한자 세대가 아닌 대중은 더더욱 어렵다. 정직한 문자로 형식을 표현하면 미술이 아닌 것 같고 내면의 그 무엇으로 문자성을 가진 회화적 조형감각으로 처리하면 아트가 된 것으로 우리는 미술의 정의를 내리곤 한다.
어쩌면 서가 미술이냐 아니냐의 논쟁을 따위를 떠나 서예는 이 바닥에서 어떻게 살아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쟁이 더 필요해 보인다. 더 솔직히 말하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예는 오늘날 한국의 미술시장에서 절박한 상황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현대미술관에서의 서예 특별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기획전에서 서예인의 자세는 좋은 작품을 보고 감상한다 라는 보편적 시점을 넘어 서예,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반성의 시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이 미술관엔 전통도 있고, 전위도 있고, 타이포그라피도 있고 캘리그라피도 영상도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서예를 품위 있게 품고 가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더 넓게 안고 가는 포용의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이에 글씨21에서는 유투브 온라인 개막을 시작으로 하여 5월 6일 ~ 7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2, 3층)에서 50년 만에 열리는 서예 단독 기획전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의 기획자인 배원정 학예사를 만나 전시기획의 배경과 서예를 바라보는 솔직한 얘기들을 들어 보았다.
* 본 기획전은 5월 6일부터 현장 관람이 시작되었고 온라인 신청을 우선하되 현장접수도 가능하게 됨을 공지합니다.
Q.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서예전을 기획하게 된 배경과 준비과정 중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첫 번째 서예 기획전이다 보니까 어떤 부분들을 조명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고민이 참 많았었고 그 가운데에서도 무엇보다 50년 만에 서예가 조명이 된 것에 대한 명분과타당성 그것을 구현하는 것에서 과연 서예가 미술인가, 그런 부분들을 해결해 나가야할 숙제도 있었고 미술관에서 서예를 조명하는 것이 응당 서예가 우리 미술의 조형의 원리이고 동아시아 회화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그런 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조명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관람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첫 번째 숙제였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 작품선정에 대한 문제가 개인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로는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는데 있어 개인의 단독적인 생각으로만 진행했던 것이 아니라 작품 선정위원회등 견해를 참고하여 진행하였는데, 그 과정에 있어 장소와 공간의 한계가 있다 보니 중요한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피치 못하게 모시지 못한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가지실법한 서운함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개인적으로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이번이 현대미술관에서 서예가 첫 번째 전시라는 부분을 좀 감안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번전시는 첫 번째 서예에 관한 모색전이며 이번 전시가 단초가 되어 향후 더 좋은 원로, 현대 작가들이 점진적으로 조명될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
Q. 이번전시를 통해 한국서예계와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워낙 서예계에서 오랫동안 깊은 애정을 가지고 활동했던 분들이 많아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우나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느꼈던 부분들 중 일반 대중들에게 서예 전시와 관련한 계획이나 의견을 물었을 때 굉장히 거리감이 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예라고 한다면 어렵고 한문의 경우 한자 세대가 아니라 읽을 수 없는데 어떻게 감상을 해야 할지, 감상법부터 시작해서 관람객들에게 서예를 어떻게 한층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끔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곳은 미술관이기 때문에 이것이 해설적이거나 설명적이기 보다 감상적인 측면에서 전달을 해야 될 텐데 하는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김기승, 애국가, 종이에 먹, 36.1x131cm, 원곡문화재단 소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문이라는 특성이 가지고 있는 문자적인 특성상 조형성 이라는 부분에 착안을 했을 때 글자를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문자 안에 가지고 있는 조형미의 부분, 장법, 결구법 등을 한 번 두 번 전시가 시도됨으로서 관람객들에게 서예는 내용을 모른다 하더라도 이런 방법으로 감상하면 되겠구나라는 감상법부터 전달하는 것이 첫 단추를 끼우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일반인 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에게도 우리 서예의 아름다움, 바라보는 관점, 방법론들을 차근차근 개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석재 서병오(1862-1935), 이백李白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
