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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숙 작가 온라인 전시
글씨21 기획 창작지원프로젝트선정작가 이재숙 작가 초대展* 본 전시는 2020. 5. 19(화) ~ 5. 26(월)까지아트센터 일백헌에서 개최되었으며,갤러리21에서 온라인 전시로9. 24(목) ~ 11. 24(화)까지두 달 간 연장 전시합니다.전시장 전경효림 이재숙(曉林 李在淑)의 일백헌 초대전에 부쳐동도 이재철(同道 李在喆) 글자 하나하나의 근량을 달아 비교해 보고이 글자 저 글자 바꿔 넣어 흔들어 보고글씨 한 줄 바로 쓰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내 목소리 내 색깔은 그저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바스락 바스락 네모네모, 종이를 만지는 일.미끄덩 미끄덩, 싸악 싸악 먹을 가는 일.흥청 흥청 붓질 따라 쏟아지는 새까만 오묘함.넋 놓고 바라보는 세상없는 고요함.이 모두가내겐 온통 즐거운 일이다.세상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내 안의 즐거움.그 즐거움에 혼이 뺏겨 멍청히 있는 내 모습을내 인생 가장 빛나는 경치로 여기며 살 것이다.- 이천이십년 봄날, 효림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위의 글 ‘효림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작가가 일백헌의 초대로 첫 개인전을 펼치며 내 놓은 변(辨)이다. 글 한줄 한줄에서 작가가 평소 공부하고 글 쓰는 모양이 그림처럼 보인다.또한 얼마나 노심초사 글자 하나, 획 하나, 줄 하나에 신중하며 따지고 재고 깍고 다듬고 하여 지면에 새기는지 알만하다. 절차탁마(切磋琢磨)한다는 말이 딱 여기에 맞는 말일 것이다. 더불어 효림이 묵필과 몰아일체의 경지를 추구하며 서예를 대하는 삶의 태도와 금번의 개인전을 어떻게 여기는 지도 엿볼 수 있다.고풍스럽고 아담하며 꼭 효림과 어울리는 일백헌에서 전시 작품을 보다가 그 한 켠에 붙여 놓은 이 작가의 변을 몇 줄 더듬었을 때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라는 논어 위정편의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 ‘배우기만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헛되고 생각만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근묵자(近墨者)에게 얼마나 경계하는 말이던가! 무심히 글씨를 쓰며 공부하되 깊이 생각하기가 쉽지 않고 뜻은 높고 생각은 거대하나 많이 쓰지 않아 필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하던가! 효림의 작품을 보면 여유 있는 공간과 안정된 자형의 배치와 지면의 구성은 오랜 공부와 타고난 작가의 감각에 더해 이러한 연구하는 자세가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작가는 처음 일백헌에 갔던 날, 첫 눈에 반해 거기에서 전시를 꿈꾸었다고 한다.그 분위기를 고향 집으로 여기고 부모와 자식, 동생, 언니, 고모로서 건네고 싶었던 이야기들로 채워보리라고 결심한 것이다. ‘오직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여 정사(政事)를 베푼다’ 는 서경(書經)의 말을 바탕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단위인 가족관계에서 발견한 원리적 이치로부터 작금의 우리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원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그것을 작품의 줄기로 삼은 듯하다. 아마도 그것은 작가가 그러한 것들을 고리타분하게 취급하며 점점 소홀히 해가는 세상을 향해 말을 걸어볼 만큼 큰 결기와 에너지를 주었을 것이다.그러한 작가의 뜻은 작품에서도 잘 보여진다.자녀를 양육하는 마음을 돌아보는 ‘孟子 公孫丑句’와 ‘過庭之訓’이 그러하고 큰오빠의 여유로운 노년을 바라는 ‘白樂天 池上篇’이며 정약용의 시 ‘獨笑’, 어머니의 함자를 작품으로 한 ‘凜凜’ 이나 동생을 생각하며 한 ‘老友’, 둘째 오빠가 더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이나 소동파의 시로 동생과 달을 같이 보고자 하는 우애를 나타내는 ‘水調歌頭句’ 등은 이러한 작가의 절절한 가족애와 함께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그 한줄기로 따스하며 잔잔한 에너지가 흐른다. 작가는 전예해행(篆隷楷行)의 작품을 두루 하며 서체간 병행과 조화를 추구한다. ‘皆吾所好 盡在吾前’, ‘蘇東坡 水調歌頭句’ ‘茶山丁若鏞先生詩’, 등의 행서는 활달하고 기운차며 ‘梅花屛題圖’, ‘菜根譚句’ 등의 해서는 부드러우면서도 편안함과 안정감을 갖고자 한다. ‘孟子句’, ‘過庭之訓’, ‘崔子玉 座右銘’, ‘離騷經句’, ‘務本·孝弟·爲仁’ 등등의 다수의 작품에서는 갑골문 소전 대전 등 상고서체(上古書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지향하면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즐기는 모습이다.왕희지 난정서 저수량본 임서와 전각 탁본, 장맹룡비 등의 작품에서는 그간 오랜 시간 수련해온 고단했을 학서인(學書人)의 여정을 동병상련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7년 ‘먹을 벗하는 사람들 전(展)’을 시작으로 참여해 오면서 오창석 수진택허당기, 산씨반, 원정묘지명, 희우정기 등등의 여러 비첩을 학서 해오며 얼마나 많은 애정과 각고의 시간을 단련해 왔던가. 그 시간과 일련의 과정은 자체로 하나의 시(詩)며 글이라 할만하다.돌이켜 보면 운재 이승우 선생님의 문하에서 20여년을 동도(同道)로서 함께하는 중에 효림은 그 신중함과 특유의 안정감으로 학서 과정을 잘 소화하며 늘 동도들의 가야 할 길을 꾸준함과 직접적인 그 성과로 보여주었다. 머뭇하는 듯이 주저하는 듯이 보이나 끈기 있게 공부하고 자신의 길을 탐색하며 뚜벅 뚜벅 나아가는 모습은 동도들에게 자극을 주며 일깨우는 바가 많다. 이제 원하던 일백헌에서의 개인전으로 어떤 경계를 넘으며 새로운 시작으로서 과제를 받은 것이니 만큼 효림이 가는 길이 기대가 된다. 오래도록 멀리 가야할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동도로서 응원하며 그간 공부하며 곱씹었던 인류의 영원한 스승 공자의 말을빌어 두서없이 벌여 놓은 글을 맺고자 한다.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비유하자면 산을 만들 때 한 삼태기의 흙을 붓지 않아 멈추는 것도 내 스스로 멈추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땅을 고를 때 한 삼태기의 흙을 더하여 나아가는 것도 내가 앞으로 가는 것이다.’한 줌 흙이라도 거듭하면 산이 되지 않겠는가! 2020년 8월 입추절,烽火山 아래에서최자옥 좌우명(崔子玉 座右銘) · 160x210cm · 종이에 먹孟子句 · 40x60cm · 종이에 먹一讀 二好書 三思索 · 25x60cm · 종이에 먹苦難如玉段磨鍊爾完 · 35x160cm · 종이에 먹過庭之訓 · 100x70cm · 종이에 먹茶山 丁若鏞先生 詩 · 100x70cm · 종이에 먹왕희지 난정기 저수량본 임서 · 35x164cm · 종이에 먹務本,孝弟,爲仁 · 35x35cm · 종이에 먹採根譚句 · 140x35cmx2 · 종이에 먹學書 張猛龍碑 · 170x80cmx3 · 종이에 먹一(오로지) · 28x42cm · 종이에 먹老友 · 35x45cm · 무명천에 먹臨 茶山의 매화병제도 · 20x30cm · 종이에 먹放一着退一步當下心安 · 30x40cm · 종이에 먹蘇東坡 水調歌頭句 · 30x22cm · 종이에 먹凜凜하시게 · 40x50cm · 종이에 먹皆吾所好,盡在吾前 · 70x140cm · 종이에 먹굴원 이소경구 · 60x160cm · 종이에 먹효림필경 · 30x50cm · 종이에 먹白樂天 地上篇 · 32x55cm · 종이에 먹獨樂園記句 · 30x50cm · 종이에 먹\'글씨21\' 앱을 설치하시면좋은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하실 수 있습니다.앱 설치 >> 안드로이드(삼성, LG) 글씨21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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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 김양동21세기 서예문화 생태계를 말하다수묵헌 김찬호(미술평론가, 경희대교육대학원 교수)20세기를 넘어 21세기 초반을 달리고 있다. 2020년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 전지구적 위기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인 팬더믹pandemic 현상은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에 패러다임적 전환이 필요하다. 글씨 21에서 기획한 담론 21세기 지금의 시대는 서예문화 생태는 살아있는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논의했다. 담론의 중심은 한국 서예 원형을 통한 정체성identity 찾기다.