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 선비정신 · 현대회화의 접목, 새로운 현대문인화의 탄생
전시장 전경
시서화인(詩書畵印) 문인화가로 활동 중인 하영준 작가의 개인전이 지난 6월 10일(수)부터 23일(화)까지 2주간 인사동 갤러리H에서 열렸다. <‘타고난 향기(天香)’를 듣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는 현대 회화의 조형성을 한국의 선비정신과 접목시켜 한국 현대문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2016년 사공도의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을 주제로 열렸던 전시가 학자로서 예술철학을 작품에 담아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펼쳐 냈다.
가시장미-3 · 44x132cm
전시 제목이자 주제인 ‘타고난 향기(天氣)를 듣다’의 향기는, 동양회화가 추구하는 형식을 초월한 운치(韻致)를 표현한다. 작가는 서문을 통해 ‘동양예술을 감상할 때는 그 안에 은은한 향기가 떠도는 것과 같은 오묘한 운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문인화의 ‘향기’는 꽃의 향기가 아니라 작가 마음의 향기라고 할 수 있다. 향기는 그릴 수 없는 것이지만 작가는 자신의 향기를 작품에 표현할 수 있어야만 운치를 얻을 수 있고, 그 작품 역시 감상자에게 향기와 여운(餘韻)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작품에 드러나는 향기는 나의 영혼의 울림이라 하겠다.’라고 밝혔다. 福-1 · 157x128cm
그럼 하영준 작가만의 타고난 향기란 무엇일까? 그의 타고난 향기는 첫번째로 ‘한(恨)’을 들었다. ‘돌이키지 못할 슬픔을 돌돌 말아 놓은 채 마냥 어루만지는 것’이라며 그것을 ‘처절한 그리움’이라고 한다. 그 두 번째로 ‘적막하여 어찌할 수 없음’을 들었다. 이것은 개인의 슬픔이 우주자연의 섭리와 연결되어 있는 경계라고 말한다. 인간의 유한한 생명, 달이 차고 기우는 그 끝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영원성을 빗대어 울적해 하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의 감정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늘소리-1 · 40x32.5cm
이처럼 매력적인 작품세계를 가진 그는 동양철학, 한국의 선비정신, 현대회화의 조형성을 접목시켜 그것들이 한국 현대문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한다. 본인만의 견고한 철학, 그 오랜시간의 연구, 그리고 하영준 만의 ‘향기’를 불어넣은 작품은 어떨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한 그리움’과 ‘적막하여 어찌할 수 없는’ 본인만의 향기를 작품에 표현했다. 그 향기를 담담히 드러냄으로써 감상자들 개개인이 타고난 자신의 향기를 들을 수 있기를 작가는 희망했다. 매화인상-1 · 187x140cm
다소 어두운 ‘처절한 그리움’과 ‘적막하여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을 화면을 가득 채운 무거운 필선으로 대신한다(<매화오복>, <매화인상-1> 등). 또한 아름다운 꽃의 대명사로 불리는 장미지만 위험한 가시도 장미의 타고난 숙명적 운명이라는 점에서 인간 모두에게 주어진 어두운 감정을 받아들이게 된다(<장미와 가시> <가시장미>). 타고난 향기에 대한 사유가 조형의 언어로 표현된다. 나의 향기는 무엇으로 정의내릴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하늘소리-2 · 75x187cm
바람소리-3 · 41.5x31.5cm
<섬진강 매화꽃>에서는 서예적 필선과 함께 철저히 회화적 요소로 완성된 매화를 확인할 수 있다. 갈필과 대조되는 물을 머금은 나뭇가지의 조화가 특징이다. 또한 매화에서 느낀 인상을 간결하고 단순하게 표현했다.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 작가가 느낀 감정에 더 집중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난향사시>와 <난초 인상> 시리즈에서도 나타난다. 이외에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감싸고 있는 바람 소리, 하늘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전시장 전경
하영준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예술철학전공 박사를 졸업했다. 1995년 동아미술제 문인화부분에서 대상 및 1996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한국화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개인전 12회와 단체전 및 초대전 300여회를 열었으며 2010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동방대학원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학과 회화예술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 블로그 : “시로써 그림을 탐하다” (https://blog.naver.com/hhj0215)
2020. 7. 8 글씨21 편집실
<전시 정보> 하영준 개인전 ‘타고난 향기(天香)’를 듣다 장소 : 갤러리H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10) 갤러리H 문의전화 : 02)735-3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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