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谷書展所懷 心如水
權昌倫
愼栽範 同學의 개인전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은 맑은 물과 같이 매우 청순하여 그 제목을 長谷若水라 하 였다. 시성 두보는“心不競”, 왕안석은“心無累”, 문징명은“心如水”라 하여 작품의 心態와 文華의 品藻 를 가늠하였다. 한나라 양웅은 <법언, 문신권>에서“말은 마음의 소리요, 글씨는 마음의 그림인데, 소리 와 그림의 형상을 보면 군자나 소인이 들어난다.”고 하였다.
장곡이 나와 같이 연마 장양함이 三紀餘에 이르는 동안 서법의 이치를 명료하게 궁구한 까닭으로 오늘 의 탈속 진솔한 품격을 이루었다고 여겨진다.
위나라 종요는“筆迹者界也, 流美者人也. ... 見萬象皆類之.”라 하여 용필의 원할한 운용으로써 점획 의 명징한 표출을 하여야 하며, 즉 중봉운필로서 사물의 적확한 형상을 나타내어야 하고 이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은 그 작가의 몫이다. 삼라만상이 모두 이런 부류라고 하였다.
아름다움이란 세와 력, 그리고 호호 생기로운 절주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석도는 <畵語錄> <一劃章>에서“태고때에는 문화가 미개하여 법이 없었으므로 화법도 없었다. 극히 미개하였던 원시적인 상태의 매우 순박한 자연이 흐트러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이 순박한 자 연이 한번 흐트러짐으로써 자연히 법도가 세워지고 화법도 생겨났다. 이 화법(획법)은 어디에서 어찌하 여 세워졌을까? 그것은 하나의 劃線(획선)인「一」획을 긋는데에서 세워졌다. 일획을 긋는 것은 만획의 근본이 되며 일만가지 형상을 그리는 근본이 된다”라고 하여 일획의 線條가 원만하게 이루어져야 삼라만 상의 형상도 올바르게 나타낼 수 있다고 하였다.
더 부연해서 말하기를“무릇 획(화)법이란 모두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산천과 인물의 수려함, 조수 초 목의 성정과 지사 루대의 법도가 그 이치에 깊이 들어가서 곡진한 법상을 깨닫지 못한다면 마침내 일획 의 큰 법도를 터득할 수 없다. 멀리가고 높이 오르는 것도 모두 손마디 하나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이 일 획의 아득한 천지 자연의 원기 밖에 있는 것까지 모두 다 거둬들여야만 곧 억만 필묵선이 이 일획으로 시 작되지 않는 것이 없고 일획으로 끝나지 않는 것도 없다. 오직 화가란 일획법을 잘 들어서 올바로 파악하 여 그것을 법대로 활용할 뿐인 것이다.”
일획의 기본 묘리가 모든 법에 미치는 것을 말하였으며 <易經>에는“剛健, 篤實, 輝光”을 儒家의 건전 한 미학사상으로 지칭하였다. 詩文과 書畵의 昇和는 현란함이 극치에 달하면 平淡으로 회귀하는 데 있다.
<文心雕龍>에서도“하늘거리는 홑 옷 비단과 惡文의 큰 문장도 무색인 흰빛의 모습으로 바뀌어 소박하 게 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하였으며 이는 자연 樸素的 白賁의 美를 최고의 경계로 추숭하였다. 한나라 유향의 <說苑>에서는“공자가 賁卦를 얻고서 마음이 평안하지 않차 자장이 물어가로대 공자가 대답하기를 ”賁은 바른색이 아니라, 이를 한탄하노라“ 내가 듣건댄 붉은 옻칠은 화려하게 칠하지 않고, 백옥은 조각하지 않으며 보배로운 구슬은 장식을 하지 않는다. 어쩐 일인가? 재질이 有餘하기 때문에 수 식을 하지 않는다”라고 하여 현란한 색상에서 平淡 朴素함을 아름다움의 極則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一劃의 表出이 萬象에 미치고, 화려함 보다는 平淡朴素의 자연미를 추숭하는 것이 아름다움 의 극치란 것을 적시한 연유는 長谷의 서품에서 느껴지는 감흥이 이러한 취향으로 나타나 있음에서이다.