燕巖 선생 文論 · 210x70cm · 1985년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筆歌墨舞 · 208x144cm · 2004년象村 申欽 詩 雜興 · 48x75cm · 2008년한민족문화의 시원-태양과 신조 · 149x210cm · 2008년역사 속에서 기호와 상징은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우리 사이를 이어 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시미술의 기호와 상징에 대한 탐구는 오늘날 서예문화 발전에 많은 영감이나 내용을 채워줄 수 있다. 특히 김양동 교수님이 쓴 한국 문화의 원형을 탐색한『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양동 교수는 “서예의 출발이 획이다. 중국도 앙소문화의 도편陶片을 중국 한자의 시발로 보고 있고, 그 자체를 서예의 시초로 보고 있다. 그것을 보고, 한국의 서예의 기원도 광개토대왕비, 청동기 시기의 암각화 등 신석기문화에서 서예의 기원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점에서 출발했고, 빗살무늬토기에 주목한 이유다.”라고 했다. 우리 선사 문화를 통해 문자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김양동 교수는 ‘빗살’에서 ‘빛살’로의 해석의 전환을 해 놓았다. 교수님의 연구는 고고학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하나의 징검다리다. 그 하나의 징검다리가 누구나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고대문화가 오랜 삶의 누적에서 형성된 사유의 축적이라면 그 안에는 반드시 어떤 원리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 고대문화의 기원, 발생, 형성, 전개가 중요한 열쇠다. 자물쇠가 있어야 열쇠가 있고, 열쇠는 자물쇠를 열고 닫을 수 있는 기능을 했을 때 의미가 있다. 서예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 이는 서예에 대한 지평을 확장 시키는 작업이고 그런 점에서 서예 생태계에서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은 중요하다.天風海月 · 48x38cm · 1995년八分小篆歌 · 184x270cm · 2004년예양동교(汭陽東橋) · 43.7x45cm · 2005년 · 野松미술관 소장光前啓後 · 70x210cm · 2016년 · 계명대학교 소장지금의 한국서예 모던modern 한가? 21세기 예술은 근대를 넘어, 탈근대로, 동시대 미술로 변화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서예는 여전히 근대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비평과 담론의 부재다. 서예의 근대성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작품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친숙한 대상을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서예 근대성에 대한 담론이 필요하다. 김양동 교수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에 서’에서 한국 근현대서예를 조명하는 글을 발표했다. 한국의 서예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서예의 근대성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미래의 서예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그는 서예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이다. 개념이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예술에서의 창작은 전통을 해체하면서도 원형을 추구하는 것이며, 원형을 추구하면서도 현재성을 담아내려는 노력이다. 원형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전통을 복원하자는 뜻이 아니다
이길원 작가展 2
글씨21 기획 창작지원프로젝트선정작가 이길원 작가 초대展* 본 전시는 2020. 5. 26(화) ~ 6. 1(월)까지아트센터 일백헌에서 개최되었으며,갤러리21에서 온라인 전시로8. 7(금) ~ 10. 7(수)까지두 달 간 연장 전시합니다.글씨21 담론전시장 전경石甫 李吉遠의大巧若拙과 寜醜毋媚의 실현이 영 철(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총장)1. 들어가기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러나 만남의 인연은 쉽지 않아 일찍부터 헤아릴 수조차 없는 길고 긴 시간인 ‘겁(劫)’으로 표현하였다. 흰두교에서는 ‘한 겁’을 43억2천만년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가로×세로×높이가 각 100m인 바위를 100년에 한 번씩 스치고 지나는 천사의 옷자락에 그 바위가 다 달아 없어지는 시간을 1겁이라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옷깃을 스칠 수 있는 인연은 500겁을, 사람과 사람이 하루 동안 동행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데는 2천겁의 세월이 지나야 하며, 이웃으로 태어나 살아가려면 5천겁의 인연이 되어야 하고, 하룻밤을 같이 지낼 수 있으려면 6천겁이 넘는 인연이 있어야 하여, 억겁의 세월을 넘어서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인연이라고 한다.이렇듯 긴 시간 인연의 ‘겁’을 지내야 만날 수 있다는데, 석보 이길원 동학(同學)과 필자와는 근 20여 년 전에 만나 지금껏 교유(交遊)하고 있으니 과연 전생에 몇 천만겁 이상의 인연은 쌓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인연의 과정에서 천학비재인 나에게 전시회 후일담(後日談)을 요청하니 어떻게 사양할 수 있겠는가? 그저 어리석고 부족함을 뒤로한 채, 우리의 인연에 답하고자 한다. 2. 대교약졸(大巧若拙)의 실천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4장에서 “아주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아주 교묘한 것은 서투른 것 같고, 아주 말 잘하는 것은 말더듬는 것 같다(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고 말하였다. 이렇듯 우리의 주된 관심사인 ‘대교약졸’은 기교와 서투름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음악, 미술, 공예, 건축 등의 예술분야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노자사상의 적자라고 할 수 있는 장자(莊子) 또한 이런 관점에서 ‘대교약졸’을 바라보았다.즉 『장자(莊子)』 거협(胠篋)편에서 모든 인위적인 기교를 완전히 부정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갔을 때 “천하 사람들은 비로소 진정한 기교를 지닐 수 있으니 큰 교묘함은 마치 서투르게 보인다(而天下始人有其巧矣 故曰大巧若拙)”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고대 음악의 달인인 사광(師矌)의 귀를 막아야 비로소 사람들의 귀가 밝아질 것이고, 눈이 지극히 밝은 이주(離朱)의 눈을 붙여놓아야 비로소 천하의 사람들이 밝음을 지니게 될 것이며, 최고의 장인인 공수(工倕)의 손가락을 비틀어 버려야만 천하에는 비로소 사람들이 교묘함을 지니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이 말은 모든 인위적인 기교를 완전히 부정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진정한 기교를 알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이렇듯 ‘대교약졸’의 해석은 대체로 인위적인 ‘교’와 무위자연의 ‘졸’을 서로 대립적으로 상정하고, 인위적인 기교미(技巧美)보다는 자연스러운 졸박미(拙樸美)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 이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또 다른 해석으로 ‘대교약졸’에서의 ‘졸’이 단순히 ‘교’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교’를 무조건 배척하고 부정하는 ‘졸’이 아니라, ‘교’를 포괄하는 ‘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의 ‘졸’은 그냥 단순히 서툰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서툰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기교의 최고 경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졸’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선생 『청음집』 38권의 「용졸당기(用拙堂記)」라는 글에 보인다. 여기에 보면 민성휘(閔聖徽, 1582-1647)라는 분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충청도 가림(嘉林)에 터를 잡아 집을 지었고, ‘용졸(用拙)’이라는 자신의 호를 따서 ‘용졸당(用拙堂)’이라고 당호를 붙인 뒤, 청음선생에게 기문(記文)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청음선생은 “졸이란 것은 덕이다.