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개관30주년과 광주은행 창립50주년 기념을 기념하여 7월 18일부터 8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김세종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이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6년 서예박물관에서 개최되었던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문자도·책거리>전시에 이은 두 번째 민화전시이며 국립아시아전당과 공동으로 주최하였다.
김세종 컬렉터
지난 20여 년간 김세종 컬렉터가 문자도, 책거리, 화조, 산수, 삼국지, 구운몽, 까치호랑이, 무속화 등 민화만을 집중적으로 수집한 작품 중에서 70여 점을 엄선하여 일반에게는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관동팔경도 8폭 중 1폭 57×31.5cm
이번 전시회를 통해 서와 화를 아우르는 필묵의 전통이 계승되면서도, 조형적 창신성, 공간과 시각의 자유로움, 해학과 포용이 담긴 민화만의 미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특히 조선시대 봉건질서의 해체와 전환현상을 정확하게 담아낸 조형언어로서 민화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민중이 그린 우리 그림’이라는 이유로 소박함만 부각하는 일부의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자도
조선시대 수묵의 전통이 17세기 후반 겸재 정선으로부터 단원 김홍도로 이어지는 ‘실경의 시대’로 정점을 이루었다가 19세기 이후 관념적인 산수로 쇠락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그러나 이같은 통설의 한계는 조선미술을 문인 사대부의 문인화와 왕조시대의 화원체계에 근거하여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조선사회는 18세기 후기이후 농업 경영에 성공한 부농의 등장과 시장경제의 발달이 민간 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졌고 이에 근거한 신분체제의 해체와 새로운 부유층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하는 ‘민화’의 등장은 소위 궁중의 의궤화와 묵죽과 산수에 근거한 문인화의 정신과 형식을 해체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는 시민사회의 등장과 함께 고전주의의 양식의 전범들이 깨어지면서 개성적인 시각과 입체파, 다다이즘 등 해체의 시선이 등장하는 서구 미술사의 흐름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소상팔경도
당시 조선은 사회구조의 근간인 신분제도가 와해되면서 조형언어의 창작주체마저도 프로작가로 저변이 넓어지면서 교체되고 있었다. 더욱이 양반 질서가 제도적으로 사라진 이후에는 그림에 있어서도 문인화의 주체자인 문인(文人)은 물론 화원화가나 불모(佛母)출신들과 그 급과 같은 창작주체들이 민간(民間)으로 진출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민화라고 부르는 그림을 제작하였던 것이다.
그간의 많은 연구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민화를 본(本)그림이나 무명작가의 삼류그림으로 치부하여 폄하되기 일쑤였고 역사적 재평가와 새로운 미학적 인식의 지평이 완전히 열렸다고 할 수는 없다. 민화를 홀대하는 또 하나의 이론은 궁중 민화의 발전을 주장하는 역차별 현상이다. 삼국지도 8폭 중 1폭 101×37cm
왕실에는 왕(王)의 존엄을 상징하는 용(龍)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고, 이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민간으로 확산되어 코믹하고 익살스런 민화 용(龍)의 그림으로 마구 비틀어지고 해체되고 재구성되어지는 것이다. 용의 도상이 존재하는 곳이 왕실이냐 민간이냐 하는 공간(空間)의 차이가 서로 다른 형상의 용을 만들었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림의 가치를 다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민화를 폄하하는 논리와 반대로 민화의 가치를 선양하면서 그 근거를 우리 민중이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도 미술의 평가기준을 사회적 신분가치에서 찾고자 하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이 같은 논리의 귀결은 결국 민화를 ‘못 그렸지만 우리 그림이기 때문에 사랑해야하는’ 소박한 민족감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화조인물도
지금까지 민화의 인식에 이런 부분들이 있었다면, 결국 진정한 ‘민화’의 부흥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새로운 담당계층이 등장하여 만들어지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미학을 발견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며, 이는 미학적 가치의 역사적 변화라는 세계적인 보편성을 우리 민화 속에서 찾아내는 일과 맞닿아 있다. 이 같은 작업을 완수할 수 있다면 우리 민화가 문화적인 독자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을 동시에 달성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 의의는 이러한 민화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들을 탈피하여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제시하는 데에 있다.
이번 전시에서 살펴보는 조선민화는 서(書)와 그림의 결합이 만들어 내는 융복합적인 조형공간, 원근법적 질서를 탈피한 역원근법의 구성, 다시점(多視點)으로 대상을 전복하고 해체시키는 공간경영, 수묵과 채색의 비유기적 조합, 전범이 없는 자유로운 필획 등으로 한국미술의 현대성을 뚜렷하게 각인시키면서 전통 서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거리
그러나 민화시대의 자생적 발전은 일제에 의한 침략과 196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화’의 부정적 영향으로 서양문화의 일방적인 숭배현상이 일어나면서 좌절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제 서구문명의 한계가 노정되고, 서구 현대미술이 도달한 지점들이 거리낌 없이 비판되는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새로운 미술의 대안으로 민화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전시는 서와 화를 아우르는 필묵의 전통이 계승되면서도, 민화의 조형적 참신성, 공간과 시각의 자유로움, 해학과 포용의 미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계기에서 한국의 서예와 현대미술이 만나는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통일 한국의 새로운 문화적 비전과 함께, 나아가서는 아시아는 물론 서구와 제 3세계 사람들에게도 한국미술이 보여주는 새로운 경지가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 것이다. 2018. 8. 13 글씨21 편집실 <전시 정보> 김세종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 2018. 7. 18 ~ 8. 26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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