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21 기획 창작지원프로젝트
선정작가 이재숙 작가 초대展
* 본 전시는 2020. 5. 19(화) ~ 5. 25(월)까지
아트센터 일백헌에서 개최되었으며,
갤러리21에서 온라인 전시로
9. 24(목) ~ 11. 24(화)까지
두 달 간 연장 전시합니다.
전시장 전경
효림 이재숙(曉林 李在淑)의
일백헌 초대전에 부쳐
동도 이재철(同道 李在喆)
글자 하나하나의 근량을 달아 비교해 보고
이 글자 저 글자 바꿔 넣어 흔들어 보고
글씨 한 줄 바로 쓰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
내 목소리 내 색깔은 그저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바스락 바스락 네모네모, 종이를 만지는 일.
미끄덩 미끄덩, 싸악 싸악 먹을 가는 일.
흥청 흥청 붓질 따라 쏟아지는 새까만 오묘함.
넋 놓고 바라보는 세상없는 고요함.
이 모두가
내겐 온통 즐거운 일이다.
세상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내 안의 즐거움.
그 즐거움에 혼이 뺏겨 멍청히 있는 내 모습을
내 인생 가장 빛나는 경치로 여기며 살 것이다.
- 이천이십년 봄날, 효림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위의 글 ‘효림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작가가 일백헌의 초대로 첫 개인전을 펼치며 내놓은 변(辨)이다. 글 한줄 한줄에서 작가가 평소 공부하고 글 쓰는 모양이 그림처럼 보인다. 또한 얼마나 노심초사 글자 하나, 획 하나, 줄 하나에 신중하며 따지고 재고 깎고 다듬고 하여 지면에 새기는지 알만하다. 절차탁마(切磋琢磨)한다는 말이 딱 여기에 맞는 말일 것이다. 더불어 효림이 묵필과 몰아일체의 경지를 추구하며 서예를 대하는 삶의 태도와 금번의 개인전을 어떻게 여기는지도 엿볼 수 있다.
고풍스럽고 아담하며 꼭 효림과 어울리는 일백헌에서 전시 작품을 보다가 그 한 켠에 붙여 놓은 이 작가의 변을 몇 줄 더듬었을 때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라는 논어 위정편의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 ‘배우기만 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헛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근묵자(近墨者)에게 얼마나 경계하는 말이던가! 무심히 글씨를 쓰며 공부하되 깊이 생각하기가 쉽지 않고 뜻은 높고 생각은 거대하나 많이 쓰지 않아 필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하던가! 효림의 작품을 보면 여유 있는 공간과 안정된 자형의 배치와 지면의 구성은 오랜 공부와 타고난 작가의 감각에 더해 이러한 연구하는 자세가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작가는 처음 일백헌에 갔던 날, 첫눈에 반해 거기에서 전시를 꿈꾸었다고 한다. 그 분위기를 고향 집으로 여기고 부모와 자식, 동생, 언니, 고모로서 건네고 싶었던 이야기들로 채워보리라고 결심한 것이다. ‘오직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여 정사(政事)를 베푼다’는 서경(書經)의 말을 바탕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단위인 가족관계에서 발견한 원리적 이치로부터 작금의 우리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원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그것을 작품의 줄기로 삼은 듯하다.
아마도 그것은 작가가 그러한 것들을 고리타분하게 취급하며 점점 소홀히 해가는 세상을 향해 말을 걸어볼 만큼 큰 결기와 에너지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한 작가의 뜻은 작품에서도 잘 보여진다. 자녀를 양육하는 마음을 돌아보는 ‘孟子 公孫丑句’와 ‘過庭之訓’이 그러하고 큰오빠의 여유로운 노년을 바라는 ‘白樂天 池上篇’이며 정약용의 시 ‘獨笑’, 어머니의 함자를 작품으로 한 ‘凜凜’ 이나 동생을 생각하며 한 ‘老友’, 둘째 오빠가 더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이나 소동파의 시로 동생과 달을 같이 보고자 하는 우애를 나타내는 ‘水調歌頭句’ 등은 이러한 작가의 절절한 가족애와 함께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그 한줄기로 따스하며 잔잔한 에너지가 흐른다.