(拙者 德也)”라고 해석하고 있다.우리는 보통 ‘졸’은 ‘어리석다’ ‘서툴다’ 등의 뜻을 갖는 글자로, 뛰어나지 않고 별 볼일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서툴고 어리석기 때문에 꾸민 데 없이 수수하며 자랑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재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은 그 재능을 쉽게 드러내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으므로 언뜻 보기에는 도리어 서툰 사람 같아 보인다는 뜻이다.그렇다. 석보는 분명 ‘졸’을 추구하며 실천하는 사람이다. 일찍이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나 어느 곳이나 누구에게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심지어 긴 시간을 은둔(隱遁)하며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한 서예가이다. 오늘 그의 편린(片鱗) 역시 ‘사랑하게 되면 닮아간다’는 말과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성어가 대변해 주고 있다. 더욱 갈수록 시끄럽고 혼란스러워지는 서예계에 묵묵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성실하게 ‘대교약졸’을 실천하는 예술인이다. 3. 석보예술의 정체성요즘 우리 서예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한국서예’라는 말로 중국이나 일본과 차별화된 한국적인 서예미의 특성을 찾으려는 노력과 고민의 흔적이 숨어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는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형성된 민족적 정체성과 자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서예는 중국이라는 틀을 완전히 벗어나서 생각할 수는 없겠다. 역사 문화 종교 학문 등 거의 전 영역에서 우리나라에 끼친 중국의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자문화를 공통분모로 하면서도 우리나라는 우리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해 오고 발전시켜 나왔음도 사실이다.우리는 한국서예를 탐구할 때,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서예미를 제시하려고 애써왔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이 우리의 탐구를 지체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서예가 중국서예와 흡사하더라도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면 우리의 서예가 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우리 서예의 독특함만을 부각시키면서 중국의 영향을 애써 배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중국의 지대한 영향에서 탄생되었다 해도 우리의 선택에 의해 취한 것이라면 우리의 서예가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같은 문화권이라고 해도 중국과 일본인이 바라보는 아름다움과 한국인이 바라보는 아름다움이 다름은 틀림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또한 한국서예의 미를 전통적인 기법에서에서만 찾는다면, 한국적인 서예미는 생명력을 잃어 박제화 될 수도 있다. 어설픈 옛것 흉내 내기는 서예가의 활력을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서예가 자신이 한국적인 서예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한국적인 미라고 말하는 ‘무작위의 작위’나 ‘자연의 미’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탐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만이 다양함과 함께 활력과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아래는 석보의 작품을 살펴 그 특징을 찾아보겠다.서예작품으로 <기장산하(氣壯山河)>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용묵(用墨)과 율동감이 돋보인 운필(運筆)의 작품이다. 또한 <고시일구(古詩一句)>는 본인의 작품 중 <령추무미(寜醜毋媚)>의 실현인 듯하다. 전각의 작품으로 <설조산방(雪爪山房)>은 균형 잡힌 구성과 여백이 돋보이고, 그리고 초형인의 <됴룡뇽>과 <물고기와 새>는 도필로 서화동원(書畫同源)을 이해하게끔 한다. 이들 모두는 정연한 균제(symmetry)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주도면밀한 장법과 오랜 시간의 정신 수양의 결과물일 것이다.아울러 그림 <상(象)>, <거울아이>,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길 찾기>, , <자연재앙>, <슬픈 크리스마스> 등에서 보듯이 극단적인 사실성보다는 ‘무계획적’ 또는 ‘자연 그대로의’ 소박성이 돋보인다. 더욱 ‘새(鳥)’를 주제로 하는 작품 <흘겨보다>, <검은 새> 등은 채움과 비움의 미학이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결과적으로 오늘 보여준 석보의 작품들은 ‘대교약졸’의 아름다움으로 정련된 소박미와 심오한 단순미, 그리고 숙련된 평담미(平淡美)에 분산된 통일미, 또한 배경과의 조화미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대중이 선호하는 서예미와 석보 자신만의 주체성, 그리고 현재성이 작품에 녹아 들어 있다. 단지 일부 예술가나 서예가가 서예를 추상예술이나 선(線)의 예술에 구속시키고 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문자 자체가 추상적인 부분이 없지 않고, 선을 ‘긋는다’는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일리가 전혀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자의 가독성(可讀性)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서예가 문자의 점획(點劃)이 어울려 조화로운 자형을 표현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적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점 계속적인 화두로 삼았으면 한다. 4. 나가기이길원은 인품의 절개와 지식의 함양을 중시하는 서예가요 전각가이며 화가이고 다도인(茶道人)이다. 다시 말해서 서화각다(書畵刻茶)의 사절(四絶)로 불리는 문화와 예술의 모든 부문에서 뛰어난 ‘퓨전 아티스트’이다. 어릴 적부터 타고난 천성(天性)을 바탕으로 박학다식(博學多識)함을 더해 그의 예술에 승화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의 편린(片鱗)들을 어떻게 일일이 나열할 수 있겠는가.필자의 아둔함을 탓하며 장석주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구절로 글을 맺고자 한다.“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중략)” 東方文化大學院大學校 總長 李永徹 두손모음2020년 8월 寧麤毋媚 추할지언정 꾸미지 마라 · 105x35cm氣壯山河 높은 산, 큰 강처럼 기세가 웅장하다 · 135x34cm松菊猶存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히 그대로다 · 67x60cm五月松風 · 44x135cm검은새 · 45x53cm象 · 117x91cm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 22x34cm겨울아이 · 22x30cm길찾기 · 25.5x17cmOld Clock · 31.5x20.5cmSeal · 35x23cm자연재앙 · 96x100cm슬픈 크리스마스 · 19x27cm흘겨보다 · 22x26cm선사시대 · 34x78cmShopping · 27x60cm알베로 · 25x20cm이길원 作이길원 作玄江 朴洪晙先生님 · 8x11cm송석훈님(커피 디자인) · 6x11.5cm이귀연님 · 8x6cm박경복님 · 8x8cm이길원 作이길원 作도롱뇽(초형인) · 4.5x4.5cm물고기와 새 · 3.5x3.5cm새 · 15x25cm블록 쌓기 · 6x6cmx7元重擧先生詩 · 15.5x25cm이길원 作
이길원 작가展