Q. 첫 서예전을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앞으로 풀어나갈 숙제가 있다면? ->미흡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서예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현대서예가 변해가고 있고 그 가운데에서 설사 글자를 모른다 하더라도 분명히 필선이나 획의 힘에서 가슴을 울리는 감상의 묘미가 존재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접근방법이 가능합니다. 지금 현대미술이 어느 특정한 장르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형식과 내용 모두 중요한데 그 부분들에 대한 고민들을 각개전투 하고 계신 현대 서예가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철농 이기우(1921-1993), 학수천세鶴壽千歲, 종이에 먹 98.5X65cm, 황창배미술관 소장
그 일련의 작가 분들을 모셔놓고 경향의 분석을 통해 갈래를 타다보면 그 안에서 한국 현대서단만의 특징과 성격이 분명히 도출될 것이라 믿어요. 일본이나 중국에 비할 수 없는 한국 서예만의 가능성, 비전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들을 잘 이끌어내어 보여주는 것이 우리 미술관이 가진 숙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정 이돈흥(1947-2020), 한만해선생시韓萬海先生詩, 2019 종이에 먹, 203.3x69cm, 학정서예연구원 소장
초정 권창륜(1943-), 처화, 2016, 종이에 먹 143x69cm, 개인소장
Q. 이번 전시에 캘리그라피를 포함하게 된 배경과 전통서, 현대서, 캘리그라피의 상관관계에 대한 견해는? ->서예하시는 분들 중에 캘리그라피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부터도 사실은 이제 한국 근현대 서예 전시를 준비하면서 첫 번째 섹션에서 프롤로그전의 성격으로 회화하고 서예의 관련성에 대해 언급을 했고요. 사실 그 섹션 안에서도 우리가 이 어떤 그동안 서예와 미술의 분계에 있어서 외부의 영역이라고 하죠. 프랑스 앵포르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일본의 전위서 하고의 관련성 속에서 진짜 우리 서예와 회화, 조각, 미술의 각 제 분야하고의 관련성이 좀 더 깊이 있게 논의가 됐어야 됐는데 그게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었어요. 그랬을 때 그 안에서 갖고 있는 어떤 담론들, 이 얘기들이 상당히 많이 있고 해결해야 될 숙제들이 많은데, 마찬가지로 캘리그라피와 타이포그라피도 지금 이미 대표님께서 방금 언급해주셨던 것처럼 일반 대중들이 캘리그라피에 환호를 하고, 굉장히 심취해있고, 또 그것을 서예보다는 친숙하게 생각하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랬을 때에 캘리그라피와 서예의 경계, 그 구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제가 오히려 역으로 여쭈고 싶어요.
최민렬, 유산가, 2007, 종이에 먹, 196x106cm, 개인소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제 국립미술관에서 이것을 서예라는 어떤 영역 안에서 포함을 시켜서 조명을 하는 데에는 일단은 역사적으로 규명이 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저희가 함부로 어떻게 IN하고, OUT하는 거는 기획자인 저에게도 리스크가 큰 부분이에요. 하지만, 이 어떤 붓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하는 작업이라는 것. 그리고 ‘캘리그라피’라는 용어가 90년대 후반에 이제 나오게 돼서, 그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이제 사용하게 된 계기가 이제 서예학과에 정식, 4년제 대학에서 정규 제도권 안에서 서예를 하셨던 분들도 캘리그라피를 하시고 또 이것을 대중성을 획득하는 데에 있어서는 객관적으로 평가 받는데에 있어서는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이거는 분명히 벌여진 현실이거든요. 비단 어떤 한국적 포스트 모더니즘, 이런 것들이 서예에 적용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그것도 캘리그라피는 일종의 정말 서예의 팝아트라고도 볼 수도 있는 거고요.
이상현, 다양한 재료로 쓴 캘리그라피, 2020
화선지, 나뭇가지, 칫솔, 수세미, 파뿌리, 골판지 등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디자인이라는 건 결국에 일상성, 대중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소비하고 있는 글씨, 그 경계가 점점 모아지듯 아니면 혼용이 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있어서 어떤 치고 나가야 할 부분을 전통서예 하시는 분들이 계몽적으로 어떤 지침을, 어떤 기준을 세워서 먼저 치고 나가주실 수도 있는 부분이고. 아니면 한편으로는 계속 그 경계나 이런 것들을 깨 부시려고 하는 움직임도 저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랬을 때에 캘리그라피라는 용어의 사용의 문제부터 저는 다시 점검해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고 중요한 것은 외국에서는 서예를 캘리그라피라고 번역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마치 서예가 캘리그라피랑은 구분돼서 지금 쓰게 되는 현실에 지금 우리 한국은 처해져 있다는 것이죠. 근데 이런 일련의 흐름을 무시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치열하게 한번 정말 토론을 통해서 이 경계와 어떤 각자의 나름의 의미 이것을 외면하고 서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접점을 계속 찾아나가면서 서로에게 득이 되는 그래서 정말 한글 서예의 어떤 새로운 그 무언가를 치고 나가는 그런 것도 저는 좀 기대를 해보게 돼요.
김종건, 봄날, 2020, 인쇄용지에 붓펜, 노래 : 방탄소년단
각고의 노력으로 이 전시를 준비하셨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전시 오픈식을 하지 못하고, 문이 닫힌 상태로 온라인 전시를 먼저 하게 됐어요. 곧 이제 문을 활짝 열고 관객들이 몰려들텐데, 많은 관객들이 와서 이 아름다운 전시를 보고 “아 서예가 이런 것이구나..“ ”서예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구나.“ 이런 큰 반향들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