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글씨’를 추구하는 바 십년 계획에서 이제 제4차 전시를 맞아 이름하기를 ‘전초동행전’이라 하였다.
젊었을 적에 일찍이 내 스승 월당 선생님의 한 말씀을 들었다. 다름 아닌 “전서를 쓰기를 응 당 초서 쓰듯이 해야 되고 초서 또한 그 반대로 해야된다”라고 하신 것이 그것이다. 근자에 그 두 서체의 그리 되어야 할 이유를 찾아보았지만, 원세로 상통한다는 것 이외에는 끝내 특별한 정황을 감지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더욱 전서는 전서대로 초서는 초서대로여서 마침내 스스로 전날의 스승님 말씀은 ‘전서는 너무 엄격해서는 안 되고 초서는 날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계 하신 것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때문에, 처음에 ‘전초상응전’이라 하려다가 부득불 ‘전초동행전’이라 하였다.
나의 전서로 말하면,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내 스승 시암 배길기 선생님의 서풍 과 오창석을 배웠고, 또 스승이신 철농 이기우 선생님께 전각을 배우는 여가에 늘 기특한 전서 의 필자(筆姿)를 접하였다. 대만 유학 시에는 등석여 조지겸 오대징을 자습하였고, 인사동에서 서실을 운영하고 또 원광대학에 교수가 되어서는 인고(印稿) 이외에는 거의 등한시하였다.
초서 방면은 교수가 된 이후 왕희지 손과정 회소 등을 독학하였는데 내 생각에 부합한 듯하 여 휘두르기를 자오한 지 오래다.
그러나 내가 이 두 서체에 있어서, 남보다 다소 글자를 잘 알아볼 뿐, 별 문채(文彩)를 이루지 못하여 부끄럽게 여겨왔다. 올해 9월부터 두 달간 전력투구했는데 점차 진전이 있음을 자각하 고 희열도 맛보았으며 바야흐로 각고의 노력의 효험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어언간, 내년에 일흔이 된다. 중간점검을 할 겸 이를 계기로 ‘칠순전’을 치르려고 한다. 옛사 람이 이르기를 “전쟁에 임하여 창이라도 갈면 날은 서지 않아도 번쩍이기는 한다” 하였으니, 이 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어찌 멈출 수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