글씨21 기획 창작지원프로젝트선정작가 이길원 작가 초대展* 본 전시는 2020. 5. 26(화) ~ 6. 1(월)까지아트센터 일백헌에서 개최되었으며,갤러리21에서 온라인 전시로8. 7(금) ~ 10. 7(수)까지두 달 간 연장 전시합니다.글씨21 담론전시장 전경石甫 李吉遠의 大巧若拙과 寜醜毋媚의 실현이 영 철(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총장) 1. 들어가기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러나 만남의 인연은 쉽지 않아 일찍부터 헤아릴 수조차 없는 길고 긴 시간인 ‘겁(劫)’으로 표현하였다. 흰두교에서는 ‘한 겁’을 43억2천만년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가로×세로×높이가 각 100m인 바위를 100년에 한 번씩 스치고 지나는 천사의 옷자락에 그 바위가 다 달아 없어지는 시간을 1겁이라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옷깃을 스칠 수 있는 인연은 500겁을, 사람과 사람이 하루 동안 동행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데는 2천겁의 세월이 지나야 하며, 이웃으로 태어나 살아가려면 5천겁의 인연이 되어야 하고, 하룻밤을 같이 지낼 수 있으려면 6천겁이 넘는 인연이 있어야 하여, 억겁의 세월을 넘어서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인연이라고 한다. 이렇듯 긴 시간 인연의 ‘겁’을 지내야 만날 수 있다는데, 석보 이길원 동학(同學)과 필자와는 근 20여 년 전에 만나 지금껏 교유(交遊)하고 있으니 과연 전생에 몇 천만겁 이상의 인연은 쌓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인연의 과정에서 천학비재인 나에게 전시회 후일담(後日談)을 요청하니 어떻게 사양할 수 있겠는가? 그저 어리석고 부족함을 뒤로한 채, 우리의 인연에 답하고자 한다. 2. 대교약졸(大巧若拙)의 실천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4장에서 “아주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아주 교묘한 것은 서투른 것 같고, 아주 말 잘하는 것은 말더듬는 것 같다(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고 말하였다. 이렇듯 우리의 주된 관심사인 ‘대교약졸’은 기교와 서투름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음악, 미술, 공예, 건축 등의 예술분야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노자사상의 적자라고 할 수 있는 장자(莊子) 또한 이런 관점에서 ‘대교약졸’을 바라보았다. 즉 『장자(莊子)』 거협(胠篋)편에서 모든 인위적인 기교를 완전히 부정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갔을 때 “천하 사람들은 비로소 진정한 기교를 지닐 수 있으니 큰 교묘함은 마치 서투르게 보인다(而天下始人有其巧矣 故曰大巧若拙)”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고대 음악의 달인인 사광(師矌)의 귀를 막아야 비로소 사람들의 귀가 밝아질 것이고, 눈이 지극히 밝은 이주(離朱)의 눈을 붙여놓아야 비로소 천하의 사람들이 밝음을 지니게 될 것이며, 최고의 장인인 공수(工倕)의 손가락을 비틀어 버려야만 천하에는 비로소 사람들이 교묘함을 지니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이 말은 모든 인위적인 기교를 완전히 부정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진정한 기교를 알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듯 ‘대교약졸’의 해석은 대체로 인위적인 ‘교’와 무위자연의 ‘졸’을 서로 대립적으로 상정하고, 인위적인 기교미(技巧美)보다는 자연스러운 졸박미(拙樸美)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 이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또 다른 해석으로 ‘대교약졸’에서의 ‘졸’이 단순히 ‘교’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교’를 무조건 배척하고 부정하는 ‘졸’이 아니라, ‘교’를 포괄하는 ‘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의 ‘졸’은 그냥 단순히 서툰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서툰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기교의 최고 경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졸’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선생 『청음집』 38권의 「용졸당기(用拙堂記)」라는 글에 보인다. 여기에 보면 민성휘(閔聖徽, 1582-1647)라는 분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충청도 가림(嘉林)에 터를 잡아 집을 지었고, ‘용졸(用拙)’이라는 자신의 호를 따서 ‘용졸당(用拙堂)’이라고 당호를 붙인 뒤, 청음선생에게 기문(記文)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청음선생은 “졸이란 것은 덕이다.(拙者 德也)”라고 해석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졸’은 ‘어리석다’ ‘서툴다’ 등의 뜻을 갖는 글자로, 뛰어나지 않고 별 볼일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서툴고 어리석기 때문에 꾸민 데 없이 수수하며 자랑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재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은 그 재능을 쉽게 드러내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으므로 언뜻 보기에는 도리어 서툰 사람 같아 보인다는 뜻이다. 그렇다. 석보는 분명 ‘졸’을 추구하며 실천하는 사람이다. 일찍이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나 어느 곳이나 누구에게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심지어 긴 시간을 은둔(隱遁)하며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한 서예가이다. 오늘 그의 편린(片鱗) 역시 ‘사랑하게 되면 닮아간다’는 말과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성어가 대변해 주고 있다. 더욱 갈수록 시끄럽고 혼란스러워지는 서예계에 묵묵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성실하게 ‘대교약졸’을 실천하는 예술인이다. 3. 석보예술의 정체성 요즘 우리 서예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한국서예’라는 말로 중국이나 일본과 차별화된 한국적인 서예미의 특성을 찾으려는 노력과 고민의 흔적이 숨어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는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형성된 민족적 정체성과 자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서예는 중국이라는 틀을 완전히 벗어나서 생각할 수는 없겠다. 역사 문화 종교 학문 등 거의 전 영역에서 우리나라에 끼친 중국의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자문화를 공통분모로 하면서도 우리나라는 우리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해 오고 발전시켜 나왔음도 사실이다. 우리는 한국서예를 탐구할 때,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서예미를 제시하려고 애써왔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이 우리의 탐구를 지체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서예가 중국서예와 흡사하더라도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면 우리의 서예가 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우리 서예의 독특함만을 부각시키면서 중국의 영향을 애써 배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중국의 지대한 영향에서 탄생되었다 해도 우리의 선택에 의해 취한 것이라면 우리의 서예가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같은 문화권이라고 해도 중국과 일본인이 바라보는 아름다움과 한국인이 바라보는 아름다움이 다름은 틀림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서예의 미를 전통적인 기법에서에서만 찾는다면, 한국적인 서예미는 생명력을 잃어 박제화 될 수도 있다. 어설픈 옛것 흉내 내기는 서예가의 활력을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서예가 자신이 한국적인 서예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한국적인 미라고 말하는 ‘무작위의 작위’나 ‘자연의 미’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탐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만이 다양함과 함께 활력과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아래는 석보의 작품을 살펴 그 특징을 찾아보겠다. 서예작품으로 <기장산하(氣壯山河)>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용묵(用墨)과 율동감이 돋보인 운필(運筆)의 작품이다. 