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술과 부호
예술 활동은 인간의 창조활동이며 인간의 정신향수에 대한 수요의 실현이다. 예술자체는 인간의 본질적 대상의 실현이다. 예술은 신성(神性)의 존재가 아니고 인문활동이다. 그러므로 오직 인류만이 예술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예술이 인간을 표현하는 동시에 사회를 표현하였으며 사회 속의 인간과 인간과의 생활상황을 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예술은 심미의식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되고 심미의식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임에 틀림없다. 예술은 인류에 가장 일찍부터 있어 온 본원성의 활동이다. 아울러 예술은 생활의 거울이며 동시에 생활의 한 부분이다. 실증(實證)의 관점으로부터 생활을 보면‘ 생활’은 또한 자연적이다. 그래서 예술은 항상 자연과 서로 대응된다. 그렇지만 오늘날 사람들의 관점으로 생활을 보면‘ 예술’은 항상‘ 역사’와 서로 대응하는 것이다. 즉 예술은 역사의 거울이며 혹은 역사의 산물이다.
원시문화의 토템가무와 주술의식은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이것들은 인류 최초의 정신문화이며 부호의 생산이다. 이 정신문명과 부호생산은 물론 심미뿐 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심미적 인소의 한 측면을 갖고 있다. 문화는 인류의 생존, 생활, 의식의 부호형식으로써 원시적으로 혼돈경험을 질서화하고 형식화한다. 처음에는 하나로 모아진 총체였다. 그리고 그 중에 이미 심미가 있었다. 그러므로 부호의 구조는 하나하나가 구체적이고 풍부한 심미공간을 가져와 심미주체의 감성생명이 자유로워지며 이로서 현실세계와 현실형식의 적재를 받지 않는다. 또한 부호결구의 아름다움에는 자연미와 예술미가 있다. 여기에서 부호를 새기는 자는 새김에 일정 한 사상 감정을 기탁하여 한 폭의 아름답고 이상적인 경관을 펼쳤다.
2. 새김에서의 전각
인류는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인구가 늘어나고 서로간의 교류가 빈번해졌다. 또한 서예와 전각의 바탕에서 꽃핀 자유 활동범위가 확대되어 기존 소리의 언어만으로는 교제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원시적인 문화부호가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빛살무늬 토기 겉면에 기하학적인 새김무늬와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대암각화 등이다. 이처럼 선사시대 사람들에 의하여 제작되었던 문화부호들은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하여 당시의 시대상을 긁어내거나 쪼아서 나타내는 선과 면 등으로 새겨놓았다. 그러므로 이들 자료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고, 그들이 직접 의지를 가지고 당시의 치열한 삶을 기록한 기록화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아울러 새김의 역사는 붓의 사용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새김 방법은 단단한 돌이나 옥 등을 이용하여 두드리거나 쪼아서 묘사하였다. 물론 철기시대 이후에는 끝이 날카롭고 강한 철제도구 등을 이용하여 긋는 방식으로 형상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회화적인 형태의 새김은 서로 약정할 수 있는 의의를 가진 원시문자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발생한 문자는 고대인들이 사회생활을 실천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지혜의 결정이며 산물이었다. 물론 회화형태의 그림문자가 다시 약정부호나 단어를 기록하는 글자 부호에 이르기까지는 기나긴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오래된 새김의 역사과정에서 전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전각은 고대 실용적 가치의 인장에서 시작되어 새김과 창작을 거듭해 오면서 점차 예술로 승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새김에서 발전한 전각의 역사는 3천 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30년대 중국 하남성 안양시 은허유적에서 동인(銅印) 3개가 출토되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전서로 새긴 인장’이라는 문자적 의미에서의‘ 전각’은 철기시대에 이르러 기원되었음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더욱 인재에 있어 옥이나 청동을 대신하여 돌을 사용하였던 명나라 문팽(文彭)과 하진(何震)에 와서는 본격적인 전각예술로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3. 현강의 예술세계
현강의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새김의 작업들은 이전의 작품들과 형식적이나 내용적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즉 전통 전각을 새김의 미학으로 재해석하였고, 작품 한 점 한 점에 순간순간 떠오르는 영감을 스케치하고 있다. 이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시대성 미감의 메시지를 여실히 보여주면서 그 변화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그래서“ 예술은 보는 이에게 재미가 있어야 하고, 아울러 시대정신의 탐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래는 전통 전각예술의 틀을 깨고 서예와 회화, 그리고 디자인을 우리의 정서와 융·복합한 현강의 조형어법을 살펴보겠다.
종횡의 직선과 곡선을 컨셉으로 하여 섬세한 빗금을 더한 <여인과 고양이>, <배>, <춤>, <학>, <율동>, <군옥>과 <의자> 시리즈 등은 현강 예술작업의 연속이다. 그리고 원근을 무시하고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꽃>과 <여인> 등이 있다. 이들은 구상과 비구상의 하모니이며, 인간과 자연, 나와 너, 사람과 물질의 관계 맺음이다. 아울러 이는 현강 인생의 철학인 행복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단한 오석에 새겨진 <산수>, <일엽편주> 등은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환상적인 분위기로 나타내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절로 평온하게 된다. 늘어진 나뭇가지, 굳센 소나무, 빽빽이 늘어선 숲 위를 나는 학 등은 서로가 잘 어우러져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절제되고 통일된 톤으로 화면을 가득 수놓은 칼놀림은 하나의 형이상학적 공간으로 우주를 창조하는 듯하다. 이렇듯 그의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소재와 재료는 다양하지만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정서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재료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또한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음이다. 아울러 그 맑고 신비로운 미세한 칼놀림에는 공들인 흔적이 역역하면서도 스스로 유희함이 보인다. 이는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느끼는 그의 매력이다.
4. 서·화·각의 성취
현강은 한국적 소재들을 조형적으로 재해석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비록 수많은 법첩의 임서와 모각의 과정이 있었지만 특정한 작품이나 작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겠다. 그의 작품에서 엿보이는 우리 자연의 서정성은 한국의 멋을 폭넓게 이해함에서 기인되었다. 다시 말해 작은 공간을 확장하여 작품 전체에 자연과의 정신적 합일과 한국적 감수성을 우주적 에너지로 뿜어내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그의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서예와 전각의 바탕에서 드러난 효과 위의 이미지 합성과 재구성이다. 그러므로 그의 새김에서는 서예의 번지는 효과와 전각의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 동시에 전해진다. 전각은 서예를 닮아 가고 서예는 전각을 닮아 두가지 작품의 느낌이 하나로 일체를 이룬다.
아울러 현강은 서예와 전각이 갖는 관념을 무너뜨리고, 획일적인 수직이 아닌 수평, 귀납의 자유스런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업특징은 우리에게 신비로운 감정과 경외감을 불러일으켜 한국 서단의 센세이션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현강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한 말씀드린다. 부디! 삶에 있어서 밝고 행복한 모습을 꿈꾸는 작가에게 끊임없는 희망의 박수를 기대한다. 그리고 현강에게“ 지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생각과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영감과 상상력으로 점화되는 예술세계가 길이 빛나고 세계화되길 바란다.
2019년 5월 7일
昊雲館에서
東方文化大學院大學校 總長 李 永 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