작가는 전예해행(篆隷楷行)의 작품을 두루 하며 서체간 병행과 조화를 추구한다. ‘皆吾所好 盡在吾前’, ‘蘇東坡 水調歌頭句’ ‘茶山丁若鏞先生詩’, 등의 행서는 활달하고 기운차며 ‘梅花屛題圖’, ‘菜根譚句’ 등의 해서는 부드러우면서도 편안함과 안정감을 갖고자 한다. ‘孟子句’, ‘過庭之訓’, ‘崔子玉 座右銘’, ‘離騷經句’, ‘務本·孝弟·爲仁’ 등등의 다수의 작품에서는 갑골문 소전 대전 등 상고서체(上古書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지향하면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즐기는 모습이다.
왕희지 난정서 저수량본 임서와 전각 탁본, 장맹룡비 등의 작품에서는 그간 오랜 시간 수련해온 고단했을 학서인(學書人)의 여정을 동병상련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7년 ‘먹을 벗하는 사람들 전(展)’을 시작으로 참여해 오면서 오창석 수진택허당기, 산씨반, 원정묘지명, 희우정기 등등의 여러 비첩을 학서 해오며 얼마나 많은 애정과 각고의 시간을 단련해 왔던가. 그 시간과 일련의 과정은 자체로 하나의 시(詩)며 글이라 할만하다.
돌이켜 보면 운재 이승우 선생님의 문하에서 20여년을 동도(同道)로서 함께하는 중에 효림은 그 신중함과 특유의 안정감으로 학서 과정을 잘 소화하며 늘 동도들의 가야할 길을 꾸준함과 직접적인 그 성과로 보여주었다. 머뭇하는 듯이 주저하는 듯이 보이나 끈기 있게 공부하고 자신의 길을 탐색하며 뚜벅 뚜벅 나아가는 모습은 동도들에게 자극을 주며 일깨우는 바가 많다. 이제 원하던 일백헌에서의 개인전으로 어떤 경계를 넘으며 새로운 시작으로서 과제를 받은 것이니 만큼 효림이 가는 길이 기대가 된다.
오래도록 멀리 가야할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동도로서 응원하며 그간 공부하며 곱씹었던 인류의 영원한 스승 공자의 말을빌어 두서없이 벌여 놓은 글을 맺고자 한다.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비유하자면 산을 만들 때 한 삼태기의 흙을 붓지 않아 멈추는 것도 내 스스로 멈추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땅을 고를 때 한 삼태기의 흙을 더하여 나아가는 것도 내가 앞으로 가는 것이다.’
한 줌 흙이라도 거듭하면 산이 되지 않겠는가!
2020년 8월 입추절,
烽火山 아래에서
최자옥 좌우명(崔子玉 座右銘) · 160x210cm · 종이에 먹
孟子句 · 40x60cm · 종이에 먹
一讀 二好書 三思索 · 25x60cm · 종이에 먹
苦難如玉段磨鍊爾完 · 35x160cm · 종이에 먹
過庭之訓 · 100x70cm · 종이에 먹
茶山 丁若鏞先生 詩 · 100x70cm · 종이에 먹
왕희지 난정기 저수량본 임서 · 35x164cm · 종이에 먹
務本,孝弟,爲仁 · 35x35cm · 종이에 먹
採根譚句 · 140x35cmx2 · 종이에 먹
學書 張猛龍碑 · 170x80cmx3 · 종이에 먹
一(오로지) · 28x42cm · 종이에 먹
老友 · 35x45cm · 무명천에 먹
臨 茶山의 매화병제도 · 20x30cm · 종이에 먹
放一着退一步當下心安 · 30x40cm · 종이에 먹
蘇東坡 水調歌頭句 · 30x22cm · 종이에 먹
凜凜하시게 · 40x50cm · 종이에 먹
皆吾所好,盡在吾前 · 70x140cm · 종이에 먹
굴원 이소경구 · 60x160cm · 종이에 먹
효림필경 · 30x50cm · 종이에 먹
白樂天 地上篇 · 32x55cm · 종이에 먹
獨樂園記句 · 30x50cm · 종이에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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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문의: 02-2138-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