또한 <고시일구(古詩一句)>는 본인의 작품 중 <령추무미(寜醜毋媚)>의 실현인 듯하다. 전각의 작품으로 <설조산방(雪爪山房)>은 균형 잡힌 구성과 여백이 돋보이고, 그리고 초형인의 <됴룡뇽>과 <물고기와 새>는 도필로 서화동원(書畫同源)을 이해하게끔 한다. 이들 모두는 정연한 균제(symmetry)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주도면밀한 장법과 오랜 시간의 정신 수양의 결과물일 것이다. 아울러 그림 <상(象)>, <거울아이>,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길 찾기>, , <자연재앙>, <슬픈 크리스마스> 등에서 보듯이 극단적인 사실성보다는 ‘무계획적’ 또는 ‘자연 그대로의’ 소박성이 돋보인다. 더욱 ‘새(鳥)’를 주제로 하는 작품 <흘겨보다>, <검은 새> 등은 채움과 비움의 미학이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오늘 보여준 석보의 작품들은 ‘대교약졸’의 아름다움으로 정련된 소박미와 심오한 단순미, 그리고 숙련된 평담미(平淡美)에 분산된 통일미, 또한 배경과의 조화미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대중이 선호하는 서예미와 석보 자신만의 주체성, 그리고 현재성이 작품에 녹아 들어 있다. 단지 일부 예술가나 서예가가 서예를 추상예술이나 선(線)의 예술에 구속시키고 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문자 자체가 추상적인 부분이 없지 않고, 선을 ‘긋는다’는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일리가 전혀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자의 가독성(可讀性)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서예가 문자의 점획(點劃)이 어울려 조화로운 자형을 표현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적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점 계속적인 화두로 삼았으면 한다. 4. 나가기 이길원은 인품의 절개와 지식의 함양을 중시하는 서예가요 전각가이며 화가이고 다도인(茶道人)이다. 다시 말해서 서화각다(書畵刻茶)의 사절(四絶)로 불리는 문화와 예술의 모든 부문에서 뛰어난 ‘퓨전 아티스트’이다. 어릴 적부터 타고난 천성(天性)을 바탕으로 박학다식(博學多識)함을 더해 그의 예술에 승화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의 편린(片鱗)들을 어떻게 일일이 나열할 수 있겠는가. 필자의 아둔함을 탓하며 장석주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구절로 글을 맺고자 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중략)” 東方文化大學院大學校 總長 李永徹 두손모음2020년 8월 寧麤毋媚 추할지언정 꾸미지 마라 · 105x35cm氣壯山河 높은 산, 큰 강처럼 기세가 웅장하다 · 135x34cm松菊猶存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히 그대로다 · 67x60cm五月松風 · 44x135cm이길원 作검은새 · 45x53cm象 · 117x91cm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 22x34cm겨울아이 · 22x30cm길찾기 · 25.5x17cmOld Clock · 31.5x20.5cmSeal · 35x23cm자연재앙 · 96x100cm슬픈 크리스마스 · 19x27cm흘겨보다 · 22x26cm선사시대 · 34x78cmShopping · 27x60cm알베로 · 25x20cm이길원 作이길원 作玄江 朴洪晙先生님 · 8x11cm송석훈님(커피 디자인) · 6x11.5cm이귀연님 · 8x6cm박경복님 · 8x8cm이길원 作이길원 作도롱뇽(초형인) · 4.5x4.5cm물고기와 새 · 3.5x3.5cm새 · 15x25cm블록 쌓기 · 6x6cmx7元重擧先生詩 · 15.5x25cm이길원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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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농선생님백업
夢之龜 · 游於海꿈꾸는 거북이 바다에 노닐다- 글밭 · 삼농 김구해제주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제주의 바람과, 제주의 하늘 그리고 제주의 사람… 제주에 갈 때마다 나도 그곳에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때마다 아내에게 “우리 제주서 살까?” 라고 묻지만 아내는 시큰둥하다.“우리 그냥 가끔 놀러오자.” 그래, 그게 현실적이지. 직장이 가장 큰 문제이고, 익숙한 서울 생활을 바꾸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제주는 참 아름다운 도시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구석구석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삼농(三農) 김구해(金龜海) 선생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80년대 이후 세대들에게는 어쩌면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당시 서단을 호령 했던 그가 제주에 터를 잡고부턴 작품을 거의 세상에 내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몇몇 작품을 보는 순간 우리는 “아~하!” 하며 무릎을 칠 것이다.세련된 필획과 조형감각은 대학시절 내 눈을 한참 머물게 했던 기억들로 가득하다. 그런 작가를 제주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 오늘 삼농선생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우리는 더욱 삼농선생의 작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다시, 그가 꿈꾸는 작품들을 머지않아 다시 만나보기를 기대한다.1. 호는 그 사람의 인생관, 예술관을 담는데 三農(삼농)이란 号(호)에 담은 뜻이 무엇인가?- 号(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요. 왜 三農(삼농)이냐? ‘1’이란 숫자는 출발(出發)이면서 가장 크다는 뜻도 있고 많은 무리 중에 우뚝하다는 뜻이 있고요. ‘2’란 숫자는 상생적(相生的) 의미의 음(陰)과 양(陽)을 뜻함이요. ‘3’이란 많은 것을 의미하고 또 생산적(生産的)인 뜻이 있는데 서양문화에서는 7(럭키 세븐Lucky seven)이란 숫자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 동양문화에는 ‘3’이란 수를 널리 사용하고 있어요. 예컨대 천·지·인(天·地·人) 삼의(三儀) 또는 삼재(三才)를 비롯해서 삼광(三光 日·月·星), 불가(佛家)에서는 불·법·승 (佛·法·僧 三寶) 기독교에서는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등 삼신(三神), 삼황(三皇), 삼다(三多), 삼무(三無) 그 밖에도 많이 있죠.우리가 예전부터 사용하는 화로나 향로를 보면 다리가 세 개죠. 삼족정(三足鼎)을 축소한 것인데 참 묘하죠. 네 다리일 경우 평지에 놓으면 뒤뚱거리고 불안정한데 삼족정은 약간 경사진 곳에 놓아도 중심만 잡아 놓으면 안정을 유지하죠. 모든 이치가 물리적 역학관계일 텐데 역시 중량과 분배로 인한 균형으로 안정을 유지한다는 거죠. 아이들 놀이터에 가보면 시소도 그런 원리죠. ‘삼(三)’에 대해 설명하다보면 끝이 없어요. 우리 삶속에 그 의미를 알고 살아가면 큰 폐단이 없을 겁니다.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다보니 불편·불안정·불화가 발생된다고 봅니다. 한없이 올라가고 한없이 쌓으면 무너집니다. 여기서 중용(中庸)을 배워야죠.‘農(농)’자는 농사의 뜻도 있지만 옥편에 보면 “농사하다”, “힘쓰다” 즉, 노력하다는 두 가지 의미의 글자일 텐데요. 그래서 ‘논어 학이편(學而篇)’에 증자(曾子) 말씀 중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나는 매일 내 몸에 세 가지를 성찰하노니 첫째, 爲人謀而不忠乎(위인모이불충호). 사람을 위하여 어떤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진심을 다하지 못한 점은 없는가? 둘째, 與朋友交而不信乎(여붕우교이불신호). 친구와 더불어 사귐에 신의를 지키지 못한 일이 없는가? 셋째, 傳不習乎(전불습호). 성현(聖賢) 말씀 가르침을 제대로 익히고 실천하지 못한 것이 없는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어요.기왕에 호 얘기가 다소 장황하지만 한 가지만 더 하고 끝내죠. 어차피 농경시대 얘기겠는데, 삼여(三餘)라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은 농부가 큰 비가 올 때, 농한기(겨울), 밤에 심신(心身)의 여유를 갖는다 해서 하는 말인데 나는 남보다 뛰어난 재주도 없고 그래서 한글 호를 ‘글밭’으로 자작(自作)하여 한글작품에 써온 지 50여 년이 됐지만 ‘글밭에서 삼여(三餘)에도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 그래서 삼여농인(三餘農人)입니다. 結繩 · 100x100cm가림토 · 200x100cm가림토2 · 200x100cm직필위본 · 130x40cm2. 