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보다 먼저인 마음 _ 그 마음을 닮은 글씨와 그림
전시장 전경
옛 동아시아에서는 글씨와 그림으로 사람됨됨이를 평가하곤 했다. 그림과 글에 인격이 드러난다고 본 것이다. 가볍게 생각하면 목소리(言)나 걸음걸이(行)처럼 눈에 금방 보이는 일이기도 하고 잘 숨겨도 결국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송곳처럼 드러나고마는 성격의 표현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서예(書藝)와 회화(繪畵)는 보다 깊은 고도의 철학적 의미를 갖고 있다. 김선두 · 느린풍경-약산길 · 140x60cm
오민준 · 첫 출발 · 138x60cm
박순철 · 점점 아이가 되어가는 아버지 · 97x67cm
한나라때 양웅이란 사람이 ‘글씨는 마음을 그린 것이다(心畵)’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마음의 그림인 글씨란 무엇인가. 글씨는 형태를 가진 조형이며, 글씨를 쓴다는 행위는 창작자의 의도와 기교가 포함된 행위를 말한다. 이때, 붓을 휘둘러 모양만을 만들어 내는 기교가 아닌, 창작자의 뜻이 세워진 마음 아래 붓이라는 도구를 들어 마음속에서 이미 완성된 대나무를 그려 내는 일, 바로 그것이 왕희지가 말한 “뜻이 붓보다 먼저 있어야 하고 글자는 마음 뒤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글씨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마음으로 구상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의재필선(意在筆先)이다. 박방영 · 들길에서 · 140x60cm
유미선 · 기억-마당 · 143x64cm
박종갑 · 코로나 장막-인류의 길 · 140x60cm
뜻을 먼저 세우고 마음속의 대나무를 완성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참다운 대나무를 그리는 일을 마디와 마디를 나누고 잎에 잎을 겹쳐 모양을 닮게 그리는 형사(형사)가 아니다. 모양의 대나무가 아닌 마음속 대나무를 깨닫기 위해선 마음을 다시 살펴야 한다. 득실을 따지거나 이름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 고요하고 온전한 순수한 자연같은 마음을 먼저 얻어야 그 마음 속 대나무를 완성할 수 있다. 그 과정은 결코 치열하고, 소란하고, 허둥거리며 획득되지 않는다. 고요하고 차갑고, 외로운 절제와 수양의 행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게 얻어진 진짜 마음은 아마도 자유로울 것이며, 스스로(自) 그러한(然) 자연일 것이다. 김병기 · 배추밭에서는 인삼도 잡초다 · 140x60cm
윤대라 · 죽은 엄마의 옷을 입고 외다리 꼬꼬와 만경강을 걷는 여자 · 137x60cm
조환 · 묵희 · 140x70cm
이렇게 획득된 자유로운 마음을 획에 담아내야 한다고 믿는 마음은 그림과 글씨가 공통적으로 추구한 모습이었다. 모필을 운용하고, 호흡으로 농담을 조절하는 동안 창작자의 맥박은 저절로 끊어지고 이어지며 화폭에 드러난다. 그 모습을 그림과 글씨에서 보고자 하며, 보인다고 믿었기에 서여기인(書如其人), 화여기인(畵如其人)이라 말하며 그 사람과 같은 글씨와 그림이라 불렀다. 여태명 · 저 달, 앞 산 · 138x60cm
정고암 · 사랑 · 93x63cm
동아시아의 글씨와 그림은 다르지 않았다. 오늘 <筆墨之間-한글담은 서화전>에서 만난 작품들은 그동안 우리가 놓쳤던 동아시아 필묵의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에 대해 예술가들이 친절하게 알려주는 아름다운 소개다. 게다가 모두 ‘자기 다운’ 모습의 글씨와 그림으로 조형적 차원의 아름다움을 넘어 철학과 예술정신까지 보여주니 더욱 의미있고 보다 가치있다.
2020. 09. 24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 김최은영
<전시 정보>
筆墨之間 - 한글 담은 서화전
∥전시1∥ 전시 일정 : 2020년 7월 8일(수) - 8월 8일(토) 전시 장소 : 주홍콩한국문화원 7층 ∥전시2∥ 전시 일정 : 2020년 9월 12일(토) - 10월 4일(일) 전시 장소 : 복합문화지구누에(완주문화재단)
참여 작가 : 김병기, 김상철, 김선두, 김선형, 김성희, 김 억, 나형민, 박방영, 박순철, 박원규, 박종갑, 백범영, 서은애, 여태명, 오민준, 유미선, 윤대라, 윤점용, 윤종득, 이길우, 이동환, 이상현, 이선우, 이지선, 이철량, 이호억, 정고암, 조순호, 조 환, 채희원 주최·주관 : 주홍콩한국문화원, 경희대학교현대미술연구소, 복합문화지구 누에 후원 :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 완주문화재단 / 전주한지산업지원센타 기획진행총괄 : art communication 완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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