이번에 展出되는 장곡의 서품에서 古篆 金文 계열의 수작이 많았으며 그 수준도 매우 뛰어나 보였다. 금 문과 그 이전의 서체에서는 글자 형태의 통일성이 적고 자형의 변화가 심하여 제작하고자 하는 문구에 적용하기 지난한 면도 있다. 다만 그 선조와 묵색 및 포치 등에서 다양함을 나타낸 점을 사고 싶고 더욱 이 淸淡한 무욕의 제작의도가 돋보였다. 행서의 경우 사심없이 진솔하게 물 흐르듯이 평온한 法象이 자 연스러워 좋았다. 전체 작품의 체제와 소재 면에서 변화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일당에 진열되는 개 인 발표전의 지루하고 무료함을 불식시키는 요체가 될 것이다.
장곡이 그동안 침잠해온 수련과정의 결실로서 이번 전시가 유지자의 감상의 대상으로서 흥미를 자아 내고 향후의 작품제작에 큰 보탬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성황을 빈다.
2022 입추절
예주관 등불 아래에서
撲滿(박만) · 44×66cm
蓬生麻中(봉생마중) · 65×68cm
和神養素(화신양소) · 62×48cm
實事求是箴(실사구시잠) · 66×50cm
絶句(절구) · 32×128cm
雲龍風虎(운용풍호) · 68×35cm
登高山 望四海(등고산 망사해) · 34×67cm
上善若水(상선약수) · 66×60cm
愛敬(애경) · 64×50cm
採山․詠月(채산 영월) · 35×135cm×2
醉月(취월) · 64×42cm
養喜神(양희신) · 65×60cm
途中(도중) · 62×132cm
동계선생시조 · 60×48cm
漢浦弄月(한포농월) · 35×135cm
一以貫之(일이관지) · 56×34cm
博學 篤志(박학 독지) · 28×66cm
心畫(심화) · 110×68cm
滿招損 謙受益(만초손 겸수익) · 48×46cm
般若心經(반야심경) · 41×44cm
寡欲淸心源(과욕청심원) / 116×33cm
絜矩之道(혈구지도) · 70×200cm
思無邪(사무사) · 62×44cm
野雪(야설) · 68×62cm
獨坐 彈琴(독좌 탄금) · 46×66cm
難得糊塗(난득호도) · 64×53cm
梅花(매화) · 64×66cm
他年 巨筆(타년 거필) / 65×132cm
雜詩(잡시) / 100×34cm
知過必改 得能莫忘(지과필개 득능막망) · 34×62cm
種德施惠(종덕시혜) · 56×44cm
不狂不及(불광불급) · 60×42cm
心廣體胖(심광체반) · 60×40cm
安樂(안락) · 55×130cm
學而時習(학이시습) · 126×60cm
吉祥(길상) · 58×34cm
月印千江(월인천강) · 64×42cm
答人(답인) · 54×34cm
退溪先生詩(퇴계선생시) · 70×200cm
鑒古戒今(감고계금) / 110×33cm
溪堂偶興(계당우흥) · 65×63cm
엄마야 누나야 · 56×34cm
變通(변통) · 64×40cm
無聲 不鳴(무성 불명) · 63×130cm
無何有之鄕(무하유지향) · 86×33cm
百鍊金 千鈞弩(백련금 천균노) · 36×52cm
煙雲(연운) · 48×68cm
夜景(야경) · 66×22cm
歲不我延(세불아연) · 43×36cm
通禪(통선) · 62×38cm
博文約禮(박문약례) · 56×42cm
정읍사 · 66×43cm
澹泊明志(담박명지) · 48×70cm
磨斧作針(마부작침) · 60×38cm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 · 60×36cm
好書 益友(호서 익우) · 62×64cm
抱一(포일) · 67×34cm
金蘭(금난) · 32.5×47.5cm
觀心證道(관심증도) / 52×33cm