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전시장 전경
이길원 作
글씨 21에서 기획하고 아트센터 일백헌에서 주최하는 2020 창작지원 프로젝트가 이길원展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이번 전시를 위해 오랜만에 붓을 들었다는 이길원 작가는 상처·불안·걱정 등 어두운 감정과 자유를 상징하는 ‘새’를 통해 작가의 예술세계를 드러낸다.
이길원 作 겨울아이 /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어떤 대상에 몰입하게 되면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한 가지에만 정신이 팔려 ‘눈이 멀었다’는 작가는 그 결과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상실감과 공허함을 얻게 된다는 경험에 비추어 진한 검은색으로 두 눈을 칠했다. 어두운 색채와 텅 비어있는 눈으로 완성된 <눈 멀다> 작품은 누구나 감추고 있는 내면의 상처를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슬픈 크리스마스> 작품은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지만 정작 본인은 웃지 않는 ‘슬픈 광대’ 피에로의 모습에 착안하였다. 앙상한 가지 아래 홀로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을 그린 <겨울 아이> 작품은 외롭고 고독한 느낌을 준다.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작품은 작가가 외부활동을 단절했던 시절, 다가가기를 고민하는 아내의 모습을 그려냈다. <나무와 사람>·<선사시대>·<자연재앙>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파괴된 자연을 떠올리며 작업한 작품도 있다. 작품 하나하나 모두 이야기가 보인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이길원 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는 작가가 꿈꾸는 모습으로 작가를 대변한다. <길 찾기> 작품은 어느 길이 옳은 선택인지 매일같이 고민했던 지난날 작가의 모습을 새에 투영하였다. 이외에도 회화작품 <검은새>와 <흘겨보다>, 전각작품 <물고기와 새>, 설치작품 <새> 등 작품 소재로 새가 많이 등장한다. 작품 안에 쓰인 49, 50이라는 숫자는 작가의 나이를 의미한다. 작가는 온전한 상(象)을 똑같이 그리기보다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특징적으로 잡아내는 것을 선호한다. 캐리커처와 같이 대상의 특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작가만의 예술로 표현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그만큼 즐거운 일이다. <블록쌓기> 작품의 거미와 새, 그리고 작가와 인연을 맺은 인물작품을 통해 그 즐거움을 확인할 수 있다.
이길원 作
이길원 作
작가가 50년 인생을 보내면서 얻게 된 하나는 ‘지금, 오늘, 후회 없는 하루를 살자’이다. 그래서 얻게 된 ‘설조산방(雪爪山房)’ 당호는 작가에게 큰 의미가 있다. 눈밭에 찍힌 갈매기 발자국을 보며 보이지 않는 갈매기를 찾는다. 그런데 이 발자국마저 눈이 녹으면 사라진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도 좋지만, 지금의 내가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현상보다 본질에 집중하게 된 순간 작가의 뜻이 가는 대로 붓이 움직이며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해졌다고 고백했다.
서예를 전공하고, 전각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이길원은 서예·전각·회화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 중 아픔과 슬픔, 미움과 원망 등 내면의 어두운 감정에 주목하여 예술로 소통하는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2020. 6. 2 객원기자 최다은
<전시 정보> 2020 글씨21 기획 일백헌 선발작가 초대전 이길원 기간 : 2020. 5. 26(화) ~ 6. 1(월) 장소 : 아트센터 일백헌 전시문의 : 02-2138-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