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서탐색전에
내 바라는 바 “나만의 글씨”의 명제 하에, 정년 이후 행서시필전과 해서완미전을 개최하였고 이번에 다시 예서탐색전을 치르려 하니 이는 그 십년 계획 중 세 번째의 행보이다.
올 초부터 행서에 치력하는 여가에 조전비를 위시하여 하승비 등 본보기로 삼는 한비를 형임 하였고, 또 의임과 배임을 겸하였다. 9월 말에 이르러 작품에 착수하여 크고 작은 서른 한 개 작 품을 만들었다. 소품이 다소 많은 것은 우리 누님 등 평소에 은혜 입은 예닐곱 분에게 드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게으름피우다가 시일이 긴박해 큰 글씨 큰 작품을 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다.
나의 예서로 말한다면 스무 살 이후 십여 종의 한비를 즐겨 임모하여 한때에는 예서 잘 쓴다 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원광대학교에 부임하여 비록 사신 장천 예기 등 세 비를 위주로 가르치기는 했지만, 반백 이후에 열다섯 해를 거의 붓을 놓은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답보하여 나아가지 못함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일찍이 스스로 이상하게 여긴 것은, 간간히 출품하면 사람들이 조전비 냄새가 난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마다 나의 스승 시암 선생님의 큰 영향에 스스로 놀라곤 하였다. 게다가 부지불식간에 하승비의 기이하고 예스러우며 뛰어나게 남다름이 줄곧 뇌리에서 맴돌았고, 그 조전 하승 두 비의 필치의 자태를 취하기를 이미 습이 되어졌으니 대저 지금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함이다. 이밖에, 호태왕비의 웅혼한 자태를 더하여 판본체와 서로 녹여들게 함으로 써 조전 하승과 함께 돋보이게 하고자 한다.
어찌 되었던 간에 나의 예서가 다른 이와 구별되기에 가히 위안 삼으며 그런대로 만족한다.
내 글씨 성취에 있어서 필생의 소원은 행서에 있다. 당송 이전의 것들이야 차치하고라도 환갑이 지나서 비로소 추사 선생 간찰의 걸출함을 알았고 동경을 그만둘 수 없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으니 어떻게 그 꿈을 버릴 수 있겠는가.
때문에 이를 위해 반드시 힘써 공부하여 내년에도 이어 ‘전초상응전’을 공개할 것이다.
다만 부처님의 가피가 있기를 소원할 뿐이다.
경자년 입동 전날 청하산방에서 선주선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