스승이셨던 월정 정주상(月汀 鄭周相)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나?- 선생님을 뵙게 된 과정을 생각하면 눈물 나는 사연이 꽤나 긴데요. 감히 그 어른의 제자라고 선뜻 나서기가 두렵습니다. 아직 공부도 덜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칫 선생님 일생동안 학처럼 사신 어른께 자랑스러운 제자도 못된 주제에 누가 될까 두려워서죠. 그래서 항상 선생님의 제자라고 당당히 밝힐 수도 없었죠.후학 훈도는 물론 서예술 정신세계는 타에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맑고 밝으셨어요. 전·예·해·행·초 한글까지 두루 능하셨고, 문학적 감성이 탁월하셔서 아동문학에도 등단하셨어요. 또한 문필력(文筆力)이 좋으셔서 월간서예 잡지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간하셨는데 (창간호부터 83호로 운영난으로 폐간, 지금의 월간서예 전신) 그때엔 서예인구도 많지 않고 전국에 구독자라야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니 83호까지 버티기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겠죠.선생님의 작품세계는 엄청난 양의 임서와 자연에서 발견하신 웅혼(雄渾)하면서도 경쾌하여 감사하는 이로 하여금 감동케 하는 이유가 획마다 음악적 리듬이 배어있어 기운생동(氣韻生動)으로 표출되는 까닭이죠. 천품에 총명하심과 인문학적 소양을 고루 갖추시고 자력으로 고전을 독파(讀破)하여 대가의 경지(境地)에 이르셨어요. 60년대 초 펜글씨 교본과 국정교과서 저술로 우리들 어렸을 적 선생님 지은 초등글씨본으로 습자시간에 공부했죠.중국과 수교되기 전에부터 한·중·일 등 국제전시교류에 핵심으로 한국대표활동을 능숙하게 하심으로 각국의 명 대가들의 감탄 속에 가히 신필이라는 호평도 받으시면서 현재도 운영 중인 국제난정필회 한국대표로 노익장 활동하시다 작고하셨는데 공부에는 엄격하시지만 일배취(一盃醉)하시면 그렇게 섬세하시고 온화하신 인품으로 흥도 많으셨습니다. 작고하신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가끔 꿈에서 모실 기회를 주시는데 너무나 감사하죠. 계실 때 잘 모시지 못해 항상 한이 되죠.글씨21 석태표가 제주 서귀포를 불원천리 달려와서 선생님을 물으니 수많은 날들 선생님 사랑받았던 그날들이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데 선생님은 안 계시고 먹먹한 가슴으로 어찌 다 말할 수 있나요. 어느 날 주석(酒席)에서 “삼농! 자네 호 나하고 바꿈세.” 하시던 그 음성을 이제 어디서 들어볼까요. 선생님 잘 모시지 못하여 죄송할 따름이죠. 결승 · 150x100cm결승 · 150x100cm달을 품은 이무기 · 90x70cm내자후각석(臨書) · 150x100cm3. 공직생활 중에서도 서예 작업을 이어나가셨는데 직장과 예술 활동 병행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애로점(隘路點)이 한두 가지겠어요. 남들은 매일 같이 먹 갈고 글 쓰고 하는데... 어떤 인연으로 잠깐 동안 관직에 몸담게 되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바로 그 시절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휴일이나 근무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 해야 하기 때문에 밤으로 연구하고 남들 여행갈 때 못가고, 그래서 아이들한테 늘 미안하고 “아버지는 맨날 글이나 쓰는 사람이지. 우리하고는 관계없다.” 이런 식으로 할 정도였으니까. 내조의 힘도 컸고요. 그런 걸 배려해줬으니까요… 法句經(법구경) · 40x20cm 自作 詩 \'방촌세계(方寸世界)\' · 김구해作4. 26년 전 제주도로 낙향한 걸로 알고 있다. 어떤 이유로 제주를 선택했는가?- 내 이름 거북 구(龜), 바다 해(海) ‘ 거북이는 바다로 가야 산다.’라는 그 어떤 불문율이 있지 않았나. 우연히 내려오게 됐는데 여기가 나하고 맞아요. 정서가. 그래서 과감히 다니던 곳을 떨치고, 여기서 머물게 되었죠. 여기서 보니까 인정이 흐르고 풍광이 좋고 상당히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내가 머무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구나. 해서 지금도 싫증을 느끼지 않고 하루하루 지내고 있죠. 가족들은 난리입니다. 하다하다 못 말리니까. 내 고집 못 말립니다. (웃음) 모두 다 얘기하자면 길어지고, 오다보니 여기까지 와서 은거(隱居)하게 되었는데 생략하고 고시조 형식(古時調 形式)의 한 수로 대신 할까요?유배(流配)도 아니외다출가(出家)도 긔아니무릉(武陵) 찾는 길손아정처(停處)가 도원(桃園)일레취몽(醉夢)에태평성사(太平盛事)를안평(安平)만나 물으리라글밭 삼농 作아시다시피 안평대군은 세종의 3남인데 詩·書·畵에 능했고, 풍류도 좋아했는데 꿈에 무릉도원을 찾아 놀다가 깨어보니 허망하여 당시 유명 화가 안견(安堅)을 불러 꿈 설명 해주고 그리라 해서 그 유명한 걸작 몽유도원도(夢遊挑園圖)가 나왔죠. 평론가님들이 붙여준 이름 “제주로 간 서단의 야생마”는 지금 여기 몽지당(夢之堂)이 무릉도원이고, 나의 여생 도장(道場)인 줄 알고 주변에 어지신 분들 덕택에 잘 살아가고 있네요.매월당시 · 150x80cm 老蠶作繭 扇 · 40x25cm 서옥의 미소· 김구해作지연이의 미소· 김구해作5. 삼농(三農) 김구해(金龜海)가 생각하는 서예(書藝)란?- 우선 ‘문자(文字)’라는 약속기호(約束記號)를 바탕 근간으로 하여 지·필·묵이란 도구로 심오한 정신세계, 즉 심상(心象)을 가시적(可視的)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예술적 행위로 집약할 수 있겠는데요.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서예술 만큼 컨텐츠가 폭 넓고 다양한 것이 없어요. 우리 인간의 의·식·주 생활 범주에 어디에도 관련이 없는 데가 없어요. 반드시 디자인에 선(線)이 등장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유형과 무형을 내포하고 있어요. 그 선이 바로 선의 예술인 서예가 깊은 곳에 박혀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의미에 문장을 써야 한다는 것만을 서예술로 단정 지어서는 곤란하다는 거죠. 나아가 대자연 만물을 살펴보면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되는데 가령 앞뜰에서 설중매화 향기나 가지에 강인한 자태를 보고 선비정신을 생각하고 바라보면 알게 될 겁니다. 맑은 하늘에 높이 떠 하얀 배기가스를 뿜고 간 흔적도 우주에 그은 아주 짧은 선, 에어라인(air line)의 예술로 본다는 거지요.모스코바 출생 바실리 칸단스키(1866-1944)는 일찍이 깨어있는 예술가로 보는데 그는 “예술에 있어 정신적인 것”에 대해 논지를 폈고, 이어 점·선·면(点·線·面)에 대해 자기예술적 이론과 개성을 작품에 도입한 예는 아는 이는 알겁니다. 이렇듯 21세기를 향하는 오늘날 양(洋)의 동서(東西)를 가릴 것 없이 인공지능 알파고 시대가 도래 하였으니 법고창신 능전지변(法古創新 能典知變)도 물론 중요하지만 배우고 가르치는 입장에 소수의 연구가를 제외한 과거 수상 심사경력을 자랑하고 또 그것이 후진들로 하여금 위력이 되고 위대하게 보여 불건전 공모전 사업에 동참하는 안타까운 해프닝이 연속된다면 타 장르 작가들은 웃지요. 이제 미래를 위해 꿈에서 깨어나야 서예술이 살아남지 않나 싶어요. 왜냐하면 중세 이전 천동설 시대에 백가쟁명(百家爭鳴 대가들의 서법이론도 동제(同題)이론이고 보면 후학들이 공부하는데 무슨 큰 도움이 될 건가요?1532년 폴란드에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주장한 지동설은 200여년전 이탈리아 크리스토퍼 콜럼브스(1451-1506)로 하여금 미지의 신대륙을 발견하게 하는 일대 쾌거로 오늘의 남북아메리카에 뉴 프론티어 마인드 청교도 정신이 뿌리내렸음도 기억해야 하겠죠. 왜 지구는 축이 23.5도로 기울어진 채 태양계를 자전·공전하여 해와 달의 빛을 번갈아 받아 하루·한달·일년 사계절을 이루는가? 그러하여 음·양의 원리가 만물을 생육·소멸케 하는가? 그 외에도 영국 찰스다윈(1809-1882)은 왜 종의 기원 연구에서 진화론을 주장했는가? 오스트리아 프로이트(1856-1939)는 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슬피우는가? 정신분석학 연구로 세계적인 심리학 연구에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도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는 서예술 연구를 파고드는데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대목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知白守黑(연하장) · 20x15cm一葉(일엽)스님 시, 가을 · 40x130cm6. 선생의 서예적 시각은 남달랐던 걸로 알고 있다. 26년 전이 아닌 요즘 지향하는 서예가 궁금하다.- 무계획이 유계획이에요. \"내가 뭘 해야겠다.\" 생각을 하면은 그대로 되는 게 몇 가지가 없더라고요. 내가 또 노장 철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걸 보면 또 자연주의 철학이잖아요.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상생보완의 역할을 하더라. 노자 도덕경에 보면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를 도라고 하면 이게 벌써 도에서 떠났다는 이야기거든요. 전각을 알려면 전각을 연구해야죠? 또, 전각을 잘하려면 이 서(書)와 역사의 궤(軌)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어요. 상관관계가 있는 거죠. 뎃생도 그렇고 연필, 분필, 다 붓이에요, 철필까지도. 어느 하나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거든요. 한 덩어리 속에서 작가가 그 순간순간 소위 말하는 자기가 \'켕기는대로\' 좋아하는 대로 표현하면 그것이 그 사람의 진정한 작품세계가 이루어지지 않느냐. 그 자료와 생각과 여러 가지 연구를 얼마나 깊게 했느냐에 따라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정의를 내리고 싶어요. 綠楊 · 紅杏 대련 · 150x30cmx2임진왜란7주갑기념展 · 124.5m7. 제주 생활에 만족하는가?- 너무 좋죠. 어쩌면 내가 육지에 있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요. 내가 조금 기관지가 약한 편이거든. 이게 맞는 거예요. 철새도 자기 환경에 따라서 날아다니잖아요. 인간도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이것이 내 복이니라.\" 하면 목숨이야 부지하면서 살겠지만 대도시의 매연 속에서 가두어진 그런환경 속에서 얼마나 이런 호방한 자연이 그리웠길래 뜻 있는 분들은 전부 다 벗어나려고 노력들 하시고 있는데 나는 우연치 않게 일찍이 벗어나 지금 이렇게나마 건강과 복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 여러 도와주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그 덕에 내가 삽니다.그 사람은 평생 공부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모르지, 사실. 내가 컴퓨터를 아나, 운전을 할 줄 아나, 은행에 거래하는 절차를 아나, 보내주면 보내주는 대로 그걸로 먹고 살고. 제가 생계유지를 위해서 하는일은 아주 빵점이에요. 측은해서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받은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戰風 · 130x40cm8. 대선배로써 글씨 공부를 하는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 지난 날 대학에 서예과 설치를 위해 국회 입법청원서에 첨부할 서명운동할때 우리나라 서예인구 추산 500만 이라고 기록한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아마도 2000만도 넘을꺼예요. 서예단체도 앞다투어 사단법인 등록을 모두해서 경향각처에서 공모전도 그렇게 많이 생겨났고 그러해서 초대작가도 많이 배출하고 이젠 1개 단체 주최하는 공모전 행사에도 심사위원이 30명씩 위촉을 한다니, 웬일인가요 놀랍죠. 이젠 지방에서도 소원을 풀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미협으로부터 서단독립개혁운동 초창기에 깊이 관여했던 일중에 머언 옛 얘기로 기억되지만 첫번 서예대전 공모추진 이사회때 지방작가 배려 방법으로 미표구 출품하도록 제안한것이 참 좋은 방안이라고 동의해서 성공적으로 치루었는데 이젠 서울에서는 대한민국 이름 앞에 놓고 지방에서는 각 시도 주최 공모대전, 무슨무슨 이름 걸고 행사를 아주 성공적으로 치룬다니 ... 다행인데 그 바람에 전통 표구사는 문닫기 일쑤, 기계 족자집에서는 개가를 울리고....옛 이야기가 생각나는데요 짚신 장수아들과 우산장수아들을 둔 어느 노파의 심경을 알만해요. 그래서 세상사 웃을일 울어야 할일이 따로 없다는 거죠.예전엔 감히 어림도 없었지만 이구동성으로 심사위원을 심사하는 미 출품자가 곳곳에서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죠.십목소시(十目所視), 십수소지(十手所指) - 열사람이 눈으로 지켜보고, 열사람의 손으로 가리킨다는 얘기가 고전에 있지요.청허당 시 · 200x150cm 삼연회 현판 · 120x40cm신심명(信心銘) · 13x4cm9. 오랜 시간 선생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동안의 작품을 정리해보는 전시회 계획은 없는가?- 벌써부터 구상은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센스 있는 젊은 후배 작가들은 그걸 일부 건드리고 있더라고요. 근데 그것은 타 장르에서 하는 걸 갖다가 하는 거는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서예에 관한 정체성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영상작업도 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 작업을 해야 되겠는데 기술적인 부분이 내가 또 영상미디어, 기계작동, 내지는 기술적인 부분에 몰라서 그런 분을 찾고 있어요.나는 기획하고, 제작하고, 연출하고 그 분은 기계적인 장비 이런 걸로 날 도와주시면 되는데 예술의 전당의 실험연구 전시관에 계약하러 갔다가 내가 건강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겨서 그것도 아직 더 있다가 하라는 신호가 아닌가. 그래서 내가 잠잠히 건강관리를 하고 있어요. 곧 마음에 담고 있는 작업풍경을 정리해서 개인전을 열겁니다.2020. 6. 19글씨21 편집실
임시-손아영
갤러리 21에서는 7월 14일(화)부터 20일(월)까지 캘리그라피 작가인 손아영의 개인전 ‘비로소’가 열린다. ‘비로소’라는 단어가 지닌 사전적인 의미와 같이 작품활동을 통해 비로소 나를 찾아가던 여정을 담아내고자 이 주제를 선정하였다고 밝힌 작가는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있던 어린시절의 꿈과 열정을 글씨와 그림으로 표현하며 스스로가 진정으로 채워지는 그 순간을 ‘비로소’ 선보이는 첫 장을 열게 되었다.영원한 건축학도를 꿈꿔왔던 그녀는 전업작가로의 전향 후 글씨와 그림활동에 매진하며 보낸 시간들이 어느때보다 알차고 보람되었다고 전했다. “글씨와 그림으로 담는 건축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고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건축의 매력을 세상에 전달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고 밝힌 작가는, 한국인만이 가진 고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수 있는 작업을 위해 노력해 왔다. 흑과 백, 그리고 시간과 공간, 비움과 채움의 요소들을 고려하는 한편 동, 서양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자신만의 ‘음,양의 조화로움’을 찾아가는 여정속에서 작가는 한옥과 한글에서 오는 편안함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자부하는 한옥과 한국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한글을 작품속에 담아낸 이번 전시는 더 넓은 영역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단초전이 될 예정이다. 한편 손아영 작가는 숙대입구역 부근에 위치한 개인 작업실에서 작품활동과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2020. 6. 19글씨21 편집실<전시정보>손아영 캘리그라피 개인전 \'비로소\'전시기간 : 2020. 7. 14(화) ~ 7. 20(월)전시장소 : 갤러리21(인사동)전시문의 : 02-213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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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21 기획 창작지원프로젝트선정작가 \'김백녕 작가\' 초대展* 본 전시는 2020. 5. 5(화) ~ 5. 11(월)까지아트센터 일백헌에서 개최되었으며,갤러리21에서 연장전시가 한 달 간 이어집니다.김백녕 개인전을 보면서 느낀 감회원광대학교 교수 김 수 천 20년 만에 붓을 새로 잡았다고 들었다. 시흔의 나이를 넘어 갑자기 첫 개인전을 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김백녕(金白寧)은 최근 개명을 했다. 그가 대학을 나닐 때 이름은 김범수(金範洙)였다. 김백녕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나온 삶을 알아야 한다. 그의 인생역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는 20대에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동아미술대전 입선, 한국서예청년작가전 등 다수의 공모전에 출품할 정도로 앞날이 촉망되는 젊은 서예가였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던 그가 홀연히 모습을 감춘다. 그는 대학원에서 서예학으로 석사를 한 뒤, 학교를 옮겨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 후 철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철학 강의를 한다고 들었다. 지금은 서예가가 아닌 동양철학 전공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는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서예인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그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을 무렵 서울에서 초대전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되어 사람만나는 것조차 두려운데 김백녕의 전시는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서울을 향했다. 그가 전시를 하는 북촌 아트센터 일백헌은 개관 전 수리공사를 할 때 우연히 들린 적이 있다.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아트센터는 한국적 정서를 느끼게 하는 편안한 곳으로 휴식할 수 있는 마당도 있고, 전시장이 몇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작가는 전시를 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한다. 더욱이 첫 개인전을 하는 작가는 더욱 더 고뇌가 컸으리라 본다. 관전자들은 작가가 들인 시간과 노력과는 달리 작품에 머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그러나 관람의 시간이 빠르다고 하여 성의 없이 보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스쳐지나가도 작품에 대한 인상은 머리 속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것은 인간이 구유하고 있는 직관(直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시장에서 김백녕의 작품을 보는 순간 찰나적으로 작가의 세계가 느껴졌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첫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물>, <10>, <영문자 알파벳>이었다. 똑같은 글씨를 일 이 십자씩 썼는데도 표정은 제각각이다. 옆방으로 가니 큰 글씨로 쓴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서론에 나오는 짧은 문구로 쓴 대작(大作)이었다. 꾸밈없이 구애받지 않고 쓴 글씨가 마치 선승(禪僧)의 글씨처럼 느껴졌다. 큰 공간을 지배한다는 것은 내공을 필요로 한다. 오랫동안 글씨를 쓰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작품이 단조롭거나 허전하지 않은 것은 그가 학창시절 열심히 갈고 닦은 서예실력이 바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 위에서 다져진 철학공부와 큰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큰 거실로 발길을 옮기니 기암절벽에 새긴 암각화와 같은 작품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시선을 당기는 작품이 <태박(太樸)>이었다. 원초적 카오스를 뜻하는 <태박>은 응축된 필획으로 표현되어 원초적인 에너지로 다가왔다. 이 작품을 보면서 작가와 한참동안 우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인간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세계를 살기도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현존하고 있는 큰 세계를 동시에 산다. 인간에게 불어 닫치는 힘겨운 일들, 괴로움, 좌절감에도 마음의 평형을 유지하고 웃음을 잃지 않고 산다.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마다 마음속에 존재하는 원형적인 에너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양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우주의 가장 큰 별 방패자리(UY)는 태양의 50억 배, 지구의 6,500조 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것은 허블망원경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한 어마 어마한 크기를 지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별들이 우리 인간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별과 우리는 하나가 되어 함께 호흡하며 살고 있다. 김 작가의 작품 <태박>이 우주와 공명을 일으켰나보다. 그 앞에서 우주에 대한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말이다. 아티스트가 존경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세속의 삶을 살면서도 우주와 같은 큰 정신이 존재한다. 서예와 예술을 한낱 시각적인 조형예술로만 보는 것은 한없이 작가의 모습을 초라하게 만든다.언젠가 「독서신문」에 실린 서예가 김충현(1921~2006)의 서예론을 보면서, 깊은 감회에 빠진 적이 있다.“재주나 소질만 갖고는 안 되는 거야. 천상(天象) 지지(地誌)를 알아야 한학의 진면목을 알 수 있듯이 시를 쓰고 글씨를 하려면 그것이 우러나올 샘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 아닌가. 인간의 신체구조나 정신세계는 그것이 하나의 소우주(小宇宙)야. 대자연과 소우주가 합치될 때 창출되는 것 그건 고도의 선경(仙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테면 그 경지까지는 못 가더라도 이러한 호흡과 맥을 알아야 진정한 서도를 할 수 있다 이 말이야.”이 글을 보면서, 큰 예술은 소질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합일하는 큰 정신세계를 향한 도야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방마다 작품의 분위기가 달랐다. 서로 다른 성질을 한 작품이 걸려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관된 특성이 있다. 작품 전체의 모습은 그의 개성적인 삶만큼이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글씨는 한군데 머물러 있지 않다. 한글이든 한문이든, 숫자이든, 영문자 알파벳이든, 쓸 때마다 달라지는 구조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의 예술세계를 느낀다. 늘 상 하던 일을 반복하는 것을 관행(慣行)이라고 한다. 관행은 반복이고 습관이며 행동의 패턴화다. 김 작가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습기(習氣)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의 삶과 일치된다. 그의 삶은 일반적으로 보아온 모습이 아니다. 글씨 또한 습관적인 반복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서론에 보면 늘 상 변하는 글꼴이 명필의 조건이다. 왕희지의 <난정서(蘭亭敍)>가 명필임을 설명할 때 ‘지(之)’자 20자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도 마찬가지다. <세한도(歲寒圖)>도 같은 자를 동형반복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다름의 글꼴이 강조되는 것은 역대 서예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중히 여기는 조형세계다. 작품을 할 때 같은 자가 반복되면 어떻게 해서라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자전에서 이체자(異體字)를 찾는다. 이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글씨가 늘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서예의 보편적 가치라 할 수 있다. 동형반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美)를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이다. 이것을 규명하는 것은 김백녕의 작품이 주는 가장 큰 가치이자 의미라고 생각한다. 김작가는 철학전공자로서 현재 대학에서 동양철학 강의를 한다고 들었다. 동양철학에서는 우주변화의 원리를 중요하게 다룬다. 따라서 작가는 글씨의 글꼴이 왜 항변(恒變)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김백녕의 작품제작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기대된다. 현재 한국의 서예는 작가와 작품은 많은데, 그에 대한 이야기가 빈곤하다. 작품전은 많지만, 품평이나 비평이 거의 부재된 상태로 전시회만 무성하다. 전시에 들인 공력(功力)만큼 작가의 작품에 대해 담론하는 분위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동안 서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백녕을 시작으로 서예작품과 작가에 대한 풍성한 담론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앱 설치>> 아이폰(ios) 글씨21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